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오수창 국사학과 교수(왼쪽)와 유용태 역사교육과 교수가 2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만나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서울대 역사 전공 교수 34명의 의견서를 전달한 뒤 기자들한테 면담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 서울대학교 오수창 국사학과 교수(왼쪽)와 유용태 역사교육과 교수가 2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만나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서울대 역사 전공 교수 34명의 의견서를 전달한 뒤 기자들한테 면담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정부의 틀에 맞춘 주입식 역사…민주화·다문화시대 역행”
2일은 박근혜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절정을 이룬 기념비적인 날이다. 서울대 역사 관련 5개학과 교수 44명의 77%인 34명이 서명한 반대 의견서가 교육부에 전달됐고, 전국 초·중·고 역사 교사 2255명도 실명으로 반대 선언문을 발표했다.

교수님, 선생님들의 의견서와 선언문은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 도입됐다가 민주화와 함께 용도폐기된 ‘한국사 국정 교과서’를 재도입하면 안 되는 이유를 조목조목 짚은 ‘모범 답안’과도 같다.

 

 

■ 반헌법적이다

서울대 역사 교수들은 ‘황우여 교육부 장관님께 드리는 의견서’에서 “역사(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는 정책이 정부와 여당에 의해 널리 천명됐다”며 “정치권의 그런 논의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규정한 헌법 정신과 합치하지 않는다”고 짚었다.

역사 교사들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및 역사과 교육과정 개악에 반대하는 현장 역사교사 2255인 선언’에서 국정 교과서의 위헌성과 위법성을 적시했다.

교사들은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의 결과물인 대한민국 헌법은 민족의 화해 협력과 민주개혁을 지상의 가치로 명시하고 있고, 교육기본법은 민주시민 형성을 교육의 목표로 천명하고 있다”며, “박근혜 정부가 (5년 단임 정부의 역사관을 담은) 국정 교과서를 발행한다면, 우리는 민주공화국의 진정한 가치를 지키고 실천하려고, 대대적인 불복종 운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 비민주적이다

서울대 교수들은 국정화를 통해 본질적으로 달라지는 점으로, 정부가 역사(한국사) 교과서 서술을 ‘독점’하게 되는 것을 꼽았다.

교수들은 “똑같은 역사 교재로 전국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우리 사회의 역사적 상상력과 문화 창조 역량을 크게 위축시키고, 민주주의는 물론 경제 발전에도 장애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지금 우리나라의 역사 교육에 필요한 것은 국정 교과서로 제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역사 교과서 제작의 자율성을 좀 더 널리 허용하는 일”이라고 제안했다.

 

 

민주화와 함께 폐기된 유신 잔재, 5년단임 박근혜정부가 부활 안될말
똑같은 교재로 학생들 가르치면, 역사적 상상력·문화창조능력 위축
통일 전 서독은 검정, 동독은 국정
세계화·다문화시대에 부적합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역사교사 2255명의 4대 요구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역사교사 2255명의 4대 요구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 비교육적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답게 국정화가 역사 교육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강조됐다. 역사 교사들은 “정부가 공인한 하나의 역사 해석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국정 교과서는, 역사교육의 본질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짚었다.

서울대 교수들은 “현재 시행 중인 검정 제도만으로도 한국 역사 교과서의 내용은 지나칠 정도로 통일되어 있다”며, “다수의 (검정) 교과서에서 서로 다른 용어를 사용해 문제라면, 교육과정과 집필기준, 검정 과정을 장기적이고 신중하게 수행해 바로잡을 일”이라고 조언했다.

 

 

■ 퇴행적이다

서울대 교수들은 “교과서 서술을 정부가 독점하는 정책은, 민주화와 산업화를 통해 오랜 고난 끝에 이룩한 오늘날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역사 교사들도 “박근혜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 어디에서도 시행하지 않는 국정 교과서 제도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세계화·다문화 시대를 살아갈 민주시민을 기르는 데 적합한 역사교육의 방향과 실천 방안을 여러 교육 주체들과 진지하게 의논해주기를 진심으로 요청한다”고 호소했다.

역사를 국정 교과서 형태로 발행하는 나라는 거의 없고, 통일 전 서독은 검정, 동독은 국정 교과서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거듭 환기시켰다.

■ 반사회적이다

역사 교사들과 서울대 교수들은 국정화를 하지 말라는 것이 ‘여론’이요 ‘공론’이며, 국정화가 한국 사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역사 교사들은 “교육부가 직접 실시한 국민 여론조사에서도 중·고교 교사 3분의 2가 국정을 반대한다는 점이 확인됐고, 역사 교사 97%가 국정 교과서에 반대한다는 조사도 있다”고 밝혔다.

서울대 교수들은 이번 의견서 제출이 “역사(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국가와 사회를 위해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우려에서 나온 ‘학자적 충정’임을 밝혔다. 교수들은 “소모적 논란을 줄여 역사 교육에 기여하고자 하는 충정을 살펴 교육 정책 추진에 반영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다”며 황 부총리한테 간곡한 바람을 전달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