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트럼프 뉴욕, 33살·무슬림·사회주의자 택했다
반트럼프 뉴욕, 33살·무슬림·사회주의자 택했다
“민주당이 선을 넘고 말았습니다.”
2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 인물을 맹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전날 열린 민주당 뉴욕시장 예비경선에서 승리한 조란 맘다니가 대상입니다.
올해 33살인 맘다니는 정치경력 4년에 불과한 뉴욕주 하원의원입니다. 선거 출마 당시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도 몰랐지만, 민주당 주류의 상징인 전 뉴욕 주지사 앤드루 쿠오모를 상대로 대역전승을 거뒀습니다.
뉴욕은 전통적인 민주당 강세 지역이어서 뉴욕시장 당선이 유력합니다.
맘다니는 여러 면에서 새롭습니다. 7살 때 미국 뉴욕시로 이주한 이민자 출신입니다. 7년 전에야 시민권을 취득했습니다. 힙합곡을 발표한 뮤지션이기도 합니다.
그는 우간다에서 인도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무슬림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맘다니를 향해 “겉모습도 끔찍하고, 목소리도 듣기 거슬린다”며, 인종주의적 비난을 퍼부은 건 이런 배경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맘다니는 민주사회주의자를 자처합니다.
주요 공약은 ‘임대료 동결, 시내버스 무료화, 공공보육 확대, 시 직영 식료품점 설립’ 등입니다. 복지 확대 재원은 상위 1% 고소득자와 대기업에 대한 증세로 마련하겠다는 계획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0% 공산주의 광신자”라며 “예전에도 급진 좌파들이 있었지만, 이번 일은 좀 말이 안 된다”고 열을 냈습니다.
이번 예비경선은 ‘트럼프의 미국’에 어떻게 응전할 것인가에 대한 민주당의 첫 대답으로, 전국적인 주목을 끌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민주당 지지자들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에서 치러진, 민주당의 미래에 대한 ‘국민투표’ 성격이 강했습니다.
맘다니의 승리를 두고, 미국 정치권에서는 여러 분석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가장 명확한 건 ‘세대교체’ 열망이지만, 한발 더 나아가 민주당 내 기성 정치에 대한 반감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룹니다.
아버지도 뉴욕 주지사를 지낸 쿠오모는 정치 명문가 출신으로, 2011년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뉴욕 주지사를 지냈습니다. 전국 민주당 주요 인사들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성추문으로 물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직에 도전장을 내밀 수 있었던 배경입니다.
‘트럼프에게 맞서기 위해선 중도화가 답’이라는 흐름이 대세로 자리잡는 와중에 나온 일종의 뒤집기이기도 합니다.
맘다니는 쿠오모가 상징하는 ‘민주당 중도화’ 흐름의 대척점에 선 인물입니다.
뉴욕타임스는 “30대 정치인 중심의 전국적인 진보 물결이 일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고 평가했습니다.
‘삶의 문제 해결’에 유권자들이 응답했다는 점도 중요해 보입니다.
선거 기간에 맘다니는 대선 때 트럼프를 찍은 유권자들을 집중적으로 만나, 이들이 ‘고물가’ ‘생활고’ 등을 호소하는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오른쪽’으로 이동한 게 아닙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희망, 안전 등 삶에 필수적인 안정입니다. 민주당이 그것을 주지 못하면, 다른 쪽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맘다니는 이념·정체성보다는 생활비 경감 정책을 집중적으로 부각했고, 대역전승을 일궈냈습니다.
본선거는 오는 11월입니다.
사사건건 뉴욕시정에 참견하는 대통령 트럼프와 일합을 겨루게 될 뉴욕시장에 맘다니가 당선되면, 뉴욕 역사상 첫 무슬림·남아시아계 시장이 됩니다.
1913년 34살이었던 ‘소년 시장’ 존 퍼로이 미첼 이후 최연소 시장 기록도 경신하게 됩니다.
김원철 |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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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장자 없어야 한다'는 34살 무슬림, 민주당 뉴욕시장 후보로
"공산주의자", "너무 급진적" 비난에도 "나는 민주적 사회주의자" 내세워... 미 정계 '지각변동' 예고
▲미국 민주당 뉴욕시장 후보 조란 맘다니 ⓒ AFP/연합뉴스
34살의 무슬림 청년이 미국 정치에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미국 뉴욕시 선거위원회는 1일(아래 현지 시간) 민주당 뉴욕시장 후보 예비선거에서 3차 라운드 개표를 마친 결과 조란 맘다니 후보가 득표율 56%로 1위에 올랐다고 발표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정치 신인 맘다니가 뉴욕주지사 3선을 지냈고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법무부 장관 후보로 거론됐을 정도로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거물' 정치인 앤드루 쿠오모를 꺾은 것이다. 만약 그가 본 선거에서도 승리한다면 뉴욕시 최초의 무슬림 시장이 탄생하게 된다.
민주당의 한 컨설턴트는 "뉴욕시 현대 역사에서 가장 큰 이변"이라고 말할 정도다. 모두의 예상을 깨뜨린 맘다니의 승리 비결이 주목받으면서 그가 과연 미국 진보 정치의 새로운 얼굴이 될지, 아니면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인지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맘다니의 파격 공약... 샌더스 "해리스가 이렇게 했어야"
인도계 무슬림으로 우간다에서 태어난 맘다니는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주해 2018년 시민권을 취득했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는 뉴욕시에서 빈민층의 주거권을 보호하는 주택 상담사이자 랩 음악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비영리 단체에서 활동했던 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그가 2019년 발표한 곡의 뮤직비디오 영상은 지금도 유튜브 계정에 남아있으며, 최근에는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축하 댓글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2020년 4선 현역 의원을 꺾고 뉴욕주 하원의원으로 처음 당선돼 정치를 시작한 맘다니는 당초 뉴욕시장 후보감에 이름도 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무상보육과 무료 공영버스, 최저임금 인상 등의 공약을 앞세워 고물가에 시달리는 뉴욕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는 법인세 인상과 연 소득 100만 달러(약 13억6천만 원) 이상 부유층 증세로 재원을 마련하겠다면서 연 소득 100만 달러 이상 사람들의 소득세를 2% 인상하고, 법인세도 11.5%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버니 샌더스 연방 상원의원(버몬트·민주),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연방 하원의원(뉴욕·민주) 등 진보 진영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샌더스 의원은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카멀라 해리스(전 민주당 대선후보)가 정치 컨설턴트의 말을 듣지 않고 맘다니처럼 선거 운동을 했다면 지금 미국 대통령이 돼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맘다니 "나는 민주적 사회주의자"... "너무 급진적" 우려도

맘다니는 자신을 '민주적 사회주의자'로 내세웠다. 그는 승리 연설에서 "존엄한 삶이 소수의 행운으로 국한되지 말아야 한다"라며 "모든 시민에게 존엄한 삶을 보장하는 뉴욕시를 만들겠다"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그의 공약이 너무 급진적이라는 비판이 공화당이나 재계에서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민주당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민주당 지도부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와 하킴 제프리스 하원 원내대표는 맘다니가 뉴욕시장 후보에 된 것을 축하하면서도, 공식적인 지지 선언은 하지 않고 있다.
최근 가장 논란이 된 '억만장자' 발언은 맘다니를 둘러싼 기대와 우려를 잘 보여준다. 맘다니는 지난 6월 29일 NBC 방송에 출연해 "솔직히 불평등이 이렇게 심한데 억만장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며 "우리 도시와 우리 주, 우리나라에 더욱 필요한 것은 전체의 평등"이라고 주장했다.
곧장 반격이 들어왔다. 경제적 자유주의 논조를 펴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칼럼을 통해 "민주적 자본주의의 도덕적 약속 중 하나는 정당한 보상을 받는 것이고, 억만장자들은 막대한 기여를 했기에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이라며 "선출된 지도자가 할 일은 성공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축하하고 격려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2013년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400명 중 3분의 2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지 않았다"라며 "맘다니는 도덕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틀렸다. 행정직에 오른 포퓰리스트가 이념과 현실이 충돌할 때 좌절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날선 경고를 날렸다.
맘다니의 핵심 공약 중 하나인 공영 슈퍼마켓(government supermarkets)에 대해서는 진보 성향의 <워싱턴포스트>도 "2025년에 정부가 슈퍼마켓을 운영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은 기괴하게 느껴진다"라며 "이 질문에는 옛 소련부터 지금의 베네수엘라에 이르기까지 여러 실험을 통해 역사가 신중하게 답했다"라고 쓴소리를 했다.
또한 "식료품 사업은 미국 경제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하고 효율적인 분야"라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 상대국에 관세를 부과하는 데 비이성적으로 집착하는 것처럼 맘다니가 얼마나 진심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는지를 보면 놀랍다"라고 짚었다.
맘다니 돌풍에 담긴 '세대교체' 열망... 트럼프 벌써부터 견제
그러나 맘다니의 돌풍은 미국 정치의 기득권 세력에 대한 실망과 세대교체를 바라는 열망이 맞물린 결과라는 평가도 만만치 않다.
<뉴욕타임스>는 "무명이나 다름없었고 경력도 빈약한 무슬림 이민자가 어떻게 민주당 거물을 이겼을까"라며 "맘다니의 여유로운 카리스마, 젊고 매력적인 외모, 활기 넘치는 스타일 등이 강점이지만 쿠오모의 무기력한 선거 운동, 그리고 진보층에서 강력한 동맹을 형성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민주당이 기로에 서 있고, 지도부가 정체성과 방향을 잃었다는 불만이 나오는 가운데 맘다니의 투지는 지난 대선 참패 이후 싸울 준비가 된 젊은 지도자를 찾고 있던 진보주의자들의 관심을 끌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맘다니는 다른 정치인에게서 보기 힘든 재능이 있는 것 같다"라며 "편안하고 품위 있는 태도, 남다른 웅변, 진정성 있게 영감을 주는 도덕성과 수사학은 젊은 시절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같은 진보 정치 거물들과 비교되고 있다"라고 치켜세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벌써 견제에 나섰다. 앞서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맘다니는 100% 공산주의 미치광이(100% Communist Lunatic)"라고 공격했고, 전날 기자들에게도 "이 나라에 공산주의자는 필요 없다. 그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면 좋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공산주의자로 보인다"라고 힐난했다.
또한 '맘다니가 뉴욕시장이 돼 이민단속반원들에게 협조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럴 경우 구속해야 할 것"이라며 "맘다니도 미국에 불법체류 중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모든 것을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폴리티코>는 "맘다니는 미국에 합법적으로 이주한 후 귀화했으며, 이 과정에서 불법이 있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라고 지적했다.
맘다니는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나에 대한 공격을 넘어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며 "우리는 이런 위협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맞섰다. 이어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 정책을 공부해 보길 바란다"라고 반박했다.
공화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같은 공격은 오히려 맘다니의 존재감을 키워주고 있다. 또한 맘다니의 등장이 민주당을 새롭게 바꿀 절호의 기회라는 주장도 나온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전 수석 보좌관 댄 파이퍼는 "지금 뉴욕에서 벌어지는 일은 여전히 낡은 정치에 집착하고, 특정 주제에 대한 토론 요점만 외우고, 정작 말해야 할 내용을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민주당 기득권층에게 매우 시끄러운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CNN 방송도 "맘다니의 활약이 민주당에 미치는 모든 의미를 파악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라면서도 "그러나 이번 성과를 통해 민주당이 여러 주요 쟁점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그리고 누가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라고 짚었다.
만약 맘다니가 현실에 부딪혀 공약을 실현하지 못하더라도, 이름 없는 무슬림 정치인이 단숨에 유력한 뉴욕시장 후보로 올라섰다는 것은 정치 기득권층에 도전하는 젊은 피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평가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