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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 전 투키디데스처럼

道雨 2024. 4. 1. 10:59

2500년 전 투키디데스처럼

 

 

                                      * 캐나다 토론토 온타리오 왕립 박물관에 있는 투키디데스 흉상. 위키미디어 코먼스

 

 

“나는 내가 직접 목격한 사건을 기록했다. 간접적으로 목격자에게서 들은 얘기들은 최대한 철저한 확인을 거쳐 기록에 포함했다. 그렇다고 해서 진실이 쉽게 발견되지는 않았다. 서로 다른 목격자들은 같은 사건에 대해 다른 진술을 내놨다. 이들은 어느 한쪽이거나 아니면 상대편을 편들기도 했고, 때로는 불완전한 기억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기원전 5세기에 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서문이다. 지금으로 치면 ‘종군기자’의 글이다. 2500년 전 글인데도 요즘 기자들이 새길 만하다.

 

 

그러나 현실은 쇠귀에 경 읽기다.

 

2012년 12월14일 오전 9시40분, 미국 코네티컷주 뉴타운의 한 초등학교에서 총기 난사로 어린이 20명을 포함해 28명이 숨지는 비극이 일어났다.

언론은 발 빠르게 보도했다. 오후 2시 시엔엔(CNN)은 “용의자는 20대로 보이는 라이언 랜자로 보인다”고 했다. 1시간 뒤 에이피(AP) 통신은 “라이언 랜자의 신원이 확인됐다”고 한술 더 떴다. 뉴욕타임스는 “라이언의 모친이 그 학교 교사”라고 했다. 이어 라이언의 페이스북 사진과 글이 여러 매체에 보도됐다.

 

모두 오보였다. 실제 범인은 그의 동생 애덤 랜자였다. 어머니는 그 학교 교사도 아니었다. 이미 애덤의 총에 맞고 집에서 살해당했다.

 

멀리 미국까지 갈 것도 없다.

딱 10년 전, 세월호 참사는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전원 구조’ 오보는 기레기 비난에 불을 댕겼다. 언론에 대한 신뢰는 바닥까지 추락했다.

 

 

반전의 계기도 있었다.

2016년 가을 국정농단 사태 보도는 언론이 추악한 권력을 끌어내린 사건이다. 티브이(TV)조선이 신호탄을 쏘아 올렸고, 한겨레가 지평을 열었으며, 제이티비시(JTBC)는 화룡점정을 찍었다. 권력을 감시 비판하는 언론의 본령에 진보언론, 보수언론이 따로 없었다.

제이티비시 태블릿피시 보도가 나오던 그 시각, 한국프레스센터 19층에서는 공교롭게도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42주년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1975년 동아일보에서 강제해직된 선배 언론인들은 후배들의 ‘기자정신’에 오랜만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촛불집회에 나온 시민들도 언론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이제는 ‘기레기’라는 말로도 부족했던지 ‘기더기’(기자+구더기)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기자에 대한 혐오와 증오가 담긴 말이다.

 

기자들도 힘이 빠진다. 한국기자협회가 해마다 창립기념일(8월17일)을 앞두고 실시하는 여론조사에서, 현직 기자들의 직업 만족도는 2019년 52%에서 5년 연속 하락해, 지난해 39.4%로 40%대까지 무너졌다. 기자 대다수(86.8%)가 사기가 저하됐다고 응답한 반면, 상승했다는 1.4%로 큰 차이를 보였다.

 

언론 신뢰 하락의 큰 원인은 정파적 보도와 부정확한 보도다.

언론학에 ‘적대적 매체 효과’라는 게 있다. 언론 보도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데도, 자신의 견해와 반대쪽으로 편향됐다고 인식하고 적대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말한다.

언론은 이럴수록 더 팩트에 충실해야 하는데, 되레 정파성을 부추긴다. 이런 경향은 요즘 같은 선거철에 더욱 기승을 부린다. 본질을 비틀고 프레임을 씌운다. 오직 전략적 선전 선동에 머리를 쥐어짠다.

 

2022년 개봉한 영화 ‘그녀가 말했다’는,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추악한 성추문을 폭로해, 전세계 미투 운동을 촉발한 뉴욕타임스 두 여성 기자의 활약상을 그렸다.

두 기자는 증언을 주저하는 피해자들을 설득하고 또 설득하며, 팩트에 팩트를 확인한다. 현실의 거대한 벽 앞에서도 놀랍도록 침착하게 대처하며 끝내 ‘진실’을 밝혀낸다.

 

 

기자 출신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은 2001년 출간한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서 “저널리즘의 본질은 사실 확인의 규율”이라고 했다.

 

오는 7일은 신문의 날이다.

언론 신뢰는 여전히 바닥이다.

이럴수록 기자는 ‘사실 확인의 규율’을 새겨야 한다. 2500년 전 투키디데스처럼.

 

 

 

김동훈 | 여론미디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