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道雨의 辯

道雨 2007. 6. 8. 23:04

 

 

                              道雨의 辯

                                                                               오  봉  렬


  1985년 한 해가 저물어가던 12월 하순, X-mas를 불과 며칠 앞두고, 나의 人生行路가 바뀌어지게 만든 일이 발생하였다. 다름이 아니고 내가 病院에 入院하게 된 것이었다.

 

  며칠째 속이 거북하게 지내던 중,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X-ray 촬영을 했다. 진찰이 다 끝나갈 때까지 특별히 이상한 곳은 발견되지 않았는데, X-ray 사진이 나오자, 그것을 살펴본 內科 군의관은 사진을 들고 나를 胸部外科로 데려갔고, 사진을 본 胸部外科 군의관은 나를 보고 “곧바로 수술을 해야 하니까 이 자리에서 바로 入院을 하라”고 하였다. 며칠 전에 점심 먹은 것이 체한 것이 아닌가 하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氣胸이라고 하는 병으로서 폐에 부분적으로 염증이 생겨 고름이 고이고, 공기가 호흡되지 못하니 칼로 째어 호스를 꽂아 고름과 공기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肺手術(?)을 받고 2주일 동안 국군부산통합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입원해 있는 동안 몇 권의 책을 읽었는데 牧民心書도 그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그 책에서 다음과 같은 글귀를 발견하고는 나의 인생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待有餘以後濟人  必無濟人之日

                   待有暇以後讀書  必無讀書之時

    (여유가 생기기를 기다려 남을 구제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남을 구제할 날이 없을 것이요, 한가하기를 기다려 책을 읽고자 한다면 반드시 책을 읽을 때가 없을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전역 후에는 書店을 하면서 世上事에는 超脫하게 冊이나 보면서 살아가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肺手術(남에게서 베풀음을 받음)을 받고 난 뒤에는, ‘나도 뭔가 Zero(0)보다는 Plus(+)쪽으로 인생을 살아가야 되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은 韓醫學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1988년 2월, 전역을 얼마 앞두고 함께 근무하던 선배 장교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名醫는 못 될지라도 仁(施)醫는 되겠습니다.”라고. 그리고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그러다보니 나에게는 學問的으로 消極的인 面이 없지 않다. 韓醫學을 새롭고 더욱 깊이 있게 발전시키겠다는 생각보다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醫學知識과 각종 醫術을 제대로 배우고 익혀서 하루속히 내 자신이 남에게 베풀어 줄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바라는 것이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에 조그마한 것이라도 韓醫學 發展에 기여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다.

 

  1984년에 砲隊長으로 재직시에 나는 ‘砲隊長 要望事項’으로서 「나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하자」를 내걸고, 나의 指揮下에 있는 사병들에게 이에 대한 精神敎育을 시키곤 하였다. 단체생활(軍隊도 단체의 하나이므로)을 함에 있어서 規律과 질서도 필수불가결의 요소임에 틀림없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相互間에 이해와 아껴주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 스스로를 엄격하게 다스리면서, 욕심을 작게 하여 만족할 줄 알고(小慾知足),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도와주며 용서하는 마음으로 생활하고자(寬容) 하였다. 나의 권리(이익 · 재물)를 양보하거나 사용하여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도와주었을 때, 나에게 있어서 外形的으로는 物質的 · 時間的 손실이 있거나 身體的으로 좀 고달프고 귀찮을지라도 마음만은 뿌듯하게 차오는 즐거움을 우리는 많이 경험하지 않았던가?

  결국 가장 값진 베풀음은 「인간 본래의 추호도 때묻지 않은 깨끗한 마음을 찾아서 영원한 즐거움을 얻기 위하여 베풀어주는 마음」이 아닌가 한다. 그러한 가운데 삶의 보람을 느끼고, 自己自身의 存在意識을 가지며, 幸福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人間에게 있어서 幸福이란 어떻게 정의되고 산출되는 것일까? 예전에 어느 책에선가 다음과 같은 등식을 본 것이 기억난다.


                         所有(成就)

           幸福   =   -------------

                            慾望


  위의  등식을 보게 되면, 幸福은 자기가 원하는 것에 대한 成就된 것의 比率이며, 慾望이 클수록 幸福의 指數는 낮아지고 所有(成就)가 클수록 幸福指數는 커진다. 따라서 幸福을 크게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所有(成就)를 크게 하는 방법이다. 이는 주로 西洋的 思考方式에 의한 것으로, 慾望이 크더라도 經濟的 所有나 社會的 成就를 더욱 크게 하여 행복의 지수를 크게 하는 것이다.

  둘째, 慾望을 작게 하는 방법이다. 이는 주로 東洋的 思考方式에 기인한다. 東洋에서는 예로부터 物質的으로 풍부한 것을 탐탁치 않게 여겼으며, 선비는 곧 淸貧으로, ‘君子食無求飽居無求安’하라고 하여 욕심을 내지 않도록 가르쳐왔던 것이다.

  이상의 두 가지 방법을 비교해 볼 때 각각의 장단점이 있겠으나 나의 생각에는 東洋的인 方法, 즉 慾望을 작게 하는 방법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物質的 所有나 社會的 成就는 제한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逆作用을 초래할 우려가 높지만, 慾望을 작게 하는 것은 自己自身의 問題이므로 얼마든지 조정 가능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 대한 逆作用도 거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고 불신과 대립이 팽배하여 급기야는 5·3 사태까지 야기시킨 現世態를 안타까워 하면서 曹植의 「七步의 詩」를 소개하고 두서없는 글을 맺을까 한다.

  曹操는 막내 아들인 植의 文才를 칭찬하고 그를 매우 사랑하였으며, 큰 아들인 丕를 탐탁치 않게 여겼다. 이를 못마땅히 여긴 曹丕는 天子의 位에 오른 뒤에 동생인 植을 불러, 자기의 앞에서 일곱 발짝을 걷는 동안에 詩를 짓게 하였는데 다음의 詩가 바로 그것이다.


          煮豆燃豆箕  (콩깍지를 지펴 콩을 볶으니)

          豆在釜中泣  (콩은 솥 속에서 우네)

          本是同根生  (본디 같은 뿌리에서 났거늘)

          相煎何太急  (서로 볶다니 안타까워라)

  

  전경이나 대학생이나 모두 같은 동포요, 형제요, 친구인데 어찌하여 지금은 서로 치고 받고, 던지고 쏘고 하는 세태가 되었단 말인가?

  우리 모두 일곱 발짝 천천히 걸음 옮기며 너그럽게, 여유있게 생각해보자.



 道雨는 나의 佛敎式 法名이다. 신앙심이 옅은 관계로 부처님께 죄송스런 생각이 없지 않으나, 그래도 나는 이 이름을 좋아한다.

  어느 한적한 시골길을 생각해보자. 평소에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웃음과 애환 속에 지나칠 이 길도, 비가 내릴 때면 아마도 행인이 거의 없을 것이다. 이따금 길 옆의 풀섶에서 개구리가 가로질러 팔짝팔짝 뛰어갈 것이지만 ···. 그래서 빗속의 길은 외롭다. 그러나 그 길은 여전히 그곳에 있으면서 이따금 지나치는 빗속의 행인을 맞이한다. 사람들이 많든 적든, 자기를 알아주건 말건,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자기의 할 바를 다한다. 그래서 나는 ‘道雨’를 ‘빗속의 길’로 해석한다.

  위의 글이 나의 身邊雜記에 지나지 않는 내용없는 글이기에 위와 같이 제목을 붙였음을 양해하여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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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내가 동의대학교 한의과대학에 입학한(1989년), 예과 1학년 때 한의대 잡지 ‘仁東龜’(제10호)에 기고했던 글이다. 입학생 중에 제일 나이가 많다 보니 편집부에서 글을 한 편 써 달라고 요청한 듯 싶다.

  5·3 동의대 항쟁의 와중에서 순국한 경찰관들의 명복을 빌며, 다시는 이와 같은 슬픈 일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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