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 감별의 '절대 반지'가 된 천안함 북한 폭침론
질문도 이견도 차단된 신성불가침의 절대 성역
언제 어디서 침몰했나? 북한 잠수함이 어떻게?
부실한 증거에 많은 전문가 다각도로 의문 제기
'친북'과는 무관…보수우파 진영이 '북풍'에 악용
희생자들 제대로 기억하고 참사 재발 방지해야
최근 족벌언론과 기득권 우파와 민주당 내부 경쟁자들의 협공 속에 임명 9시간 만에 혁신위원장에서 물러난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의 과거 발언들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천안함 사고에 대한 견해였다.
이래경 이사장은 천안함 사고에 대한 자신의 최종 입장은 “원인 불명”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북한이 천안함을 폭침시켰다’는 명제는 절대 의심해서도 이견을 제시해서도 안 되는 신성불가침의 절대 성역이 돼 있다. 특히 공인이나 공직에 진출하려는 사람은 이 ‘십자가 밟기’를 절대 피할 수 없다.
먼저 분명히 할 것은 천안함 사고의 진실을 찾고자 하는 것은 결코 희생자와 유가족들에 대한 비난이나 모독이 아니라는 점이다. 또 북한 정권과 체제에 대한 호불호와도 무관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희생자와 유가족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거나, 북한 체제와 정권에 비판적인 수많은 사람이 천안함 사고가 과연 북한의 폭침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 왔다.
사실 천안함의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더욱 힘들게 해 온 것은 보수우파 정권들이었다. 사고 초기에 이명박 정부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연락도 하지 않았고, 가족들이 항의하며 부대로 진입하자 경비병들을 동원해 총구를 겨냥하는 경악스러운 장면까지 연출했다. 당시 실종자 가족들은 ‘정부가 프락치를 심어서 우리를 사찰하고 있다’며 항의하고 분노했다.
심지어 당시 군당국은 생존 장병들에게 인양한 천안함을 청소하게 만들어 트라우마를 가중시켰다고 한다.
‘이명박근혜’ 정부는 주로 생존 장병들을 기자회견 등에 불러서 이미지를 연출하는 데 급급했고, 희생자들을 유공자로 인정하고 명예 진급시키는 등이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은 오히려 문재인 정부 때였다는 게 ‘천안함 생존자 전우회장’의 지적이었다.
물론 김승섭 교수나 <뉴스타파> 등이 지적했듯이 진영논리에 매몰돼서 보수우파 정부와 희생자들을 한 묶음으로 비난하고 매도한 일부 사람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명백히 용납될 수 없는 잘못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천안함 북한 폭침론을 의심하는 것은 곧 진영논리와 음모론’이라는 결론을 참으로 만들어줄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천안함 사고는 한미 해군이 대잠수함 훈련을 진행하고 있던 서해에서 2010년 3월에 발생했는데, 처음에 ‘북한의 소행’을 부정했던 것은 역설적으로 이명박 정부와 미국 정부였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 쪽이라고 한다면 증거를 내놓아야 하는데, 자칫 국제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고, 국방부도 “북한 잠수함, 반잠수함의 특이 활동은 없었다”고 했다.
월터 샤프 주한미군 사령관도 “북한군의 특이 동향이 포착된 바 없다”고 했고, 제임스 스타인버그 미국무부 부장관도 “(북한 개입이) 사고 원인이라고 믿거나 우려할 근거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한두 달이 지나면서 분위기는 조금씩 바뀌어갔고, 특히 민군합동조사단 조사 결과로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폭침’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조사 결과가 별로 설득력이 없고 증거도 부실하다는 데 있었다.
한미합동 대잠훈련으로 깔려있던 거미줄 같은 감시망을 피해서 북한 잠수함이 감쪽같이 천안함을 폭침하고 빠져나갔다는 조사 결과는, 먼저 북한이 과연 그런 놀라운 능력을 가졌는가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지금은 국민의힘에 몸담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진보적 남북관계 전문가였던 김근식 교수는 “북한을 뭐든지 할 수 있는 무한능력의 ‘괴물’로 만들고 있다”며 정부 발표를 비판했다.
조사 결과는 천안함이 어디서 언제 침몰했는지와 북한 잠수함이 어디로 침투해 어디로 빠져나갔는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또 어뢰가 폭발했는데 생존자 중에 고막을 다치거나 화상을 입은 사람은 왜 없는지, 어뢰 폭발로 인한 물벼락이나 물고기의 떼죽음, 열상감시장비(TOD)에서 열기 감지 등은 왜 찾을 수 없는지도 밝혀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정부와 군이 서해에서 발견했다는 ‘1번이라고 적힌 어뢰’였다.
정부와 군은 ‘1번’이 북한 글씨체(?)이고 이것이 천안함을 폭침시킨 북한군의 어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천안함은 두 동강 났는데 정작 어뢰는 ‘1번’ 글씨도 선명하고 추진축, 모터, 스크루 등이 멀쩡하게 발견된 것은 누가 봐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수많은 이들과 전문가들이 동의하지 않았고 이견을 제시했다.
당시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는 “망망대해에서 건져 올린 북한제 어뢰 파편이 3월 26일 그 밤에 천안함을 침몰시킨 원인이었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돌 하나 주워가지고 구석기 시대부터 사용되던 돌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했다. CIA 한국지부장, 주한미대사 등을 지냈던 도날드 그레그조차 “나는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서재정 교수는 “비논리적일 뿐 아니라 물리적 현실과 정반대되는 거짓”이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여러 과학자와 전문가들이 중요한 지적을 하고 이견을 제시했고 논문을 제출했다. 김소구 한국지진연구소장, 재미 국방기술 전문가인 안수명 박사, 이승헌 버지니아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등이 그런 이들이다. 이들은 모두 ‘친북’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당시 여론조사에서도 60% 넘는 사람들이 정부 조사 결과를 믿지 못했다. 하지만 족벌언론들은 “더 이상의 논란은 이적행위”(중앙일보)라고 못 박았다. 이명박 정부는 이를 이용해 그해 6월 지방선거에서 ‘북풍’을 일으키는 데 매달렸다. 당시 한나라당 종합선거상황실 문건에는 “천안함이 선거에 유리하게 작용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주문”이 버젓이 적혀 있었다.
또 족벌언론들은 “천안함 희생자 추모 열기가 확산되는 가운데 금속노조가 파업을 결의하는 등 딴 길을 가고 있다”며, 당시 금속노조의 파업을 비난하고 공격하는데도 ‘북풍’을 이용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북한의 인간어뢰설’ 같은 황당무계한 ‘SF소설’들을 제시해서 비웃음을 자초하고 수많은 패러디들을 낳았다.
그 후에도 천안함 사고는 어떤 합리적인 의문 제기와 이견 제시도 짓밟으면서, 북한 폭침론에 동의하지 않는 상대방을 ‘종북 좌빨’로 낙인찍는 ‘절대 반지’가 됐다.
조사 결과에 “0.0001퍼센트도 설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 도올 김용옥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됐다. 참여연대가 유엔 안보리에 천안함 사고에 대한 비판적 의견서를 보내자, 한나라당은 “반국가적 종북 이적 행위”라고 매도하면서 “응분의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고 겁박했다.
2014년에는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천안함 폭침에 대한 정부 발표를 믿지만 확신하지는 못한다’라고 답했다가 ‘국가관이 의심스럽다’고 공격받고 결국 낙마했다. 2014년에 통합진보당이 강제 해산당할 때 주요한 청구 이유 중에 하나로 제시된 것이 바로 ‘천안함 사고에 대한 입장’이었다.
이처럼 입이 막히거나 특정한 ‘정답’을 강요하는 일들이 10년도 넘게 지속되고 반복되면서, 천안함 사고의 진실이 무엇인지 의심하던 목소리들은 점점 사라져갔다. ‘종북이나 친북적 진영론자’로 낙인찍히거나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 대부분의 개혁언론과 진보적 지식인들조차 갈수록 침묵하게 됐다. 일부에서는 ‘이제는 천안함 북한 폭침 주장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낙인을 피해가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이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2021년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 직속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천안함 재조사 결정을 내렸을 때 벌어진 상황이다. 곧바로 ‘문재인 정부의 종북적 본색이 드러났다’는 족벌언론들과 기득권 우파의 총공세가 시작됐고, 이에 맞서서 재조사를 지지하고 요구하는 목소리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결국 재조사는 무산됐다.
이번에도 이래경 이사장에 대한 정치적 판단과 별개로, 천안함 사고에 대해서는 어떤 다른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천안함 사고에 대한 모든 의문과 이견을 낙인찍고 억누르는 일들은 중단돼야 한다. 지금이라도 국방부, 합참, 해군은 숨겨져 있던 그때 당시의 교신일지, 상황일지, 열상감시장비(TOD) 전체 영상, KNTDS(해군전술지휘통제시스템) 자료, 한미 합동 대잠훈련 내용 등을 공개하고 철저한 재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났더라도 천안함 사고에 대한 모든 의문은 남김없이 밝혀져야 한다. 모든 사회적 재난과 마찬가지로 천안함 사고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모독하기는커녕 진실로, 그들을 진정으로 기억하고 추모하는 방법이며, 또다시 그러한 비극과 희생이 벌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길이다.
전지윤 편집위원misotolen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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