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문

어느 날의 일기 (1982. 11. 14)

道雨 2007. 6. 8. 23:13

 

 

 

               어느 날의 일기 (1982. 11. 14)


  일요일.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오늘 우리집에 오신다 하여, 어제 허대위에게 주번을 교대하고 퇴근했다. 오후 2시 경으로 예정했는데, 3시가 된 지금까지 도착하지 않으셨다. 혹시 들르시지 않고 바로 전주에 내려가신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모처럼, 아니 우리가 결혼한 이래 아직까지 장인께서는 우리집에 오신 적이 없으니까, 처음으로 모시는 것인데. 오시면 술 담그어 놓은 것 따라드리고 장기도 한 판 두자고 하려고 했는데 ···

  

방바닥에 엎드려 「法頂 隨想錄」을 잠시 들여다 보며, 하루 한 가지씩 착한 일 해보려는 택시 운전사 얘기를 읽고 잠시 생각했다.

  나도 뭔가 이웃에 도움되고, 내 마음에 기쁜 일을 했으면 하고 지냈는데(아내도 같은 마음) 지금까지 얼마동안 잊고 지냈던 것을 생각해 냈다.

  고아원에 수박 보냈던 일, 신문 돌리는 소년에게 전해주라고 보급소에 갖다 준 약간의 과일과 돈. 그 외에는 생각나는(行한) 일이 없는 것 같다.

  아버지 · 어머니께 보내드리는 것도 지난 달 그냥 넘어갔고 이 달에 보냈고.

  내 마음에 흐뭇하고 이웃이 기쁜 일은 또 언제나 행하게 될까? 남의 주목을 받는 일은 하기가 싫고 ···

  

화천 길손식당으로부터 편지가 왔다(어제 퇴근하니 책상에). 생각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편지를 받고 보니 내가 새삼 미안하고, 기쁘기 그지 없다.

  선한 사람들!

  그 아주머니도 그렇게 말했다. 그 때 그렇게 선했던 사람들, 지금은 기억 속에서나 남아있다고.

  사람의 情이란 그런가?

  고마운 사람들!  그렇지. 내게도 선한 사람들이었지. 지금 내 주변에도 선한 사람들은 많이 있다. 모두가 나 보다는 선한 사람들이다.

  

세상을 다시 살았으면 하는 사람을 망우리 공동묘지로 데려가셨다는 법정스님.

  나도 세상을 다시 살아야 할까?

  軍 生活에 대한 끊임없이 일어나는 반발심. 전역지원서는 내야 되겠지.

  그 다음에는 무얼 하는가? 공부?  사업?  취직?  농사?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임할 수 있도록 전술 · 전기의 기초는 배워 놓았으니 그 때 나서자. 지금 平時의 軍에서 나는 無能하고, 不合하고, 獨善的이니까. 비위에 맞지 않는 일도 많고 ···

  전역하고 나면 무엇을 해야 할까 하고 고민이다. 최소한 나의 처자식은 먹여 살려야 할 테니까. 또 내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은 하고 싶지도 않고.

  부대 일에 쫒겨 집안 일에 너무 무심했던 것 같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럴 것 같으니 아내에게 미안한 감이 없지 않다.

  

길손에 엽서를 보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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