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2002년 부산 다대포 마라톤(하프코스) 참여기

道雨 2007. 6. 8. 22:42
 

          2002년 부산 다대포 마라톤(하프코스) 참여기


                                                           오 봉 렬


  D-1일(2002. 11. 23. 토요일)

 국제신문에서 보내온 물품들(칩, 티셔츠, 번호표 등)을 확인하고, 국제신문의 마라톤 준비에 관한 기사를 읽어보았다. 마라톤 당일에는 아침 6시에는 기상해서 아침식사를 탄수화물이 많은 음식으로 7시경에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9월에 있었던 광안대교 개통기념 바다마라톤에서 10km 뛴 이후로 그동안 달리기 연습을 한 번도 하지 않아 은근히 걱정된다. 1주일에 한 번 정도 축구한다고 뛴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집사람은 혹시 사고라도 당할까봐 걱정이다. 나 또한 이번에는 정말 자신이 없지만, 걸어서라도 가면 되지 하는 심정이다. 남자의 그 알량한 존심(자존심)이 그만둘 수 없게 하는 것이다. 경찰에 근무하는 친구가 같이 뛰겠다고 하니 다행이다는 생각이 든다. 큰아들 공진이는 무슨 시험이 있어서 참여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동안 몸을 관리하지 못해 체력에 자신이 없어 그러는 것 같기도 하여 은근히 부아가 치미지만, 작은 아들 범진이(고2)가 같이 뛰는 것이 마음에 큰 힘이 된다. 친구에게 전화해서 내일 다대포에서 만나 공진이 번호표와 칩을 주기로 했다.

 농담삼아 전장으로 떠나는 군인같이 집사람에게 내가 갚아야 할 빚 상황에 대하여 알려준다. 마누라는 한 술 더 뜬다. 보험회사에서 받아야 할 돈이 얼마냐구 묻는다. “그건 나도 몰라. 자기네가 알아서 약관대로 주겠지.”하고 대답한다. 이래선 안되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동호회가 많지만 글자 그대로 자기가 좋아서 즐기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나는 이게 뭐야, 꼭 죽음을 불사하는 듯한 태도로 나서니 이래서야 어찌 즐긴다고 할 수 있겠나. 자존심과 과시욕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닌가? 성취의 즐거움도 있지만 이래서는 안되지. 다음부터는 꼭 연습을 해서 즐겁고 자신감에 차서 달리기에 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일을 위해 일찍 자야하는데 평소에 늦게 자는 것이 버릇이라 잠이 안온다. TV에서 ‘007 두 번 산다’라는 영화를 보고 나니 새벽 1시가 넘었다. 범진이는 아직도 컴퓨터를 하고 있다. 축구를 많이 하고, 젊으니까 웬만해도 안뛰겠나 생각하곤 내일 제대로 일어나질까 하는 걱정에 자명종을 맞춰놓고 내가 먼저 잠자리에 든다.


   D일(2002. 11. 24. 일요일)

 아침에 자명종이 울긴 울었는데, 실제 일어나서 시계를 보니 7시가 넘었다. 서둘러 세수하고 범진이를 깨우고,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나니 8시가 넘는다. 늦으면 차가 밀리고 주차하기도 곤란할 텐데 하며 걱정이 앞선다. 봄에 참가했을 때는 너무 일찍 도착해서 오히려 시간 보내기가 지루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고 해도 날씨가 추워 달리기 복장으로 기다리기가 곤란하므로 승용차를 가지고 가는 것이 편리하다.

 다대포를 향해 출발하면서 시계를 보니 8시 20분, 제대로 도착할 수 있으려나 걱정된다. 아니 도착이야 하겠지만 주차할 곳이 문제인데...

 다대포까지 오는데 차는 거의 밀리지 않아 9시 20분경에는 도착한 듯 싶다. 그런데 아니나다를까 주차공간이 없어 백사장에 차를 들여보내지 않는다. 주차할 곳을 찾아 이리저리 빙빙 도는데 같이 뛸 경찰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몰운대쪽으로 끝까지 들어오란다. 그곳에 가니 친구가 와 있고 주차할 공간이 있었다. 서둘러 겉에 입고 간 긴옷을 벗고 달리기 복장을 하였다. 아이구, 춥다! 차 열쇠는 물병주머니 쌕(조직위원회에서 티셔츠대신 나누어 준 것)에 넣고 뛰기로 했다. 준비운동도 채 하지 못했는데 풀코스가 출발한다고 한다. 우리 셋도 얼른 출발지점으로 이동하여 중간쯤에 끼었다. 군수사령부, 비상구(사하소방서) 등 각종 동호회 이름을 붙인 뒷모습이 보인다. 범진이와 나는 장갑을 준비하지 못해 손이 춥다.

 10시 5분, 드디어 우리가 속한 하프코스가 함성을 지르며 출발하였다. 우리는 중간쯤에 섞여 뛰게 되었다. 출발하자마자 범진이는 나중에 차에서 보자며 앞서 뛰어간다. 내가 친구와 같이 뛰니까 안심하고(?) 저는 기록을 보겠다고 먼저 간 것이다. 친구하고 보조를 맞춰 뛰면서 이것저것 얘기를 나눈다. 이 친구는 지난 주에 3번 연습했다고 한다. 10km 두 번, 한 번은 17km를 뛰었다고 했다. 평소 허리가 아파서 고생했는데 그렇게 연습했다니 대단하다. 그런데 나는?

 1km 쯤 뛰었을까, 벌써 어깨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이상하게도 달리기 한 3번 모두 공통적인 증상이다. 이번에도 어느정도 달리다 보면 통증이 없어지겠지. 왼쪽으로 바다에 모래톱을 거쳐 을숙도의 끝부분이 보인다. 10km 반환점(출발선에서 5km 지점에 위치)을 지났다. 야, 벌써 4분의 1은 뛰었네. 조금씩 완주에 대한 가능성이 생기는 것 같다. 6km쯤 뛰었을까? 손이 시리고 팔꿈치가 추위로 인해 가렵다. 아직 땀도 나지 않는다. 아까 어느 분 말이 추울때는 장갑을 끼어야 완주에 도움이 된다고 하던데 왜 장갑 생각을 못했을까 후회가 된다. 그런데 어깨 아픈 것은 어느듯 가셔졌다. 다행이다. 그러나 달리고 있는데도 여전히 춥다. 8-9km 쯤 달렸을까? 코스는 낙동강하구언에 접어들기 전에 윗쪽으로 더 갔다가 U턴하여 돌아오게 되어있다. U턴하여 낙동강 하구둑으로 접어들면서 페이스가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한다. 이제 추위는 가셔지고 팔꿈치 가려운 것도 없어졌다. 이마에 약간씩 땀이 배인다. 그런데 무릎과 허리가 약간씩 아프기 시작한다. 그리고 점점 숨이 찬다. 내 심장의 능력에 벗어나는 것 같다. 내가 조금씩 처진다. 경찰친구놈은 이제 제 페이스대로 그냥 앞서 달려간다. 할 수 없다. 이제 나 혼자 달리는 거야, 이렇게 숨이 찬데 쫓아가려다가는 제 명대로 못 살지 하며, 나도 내 나름대로 페이스 조절하며 달린다. 오른쪽에 을숙도 휴게소가 보인다. 축구장, 문화회관 등의 표지판이 보인다. 그래, 저기 을숙도문화회관이 있군, 이번주 토요일에 저기에서 행사가 있다고 했지. 계속 생각하며 뛴다. 그런데 너무 늦어지는 것 같다. 앞에 부부처럼 보이는 남녀가 나란히 달리고 있다. 여자들도 저렇게 잘 뛰는데 생각하며 열심히 쫓아가 본다. 그러나 그들은 어느틈엔가 저 앞에서 달려가고 있다. 도저히 못 쫓아 가겠다. 그냥 내 페이스대로 뛰자. 흡흡 허허, 흡흡 허허, 코로 두 번 들이마시고 입으로 두 번 내쉰다. 속도가 자꾸 처진다. 천천히 뛰다보니까 숨찬 것은 어느덧 가셔졌다. 그러나 페이스가 자꾸 처진다. 뒤에서 나를 추월하여 가는 사람들이 자주 생긴다.

 낙동강 하구둑을 건너고, 하프코스 반환점을 돌았다. 속도가 더욱 처진다. 낙동강하구둑을 다시 건너 돌아오는 길에  ‘부산은행’이라고 등에 적은 여자분이 앞에 가고 있다. 저 여자를 보고 쫓아가야지 하고 생각하며 따라가 보지만 또 뒤쳐지고 만다. 허벅지에 힘이 없어 달리기가 힘들어진다. 약 12-13 km 쯤 뛰었을까? 다리가 자꾸 힘들어진다. 발바닥에 모래가 들어갔나 발바닥이 아파온다. 전에 10km 뛸 때도 다리에 힘이 없기는 했지만 발바닥이 아프지는 않았는데 어쩐일인가? 속도는 자꾸 처진다. 상록마트, 영광도서, 국민연금으로 노후를, 산재보험, 부산세관 등의 글귀를 적은 사람들이 나를 추월하여 달려간다. 옆에 찬 물병을 꺼내 물을 먹는다. 추위가 가셔진 지금은 거추장스러워지게 되었나 길 옆에는 버려진 장갑들이 간혹 눈에 띈다. 주변에는 힘들어 걷는 사람들도 제법 많아진다. 나도 자꾸만 걷고 싶어진다. 그러나 한 번 걸으면 다시 뛰기가 정말 힘들어진다는 것을 지난번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에 이를 악물고 계속 뛴다. 팔을 힘차게 흔들어보기도 한다. 약간 속도에 도움이 되는 듯 하지만 이내 그치고 만다. 뛰고 있어도 옆에서 걷는 사람과 별반 차이가 없다. 정말 허벅지가 무겁다. 진짜 걷고 싶다.

 15-16km 쯤 달렸다. 자원봉사자들이 종이컵을 들고 있다. 그들 옆에는 게토레이 병들이 보인다. 그래 저걸 받아 마시자. 물 보다 낫겠지. 게토레이 한 컵을 받아 마셨다. 물 보다 훨씬 나은 것 같다. 스포츠음료가 아무래도 나은 것 같다. 뒤를 돌아다 보았다. 내 뒤에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있구나. 다행이다. 처음에 후미그룹에서 뛰었더라면 아마 벌써 낙오했을 것 같다. 중간그룹에서 출발하길 잘한 것 같다.

 18km 쯤 왔다. 이젠 도저히 못 뛰겠다. 허벅지가 무겁고 발바닥이 많이 아프다.  ‘걸어서라도 들어가기만 하면 되지’ 생각하고 뛰기를 멈추고 걷기 시작했다. 다리가 무겁기 그지 없다. 그런데 왼쪽 허벅지의 사타구니 부분이 아프다. 그리고 몸이 자꾸만 왼쪽으로 쏠린다. 휘청휘청이다. 내 옆을 추월하여 지나가는 사람이 나를 흘깃 쳐다본다. 약간 창피하다. 약 10분정도 계속 걷는다. 내 앞뒤로 걷는 사람이 많아 그래도 괜찮다. 사타구니가 계속 아프다. 도착점 3km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다시 천천히 뛰기 시작한다. 1km 쯤 뛰는데 허벅지가 힘들고 발바닥이 아프다. 다시 10분 정도 걷는다.

 20km 쯤 되었을 때 다시 뛰기 시작한다. ‘막달리자’ 동호회 깃발이 보인다. 깃발 든 사람은 남자인데 그 옆에 여자 회원과 함께 뛰고 있다. 이 남자는 긴 츄리닝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완주한 후에 이 여자 회원을 응원하기 위하여 깃발을 들고 다시 돌아와 뛰고 있는 것 같다. 나도 이 깃발을 보고 힘을내어 뛴다. 지금 이 순간은 나도 ‘막달리자’ 회원인 듯이 그 남자가 고맙게 여겨진다. 골인 지점이 다가오자 그 남자는 깃발을 여자에게 넘기려 한다. 그러나 여자는 사양하고 계속 뛰어 골인한다. 나도 그들 뒤에 약 5m 차이로 뒤처져 골인한다. 시계를 보지 않았지만 옆에 사람들 말로 약 2시간 30분쯤 걸린 듯 하다.

 칩을 반납하고 대신 초코파이, 카스테라 빵과 바나나, 우유가 든 봉지를 받아들고 주차해둔 곳으로 오니, 친구와 범진이가 떨고 기다리고 있다. 나보다 이삼십분은 먼저 들어왔지만 차 키를 내가 갖고 있어 옷을 입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얼른 옷을 꺼내 입고, 정리운동으로 오리걸음과 쪼구려뛰기를 몇 번 한 후, 허기진 속에 받은 것들을 맛있게 먹고 귀가할 준비를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친구와 함께 다대포 회센터에서 싱싱한 회를 사 갖고 집에 와서 맛있게 먹고, 아들과 함께 목욕탕에 다녀온 뒤 잠에 빠졌다.


   D+1일(2002. 11. 25 월요일)

 완주하고 난 뒤의 기쁨과 성취감은 대단하다. 그러나 이번 달리기로 나는 여러가지를 알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선 내 자신의 몸 상태이다. 전반에 페이스를 빨리 할 때 내 심장의 능력이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며, 후반에 있어서는 심장 보다는 다리의 근육이 약하여 계속 뛸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습이 없이 무작정 참가하는 것은 즐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축구를 2시간 하는 것 보다 훨씬 힘든 것 같았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여전히 다리를 잘 쓸 수가 없고 발바닥은 물집이 생겨 딛기가 불편하였다. 패잔병이 따로 없었다. 오늘의 내가 바로 패잔병의 모습이다. 그저께 저녁 때, 전장에 출전하는 듯한 비장감이 든 것도 연습부족에 평소의 체력관리가 허술한 탓이었다. 지금의 내 모습은 바로 자기와의 싸움에 진 패잔병인 것이다.

 내 목표는 풀코스를 완주하는 것이다. 내년에 하프코스를 두 번 정도 더 뛰고, 후년에는 풀코스에 도전할 계획이다. 그 때는 지금과 달리 평소에 체력관리에 힘쓰고 달리기 연습도 더 열심히 한 후에 정말 즐기는 마음으로 대회에 참여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2002년 11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