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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니션? '아티스트'라 불러다오

道雨 2010. 4. 16. 15:08

 

 

 

                 신이여, 어디까지 가시나이까

- 메시, 챔피언스리그 아스널전에서 혼자 4골…

              “그는 테크니션이 아니라 아티스트다”

 

 

세상에는 고수들이 참 많다.
당장 동네 탁구장에 가보라. 탁구장 주인은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면서도 동호인의 강력한 스매싱을 친절하게 받아준다. 당구 좀 친다는 아마추어 애호가들, 동네 당구장 주인과 겨뤄서 좀처럼 이겨본 일이 없을 것이다. 고백건대, 교회 누나 때문에 탁구채를 잡은 중3 때 이후로 난 한 번도 탁구장 주인을 이겨본 적이 없다.
기원 아저씨는 또 어떤가. 내가 몇 해 전에 몇 번 들락거렸던 서울 도봉구 방학동의 기원 주인은 홀로 찾아온 상대가 6급이면 7급이 되었고, 3급이면 4급이 되었다. 상대가 아마 3단이면 이제 갓 행마의 묘법을 익힌 사람처럼 두면서도 막판에는 꼭 이겼다.
“어라, 이게 뭐야. 두 집이네.” 꼭 그렇게 덧붙이면서. 고수들이다. 그런데 다들 동네에서 가게를 할 뿐이다.
 
 

» 메시는 테크니션을 넘어 아티스트의 경지에 이르렀다. 4월7일(한국시각)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아스널전에서 세 번째 골을 넣고 환호하는 메시.연합AFP

저 까마득히 높은 곳의 고수

 

프로의 세계란 더 말해 무엇하랴.

우리는 이천수의 행동거지를 조금은 불편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보지만 그가 그라운드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종횡무진이다. 전성기(이제 29살인 선수에게 미안한 표현이지만) 때 이천수가 그라운드를 누비면, 그 순간 경기장은 두 배쯤 확대되었다.

야구는 또 어떤가. 투구하는 장면을 포착하는 중계 카메라는 언제나 투수 뒤에서, 포수와 투수의 일직선을 연장한 지점에 서 있다. 투수 손을 떠난 공은 거의 일직선으로 날아가는데, 그 엇비슷한 관점에 카메라가 서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공의 궤적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를 ‘마주’ 보게 되면, 그러니까 심판의 위치와 높이에서 보면, 공은 순식간에 포수의 미트로 빨려 들어간다. 던지는가 싶은데, 순간, 끝나버리는 것이다. 이를 타자의 지점에서 대응하면, 우리네 초심자들은 투수의 가장 느린 볼에서도 공포감을 느끼게 된다. 투수의 매우 느린 공도, 먹잇감을 노리는 필사적인 뱀처럼 우리의 무릎과 비뇨기 계통 사이로 쉬익쉬익하며 무섭게 스쳐 지나간다.

 

그 뛰어난 프로의 세계에도 실력의 위계가 엄청난 층위로 존재한다. 나는 언젠가 동호회 축구에서(그러니까 조기축구에서) 어느 선수가 왼발만을 사용해야 하며 강슛은 절대 날리면 안 되는 조건 아래 뛰는 것을 보았다.

그럼에도 그는 경기 전체를 지배했다. 왼발만 이용해 드리블했는데, 그의 드리블이 끝나자 그는 공과 함께 적진의 가장 깊숙한 곳, 곧 골문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는 ‘장래가 유망’한 ‘고교 축구’ 출신이었다. 그런 경력의 소유자가 동네에 뜨기만 해도 경기 판도는 한순간 달라지니, 경력이 한 칸씩 올라가는 순간마다 그들의 몸놀림과 시야와 지배력은 현격히 달라지는 것이다.

고교 유망주, 대학 주전, 프로 선수, 대표팀 예비 엔트리, 대표팀 베스트 일레븐, 일본 진출 선수, 유럽 진출 선수, 잉글랜드 진출 선수 그리고 현재로서는 최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 선수라는 층위는 상상을 초월하는 저 드높은 경지를 향한 경건한 헌신과 순례의 길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 최고 권위의 세계에도 또 실력 차가 있고 위계가 있다. 자, 여기 한 선수가 있다. 어느 스포츠용품사의 광고대로, 그는 ‘호르몬 장애’로 큰 선수가 되지 못할 뻔했다. 리오넬 메시(Lionel Messi·1987년 6월24일생) 이야기다.

아르헨티나 산타페주 로사리오에서 태어난 메시는 성장호르몬 장애가 있었는데, 스페인 명문 FC바르셀로나가 그의 잠재력에 일찌감치 투자해 장애 치료와 축구 선수의 미래를 보장함으로써 2000년에 온 가족과 함께 유럽으로 이주해 살고 있다.

2004~2005 시즌에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 데뷔했으며(당연히 최연소 데뷔와 그해 팀 우승 기록) 이후 매해 놀라운 기록과 수상을 했다.


 
100년 동안 되풀이될 이름, 메시

 

바로 그 메시가 지난 4월7일 큰일을 해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누캄프 스타디움에서 열린 FC바르셀로나와 잉글랜드 아스널의 유럽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이 경기에서 FC바로셀로나는 잉글랜드의 강호 아스널을 4-1로 대파했는데, 그 4골을 모두 메시 혼자서 터트린 것이다.

이런 순간은 매우 드물다. 메시가 고향 방문 기념 친선대회를 한 것도 아니었고 상대적 약체와 평가전을 한 것도 아니었다. 챔피언스리그 4강을 노리는 명문 아스널을 상대로 저 혼자 4골을 터트린 것이다.

이런 경지의 선수가 금세기에 너무 일찍 나왔다. 앞으로 100년 동안 수많은 축구사가들은 메시라는 이름을 끝없이 반복해야 할 것이다.

메시는, 축구를 약분하면 결국 ‘개인’이 남게 되며 이 개인은 승패에 대한 지루한 강박관념과 조직력이라는 이름의 견고한 성채에 맞서 저 혼자 경이로운 상상과 몸짓으로 맞짱을 뜨는, 또는 그것이 가능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증명하는 존재임을 입증한 선수다. 이 선수를 두고, 대패한 아스널의 아르센 벵게 감독은 “플레이스테이션의 특급 선수같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선수”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나는 이보다 더 흥미롭고 짜릿한 증언을 4년 전에 들은 적 있다. 독일 월드컵이 열릴 때였다. 그곳에서 아르헨티나 팬들을 만났다.

나는 그들에게 리베리, 호날두, 앙리 같은 선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아르헨티나 팬들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그레이트 테크니션!”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들의 친구 리오넬 메시는?

나의 질문에 어느 아르헨티나 사람이 조금 다급한 영어로 말했다.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메시는 다르다. 테크니션이 아니다. 그는 아티스트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