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

경주 불국사 인근 유적지 답사기 (김현숙)

道雨 2007. 6. 18.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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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불국사?인근 유적지 답사


* 답사일자 : 2003. 3. 16                             - 김 현 숙 -



인생이 나름대로 자신의 길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어떤 일을 선택해서 어느 만큼의 시간을, 관심을 집중하여 투자해야 하는가?

이런 과정이 자신의 흔적을, 자신의 색깔로 드러나게 하는 것 같다.

지금 어렴풋이 남편과 공동으로 걷고 있는 길이 보인다.

거듭하여 걸었고 오갔던 흔적이 그 길을 길들였나보다.

이런 변화되어가는 느낌이 좋다. 우리의 삶이 우리의 빛깔을 만들어가는 것 같아서.

문화유산 답사라는 공통의 취미를 통해서 마음이 포개지는 순간이 잦아진다.



불국사. 


'그대를 만나기 위해 많은 이별을 했는지 몰라

이제는 나의 온몸으로 부딪쳐 느끼는 사랑일뿐야'

가수 김민우의 '사랑일뿐야'의 노랫말처럼 지금까지 답사를 하면서 지식과 느낌을 축적하였던 날들이 오늘을 만나게 했나보다. 문화유적의 아름다움과 품격을 기억 속의 어떤 훌륭한 모범과 가늠해보려고 하고 지금 보고 있는 대상의 빼어난 점을 알아채려고 하는 몸짓들이??????

석가탑의 지대석을 빙둘러 연꽃 문양의 둥근돌을 네 귀퉁이와 네 면의 중간에 배치하였다. 그 단단한 둥근 기초.

그리고 그 위에 부처에 대한 공경심을 연꽃문양으로 새겨 넣었으니.

공부 잘하는 모범생에게 볼 수 있는 기본이 튼튼하다는 공통점을 석가탑에서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탑의 근본이라는, 모범 중의 모범이라는 칭송을 듣고 있는 석가탑. 그곳에는 부처에 대한 존경심이 훈훈하게 어려 있었고 최고의 기술자 아사달의 솜씨가 더해져 이런 걸작으로  남게 되었을 것이다.

다보탑을 이루는 화강암의 단단한 석재들이 부드러운 나무를 끌로 파내고 조각한 것처럼 매끄럽다. 다보탑을 조성할 때 탑을 통해 보여주려고 했던 생각, 그것은 나의 내면세계의 변천 과정이자 앞으로 그렇게 되라는 메시지를 전해 받는 느낌이다.

다보탑은 

'네모진 1층 탑신에 자신을 거칠게 드러내는 부족함에서

2층 몸돌의 팔각형은 마음 고생?세상 고생을 통해서 겸손해져라

3층 몸돌의 둥그런 원은 우리 인간들이 공통으로 지향하는 세계인 부드럽고 진정 큰 이익은 어느 것인가?'를 생각하고 깨달은 자의 세계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끊임없이 최선의 기쁨?보람?좋은 것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누구든 무엇을 향해 움직일 때는 어떤 동기를 가지고 행동을 할 것인데 중요한 것의 순위는 다 다르다.

그런 중에도 비슷한 생각?행동방식을 가진 사람들끼리 친구가 되어 만난다. 이제는 만나는 사람들이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공감하는 가운데 같이 커가는 소중한 이웃이 될 수 있고  노후의 친구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하기 전에 비해 앞으로는 사람과의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강화할 수 있을 것이고, 이 사회와 더 긴밀해질 수 있는 시멘트의 성분으로 변화되어 갈 것 같은 느낌으로 흐뭇해진다.


극락전과 비로전의 금동좌불상은 국보이다.

그래서 유심히 살펴보았다.

나의 눈높이에서 그 가치는 잘 헤아리지 못하겠지만 장흥 가지산 보림사에서 보았던 철조불상과 철원 도피안사의 철조불상과 닮은 점이 있었다. 반듯하게 허리를 세우고 있고  머리부분과 몸통부분 그리고 앉아있는 하체부분의 균형이 닮았다. 그리고 위의 불상들은 다같이 국보 보물이다.

작은 것이지만 하나의 특징을 꼽아 비교하고 가늠해볼 안목을 획득했다는 사실, 그것은 어제의 축적이 있었기에 가능한 오늘일 것이다.


영지. 


그다지 크지 않은 저수지가 토함산 줄기에서 비롯된 물줄기를 모아 담았다. 그리고 석가탑을 조각했던 백제의 장인 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을 간직했다고 삼국유사는 전해주었다. 그래서 이 저수지는 답사객들의 순례코스가 되었다.

아사달이 조각했다고 전하는 얼굴이 훼손된 채 풍채는 수려한 석불좌상이 저수지 옆 소나무숲에 있다. 그 당당함은 남산의 보리사 석불과 비교된다고 한다.


괘릉. 


신라가 전성기를 지나 차츰 하대를 향하는 중에 위치한 원성왕.

옛말에 부자는 망해도 3년은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신라의 역사도 그렇게 적용이 가능한 것 같다. 신라의 융성기에, 최전성기를 지난 왕의 무덤이 신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죽음 자리를 마련했다. 왕릉 첫 입구에 세워진 무인석의 서구적인 얼굴은 신라에 귀화한 아라비아인이라고도 하는데, 아라비아와 왕래하는 신라의 국제적인 활동영역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처용가'를 불렀고 전해오는 처용의 가면이 아라비아인의 얼굴을 닮았다고 하여 처용의 신분을 아라비아인이라고도 해석하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고 연결해주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해로부터 비롯되는 것이자 삶의 본질에 관계되는 바탕이다.

이해관계(利害關係)를 넘어서야 가능한 영역.

그런 후에야 비로소 이해?배려?사랑이 거침없이 생성되고 서로의 가슴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전에는 몰랐을까? 아니다. 알고는 있지만 실천할 준비가 부족했고  불 붙일 쏘시개를 넉넉히 준비하지 못했다.


돈?사랑?건강?????? 그것들 중 어느 하나 .

그리고 만족이 항상 부족하다. 산 너머 산인 것이 인생이라는 느낌이 나에게는 그냥 적용된다. 오늘 할 수 있는 일과 5년 후에 가능한 일이 있는데 순서를 바꾼다면 둘 다 이룰 수 없지만 지금 가능한 부분을 먼저 챙긴다면 그것은 또 둘 다 이룰 수 있다.

그렇게 가능한 것을 찾아 걸었던 오늘, 경주 답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