청도 운문사 답사 사진(2008. 3. 9)
* 한국동란 때 이승만 대통령이 피난길에 묵었다는 운강고택 만화정을 나와 운문사로 향하였다. 운문사 가는 길에 운문에서 민물고기 매운탕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오늘의 마지막 답사지인 운문사로 향하였다.
운문사는 원광, 일연, 원응국사 등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는 쟁쟁한 인물들이 거쳐간 유서깊은 절이며, 지금도 비구니 승가대학이 있는 절집이다. 승가대학의 200여 비구니스님들을 수발하는 사람들이 약 300여명이라고 하니, 그 규모가 매우 큰 도량이다.
운문사는 청도인근에서 가장 유명하고, 국가지정문화재도 많은 곳으로 사시사철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고있으며, 최근에는 운문사의 암자인 사리암이 기도에 효험이 크다 하여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찾는 절집이 되었다.
* 운문사 안내도 앞에서 문화유산해설사가 우리 일행을 위해 운문사에 대한 이모저모를 설명하고 있다.
* 운문사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처진소나무(반송). 매년 봄가을로 막걸리를 열두말씩 받아 마시며, 청청하게 옆으로 자라나는데, 천연기념물 제180호이다. 이 나무가 막걸리를 받는 날에는 온 절집안이 막걸리 냄새로 뒤덮인다고 한다.
* 마치 삼형제처럼 나란히 서 있는 세 채의 비각.
운문사중수기념비, 원응국사비, 설송대사비가 각기 비각 안에 있다.
가운데에 있는 제일 큰 비각에 원응국사비가 있다.
원응국사는 고려 인종 원년(1122)에 왕사의 자리에 올랐으며, 인종 7년(1129)에 운문사로 들어와 절을 중창하였으며, 나라로부터 '운문선원상사'(雲門禪院上寺)라는 사액을 받았으며, 운문사는 나라의 500선찰 가운데 제2선찰이 되었다.
* 보물 제316호인 원응국사비는 비신이 세 동강이 난 것을 쇠막대로 고정하여 복원시켜놓았다. 이 비석의 글씨는 고려왕조 제일의 명필로 꼽히는 대감국사 탄연이 썼다고 한다.
* 운문사에서 가장 큰 건물인 만세루. 바닥 면적이 164평이라고 한다. '루'라고 하면 보통 2층 형태의 건물을 가르키는데, 이 건물은 단층이다.
예전에는 이 건물을 종루로 썼다고 한다. 지금은 종루가 출입구 쪽에 별도로 있다.
지금도 이 만세루 안에는 북이 걸려있고 종도 있는데 종은 바닥에 내려놓았다.
* 만세루의 한쪽에 놓여있는 종. 운문사의 새벽 종소리는 '운문효종'(雲門曉鐘)이라 하여 운문8경에 속한다고 한다.
* 스님들의 거주공간을 가르는 돌 담장. 공력을 많이 들인 듯 한데...
* 이무기의 전설을 간직한 이목소.
** 이목소의 전설
'이목은 절 곁의 작은 못에 살면서 법화에 게으르지 않았는데 어느 해에 날이 몹시 가물어 채소들이 모두 말라죽으므로 보양은 이목에게 부탁하여 비를 내리게 하니 흡족히 해갈이 되었다. 그런데 천제께서 하늘의 일을 무단히 가로챈 이목을 죽이라고 천사를 내려보냈다. 이목은 보양에게 달려와 구원을 요청하였다. 보양은 이목을 마루 아래 숨겨두었는데 천사가 물에 내려와 이목을 내놓으라고 하였다. 보양은 손가락으로 뜰 앞의 배나무(梨木)를 가리키며 이목이라고 하였다. 이에 천사는 배나무에 벼락을 내리치고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이 때문에 배나무는 거의 죽어가게 되었는데 이목이 어루만지매 다시 청정해졌다.
* 석가모니와 그의 제자들을 모신 불전을 보통 나한전 또는 응진전이라고 하는데, 이곳에는 500 제자들을 모셨다고 해서 '오백전'이라고 하였다.
* 오백전 내부의 모습.
이름은 오백전이지만, 오직 한 분 나반존자(천태산에서 홀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여 독성이라고도 하며, 이 분만을 따로 모신 전각이 독성각이다)만은 이곳에 없고, 운문사의 암자인 사리암에 계신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곳에는 모두 499명의 나한상만이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세어보지는 않았다.
나반존자를 모신 사리암에는, 주말이면 전국에서 굉장히 많은 기도객들이 와서 교통이 혼잡하기 그지 없다고 한다. 아마 남해의 보리암 등과 같이 기도처로서 유명한 모양인데, 나는 아직 사리암에는 올라가 보지 못하였다.
* 보물 제835호인 대웅보전.
운문사에는 이 건물 말고도 이 보다 더 큰 새로 지은 대웅보전이 있다. 새로 대웅보전을 짓고 이 건물은 비로전으로 현판을 바꾸고 안에는 비로자나불을 모셔두었는데, 문화재로 지정될 당시의 이름(대웅보전)을 좇아 다시 대웅보전이라고 현판을 달았다. 그리하여 운문사에는 대웅보전이 두 개가 되었다.
* 대웅보전 안에 모셔진 비로자나불.
원래 대웅보전안에는 석가모니불이 주존불이 되어야 하는데, 위의 사유로 인해 이 대웅보전 안에는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고, 절의 주존불인 석가모니불은 새 대웅보전에 모셔져 있다.
* 운문사에서 가장 작은 전각인 작압전 안에 있는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317호이다.
* 작압전 안에 있는 사천왕상 석주.
4기의 사천왕상이 조각된 석조물인데, 아마도 탑의 일부분을 장식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불분명하다. 악귀를 다스리는 역할에 어울리지 않게 여성스러운 부드러운 용모를 지니고 있다.
이곳이 비구니절이라 여성스럽게 변한 것은 물론 아닐텐데 그렇게 연관되게 생각되어지는 사람들도 있는가 보다...
* 새로 지어진 대웅보전 건물이 매우 웅장하다.
아쉽게도 진입로가 북쪽으로 되어 있어 방문객들은 이 건물의 뒷부분을 보면서 절로 다가가게 되고, 절에 이르러서는 담장의 옆구리에 난 종루를 통해 들어가야한다. 또한 모든 건물들의 측면을 보면서 다가서야 하니, 여느 절들과 같이 건물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거나 위엄스런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이다.
* 새 대웅보전 안에 모셔진 불상들.
* 사진 정면 지붕 옆으로 마당에 석등이 작게 보인다. 스님들의 학습공간 안에 있어 들어가 볼 수 없지만, 이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보물 제193호이다.
*** 운문사 안내도를 보면 절의 영역의 절반 가량이 일반 관람객들에게 개방되어 있고, 나머지 절반은 스님들의 생활공간과 학습공간(비구니 승가대학)으로 되어 있어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건물들은 산을 등지고 앞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산을 바라보며 등을 내보이고 있다. 산세를 따르다 보면 모든 건물을 북향으로 앉혀야 하기 때문이다.
운문사의 첫번째 중창자는 원광법사인데, 가슬갑사(5갑사의 하나)에서 두 명의 화랑(귀산과 추항)에게 세속오계를 내려주었다.
'운문사사적'에서 말하는 운문사의 두번째 중창자는 보양스님인데, 삼국유사에서는 보양스님이 운문사의 창건자라고 하고 있다.
보양스님이 후삼국 시절의 왕건에게 묘책을 알려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훗날 태조가 된 왕건이 절에 500결의 땅을 내려주고, 또한 태조 20년(937)에는 운문선사(雲門禪寺)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여기에서 운문사의 이름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운문사의 절정기는 원응국사 때이다. 인종이 즉위하던 1122년에 왕사의 자리에 오른 후, 인종 7년(1129)에 운문사에 들어와 절을 크게 중창하여, 나라의 두번째 선찰이 되었다.
절정기를 지난 후 무신정권 아래서 민란과 노비반란이 전국을 휩쓸 때, 경상도에서도 김사미난, 초전의 난이 일어났는데, 그 중심지가 바로 운문산과 그 일대였다. 항쟁 초기 농민군을 이끌었던 김사미라는 인물이 운문사에 있던 김씨 성을 쓰는 사미승(또는 재가승)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고 한다.
사원에 예속되어 수탈당하던 농민과 노비 및 하층의 승려들에 의해 사찰도 공격의 대상이 되었으며, 운문사에 전해지던 4비(신도비, 행적비, 위답노비비, 중창사액비) 가운데 토지와 노비를 절에 예속시키는 내용이 담긴 노비비와 사액비가 농민항쟁의 와중에 파괴되었다.
일연스님은 1277년 부터 1282년 까지 운문사에 머물며 민족의 문화유사인 '삼국유사'의 집필에 온 힘을 쏟았으며, 군위의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완성하였다.
임진왜란으로 크게 피폐해진 운문사를 다시 중창하신 분은 휴정 서산대사의 법손으로 일컬어지는 설송대사이다. 설송대사는 13세 때 운문사로 출가하여, 먼저 휴정 서산대사의 교법을 이어받은 석제에게 교법을 익히고, 뒤에 휴정의 선법을 전수한 지안에게 선법을 닦아 두사람의 법을 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휴정 이후 교(敎), 선(禪) 두파로 갈라졌던 휴정의 법맥이 설송에 이르러 하나가 되었다.
* 돌아오는 길은 운문령을 넘어 언양으로 빠졌는데, 북향하여 그늘진 쪽에는 아직도 얼음이 녹지 않고 있었다. 언양에서 밀양으로 가는 도로가 아직 공사중이라 차가 약간 밀리긴 했지만, 그래도 그리 많이 지체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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