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간첩단? 공안 정국? 역사는 반복되는가
윤석열 계엄 준비설은 단순히 망상과 괴담일까?
박근혜 정부 계엄 준비 검토에서 비롯한 불안감
치밀하고 구체적 계획 담긴 당시 계엄 검토 문건
대통령실을 국방부 옆으로 옮긴 의심스러운 이유
계엄 선동하던 뉴라이트들의 불길한 전진 배치도
간첩단 터트리며 공안정국 조성할 실질적 가능성
지난 종북몰이 마녀사냥 때의 오류 반복 말아야
윤석열 정부가 정치적 위기 상황에 대비해서 계엄을 준비할 수 있다는 우려를 망상이라고 무시하는 언론과 지식인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윤석열 정부가 권력을 잃을 위기에서 순순히 물러날 것’이라고 보는 게 과연 현실적이냐는 것이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는 권력을 잃지 않으려고 중동 전쟁까지 추진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윤석열 정부가 그 못지않게 무모할 것이라는 걱정은 결코 망상이 아니다.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의 뿌리인 박근혜 정부에서도 계엄을 검토하고 준비했었다는 사실이 불안감을 키운다.
박근혜 정부는 경찰력과 폭력적 탄압에 의지하는 정부였다. 이미 2015년 연말에 박근혜 정부는 민주노총 집회에 대응해 계엄령 전 단계라는 '갑호비상령'을 발동했었다. 백남기 농민이 경찰 물대포에 맞아 사망한 것도 당시 벌어진 비극이었다.
이런 강경 대응을 지지했던 <조선일보>는 2016년 촛불항쟁이 계속 발전하고 정권이 탄핵당할 상황에 처하자 "걱정되는 것은 민노총 등에서 조직 동원을 시도하고 있는 사실이다. 소수 전문 시위꾼이 쇠파이프를 휘두르거나 하면 경찰은 이에 대처할 수밖에 없다"라며 강경 대응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탄핵에 반대해서 거리로 나온 극우들은 "계엄령을 선포해 촛불 반란군을 진압하라"라고 요구했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한 직후에는 당시 집권여당의 서울시당 부대변인이 단톡방에서 "화염병을 준비해서 경찰을 향해 던져서 화재가 나고 경찰 다치고 사망자가 속출하고 상황이 발생 되었을 때는 국가의 위기에서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게 하는 명분을 만들 수 있었는데 이미 시기를 놓쳐 버렸어요"라는 글을 올려서 큰 반발이 벌어지기도 했다.
국군기무사령부가 계엄 선포와 촛불시위 진압을 검토했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을 때 많은 사람이 충격받은 것은, 이런 상황에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집권여당의 지도부였던 김무성은 그로부터 4년 후 언론 인터뷰에서 "(탄핵이) 기각되면 광화문광장 등이 폭발할 것 아닌가. 그래서 기무사령관한테까지 계엄령 검토를 지시한 것"이라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기무사가 준비하고 검토한 문건에는 '톨게이트와 서울 시내 10개 다리를 통제하고, 신촌과 대학로 일대에 계엄군을 주둔시키고, 포고령을 어기는 국회의원들을 집중 검거하고, 언론과 SNS를 통제하고, 시위대에 발포'하는 방안 등이 담겨 있었다. 이미 7년 전의 문건에 이런 치밀한 방안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요즘 '다수 야당이 반대하면 계엄은 곧바로 해제된다', '실시간으로 SNS에서 생중계되는 데 무슨 계엄이냐' 등의 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더구나, 윤석열 정부의 지난 2년을 돌아보면 '계엄설'에 대해서 '설마'하는 생각보다 '혹시'하는 생각은 더욱 커지게 된다. 왜냐하면 윤석열 정부는 지난 2년간 반대 세력의 손발을 묶고 입을 틀어막으면서, 기득권 질서의 복원을 위한 반동적 질주를 지속해 왔기 때문이다. 30년 검사를 한 윤석열과 그 주변의 엘리트 관료들이 이것이 아래로부터 분노와 불만의 폭발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따라서 대통령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의 국방부 옆으로 이전할 때부터 의심이 제기됐다. 그동안 이 나라의 역사에서 아래로부터 저항의 분출은 여러 차례의 촛불항쟁으로 나타났고, 그것은 대통령 퇴진 요구와 청와대를 향한 행진으로 이어져 왔다. 2016년의 거대한 촛불항쟁은 청와대 코앞까지 행진해 갔고, 경찰력만으로는 대응할 수 없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박근혜 정부가 계엄령을 검토한 것은 그런 상황에서였다. 다음번에 또 거대한 시민항쟁이 벌어지면 2016년보다 더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저항의 표적이 되기 쉬운 청와대를 벗어나서 국방부로 대통령실을 옮기자는 구상에 전 국방부 장관(겸 청와대 안보실장) 김관진의 조언이 있었다는 사실은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다. 김관진은 2016년에 계엄령 검토를 지시한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을 주도한 것은 김용현 전 합참 작전본부장이었고, 그는 이후 경호처장을 거쳐 이제 국방장관이 됐다. 김용현은 계엄령 문건 작성 책임자인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의 동기다. 윤석열 정부와 검찰은 해외 도피했다가 돌아온 조현천에게 내란음모죄를 적용하지도 않았고, 관련자를 사면까지 시켜줬다. 계엄을 검토하고 준비한 책임자들에게 면죄부를 준 셈이다.
김용현은 '대통령 경호를 위해서 군과 경찰의 인력과 장비를 사용할 수 있는 통합 조정 권한'을 경호처가 갖도록 시행령도 바꾸었다.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은 "군과 정보기관을 다시 자유대한민국 수호의 튼튼한 보루로 되돌려놓아야 한다"라며 이런 방향을 지지했다.
윤석열 정부가 친일 극우적 뉴라이트들을 곳곳에 전진 배치하면서 경찰제도발전위 초대 위원장이 됐던 박인환의 발언은 더욱더 노골적이다.
그는 "문재인 전 대통령은 간첩"이라고 했고, 이미 2017년의 토론회에서 "계엄을 선포해서 선거를 중단시키는 것이 정의로운 일일 겁니다. 그때는 저희들이 통일의 기회로 삼아서 통일까지 한 다음에 선거를 해야 되겠죠"라고 발언했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이 윤석열 정부의 핵심에 있고, 계엄을 수행할 수 있는 군부의 핵심 요직을 윤석열과 김용현의 동창인 충암고 출신들이 꿰차고 있는 상황에서 '계엄설'이 제기됐다.
제일 먼저 제기한 민주당 김민석 의원은 "국방부 장관의 갑작스러운 교체와 대통령의 뜬금없는 반국가세력 발언"을 "국지전과 북풍 조성을 염두에 둔 계엄령 준비 작전"으로 지적했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가 "계엄 불사의 전면 사찰 체제를 구축하며 2기 검찰정권 창출을 위한 광란의 질주를 시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모든 것은 윤석열 정부가 조만간 계엄을 선포한다거나, 반드시 계엄을 강행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위험한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경계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또다시 간첩단 사건들을 터트리며 종북몰이 마녀사냥을 하고, 공안 정국을 조성할 위험성은 매우 실질적으로 보인다. 그것은 계엄으로 이어지는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특히 그것은 민주노총이나 지난 총선에서 국회에 진출한 진보당을 겨냥할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 정부는 이미 정권 초부터 민주노총을 '간첩단'과 연결하며 공격해 왔고, 진보당은 박근혜 정부가 강제 해산시킨 통합진보당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와 족벌언론들은 이미 지난 총선 때 ‘진보당은 종북주사파이고, 민주당과 이재명은 그들의 숙주’라는 마녀사냥을 시작했다.
최근에도 윤석열은 "반국가세력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라면서 "전 국민의 항전 의지"를 강조했다. 오랜 경험과 통찰력을 가진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뉴스공장>에서 '역사적 경험을 보면 윤석열의 반국가세력 암약 운운은 곧 간첩단 사건을 터트린다는 신호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간첩단은 민주당 일부와 진보당, 시민단체 등을 엮어서 준비 중일 가능성이 크다.
하나의 유력한 시나리오를 추정해 보자면 이렇다.
탄핵 위기에 직면해 어떤 식으로든 북한과 군사적 대치나 충돌 유발 → '통합진보당의 후신인 진보당이 국회에 들어와서 정보를 빼내서 북한에 넘겼다'라고 의혹 제기 → '진보당을 국회에 데려온 민주당도 여기에 책임 있고 협조했다'라고 엮어내기 → 간첩단 사건 터트리며 공안정국 조성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이낙연과 새로운미래같은 기회주의적 중도세력, 이준석과 개혁신당 같은 신우파들, 진중권이나 김경율 같은 자칭 '진보적 지식인'들은 종북몰이와 마녀사냥에 동참할 가능성이 크다. 족벌언론들이 앞장서며 대대적 종북몰이가 벌어지면 나머지 언론들도 그 뒤를 따라갈 수도 있다.
이것은 모두 2010년 '천안함 공안 정국'이나 2013~2014년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공안정국' 국면 때 우리가 목격하고 경험한 것에서 유추되는 전망들이다. 지금 돌아보면 '통합진보당이 내란음모를 꾸몄다'라는 것은 황당무계한 마녀사냥이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조직원들에게 "총기"와 "국내 주요 시설에 대한 타격"까지 준비시켰다는 게 공안당국의 주장이었다.
이것은 '국정원의 대선 개입과 댓글 조작'으로 궁지로 몰리던 박근혜 정부의 국면 전환용 마녀사냥이었다. 나중에 대법원에서도 '내란음모'는 무죄가 됐다. 그러나 당시 민주진보 진영에서는 함께 공안 탄압에 맞서며 통합진보당을 방어하기보다는 '선 긋고 거리 두는' 태도가 더 많았다. 그 절정은 민주당과 정의당이 국회에서 새누리당과 함께 '이석기 체포동의안'을 통과시킨 것이었다.
그 배경에는 민주진보 진영의 극심한 불신, 갈등, 분열이 있었다. 당시에 민주당에서 문재인 지도부에 대한 흔들기가 끝이 없었고, 통합진보당은 진보당과 정의당으로 쪼개져서 거의 적대적 관계로 발전하고 있었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의 종북몰이 마녀사냥에 대한 방어와 연대의 움직임은 별로 찾을 수 없었다. 결국 통합진보당은 강제 해산당했고, 그것은 전체 민주진보 진영에 깊은 상처와 후유증을 남겼다.
지금의 정치적 상황은 그때와 다르지만 비슷한 측면도 있다. 민주당의 안팎에서는 여전히 검찰과 사법부의 힘을 포함해 어떤 식으로든 이재명 지도부가 밀려나길 기대하는 세력들이 존재하고, 진보정당들은 지난 총선을 거치면서 서로 더욱 갈등하며 분열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와 공안세력은 이런 틈을 노릴 것이 분명하다.
비슷한 상황에서 다르게 행동할 때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 법이다.
전지윤 편집위원misotolen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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