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

폐사지처럼 산다 (정호승)

道雨 2010. 12. 10. 14:14

 

 

 

 

 

 

 

       

             폐사지처럼 산다

                                                                               - 정호승 -

 

 

         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묻지마라

         폐사지처럼 산다

 

         요즘 뭐 하고 지내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에 쓰러진 탑을 일으켜세우며 산다

 

         나 아직 진리의 탑 하나 세운 적 없지만

         죽은 친구의 마음 사리 하나 넣어둘

         부도탑 한번 세운 적 없지만

         폐사지에 처박혀 나뒹구는 옥개석 한 조각

         부둥켜안고 산다

 

         가끔 웃으면서 라면도 끓여먹고

         바람과 풀도 뜯어먹고

         부서진 석등에 불이나 켜며 산다

 

         부디 어떻게 사느냐고 다정하게 묻지마라

         너를 용서하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고

         거짓말도 자꾸 진지하게 하면

         진지한 거짓말이 되는 일이 너무 부끄러워

         입도 버리고 혀도 파묻고

         폐사지처럼 산다

 

         그렇게 산다

 

 

 

 

 

 

 

 

 

* 다음의 글은 정호승 시인의 시에 대한 '움찬'님의 평가글입니다.

 

정호승님의 작품경향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도시적 삶을 살아가는 자들의 아픔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할 수 있겠네요

 

정호승님의 시세계의 주된 형질을 이루고 있는 것은 ‘슬픔’이라는 정서와 ‘사랑’이라는 선택적 행위입니다

그의 ‘슬픔’은 격정적인 비장함이나 감정 과잉의 감상주의를 동반하지 않고 한결같이 차분하고 관조적인 성찰적 성격을 띠고 있어서, 우리는 그것을 당대적 발언으로보다는 오히려 인간 존재의 보편적 정서에 대한 표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슬픔’은 극복해야 할 어떤 결핍의 상태가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존재 조건 혹은 존재 원리로 우리를 감싸안았죠

 

‘사랑’ 역시 마찬가지여서, 그것은 에로스나 아가페 같은 특정 층위의 사랑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 혹은 주체와 대상 사이에 개재하는 모든 친화적 정서나 행위의 총체적 표상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그것은 ‘증오’의 반대편에 서는 어떤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규율하는 가장 근원적인 에너지이자 존재 원리로 작용합니다

 

이처럼 그는 ‘슬픔’과 ‘사랑’의 시인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30여 년 동안 지속해왔습니다.

 

 

 

 

**  우리가 어느 별에서

 

가수 안치환이 노래한 위의 곡은 정호승 시인의 시를 노랫말로 바꾼 것이다.

정호승 시인의 홈페이지 이름도 '우리가 어느 별에서'이다.

 

 

 

               우리가 어느별에서

 

 

             우리가 어느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애타게 그리워하는가
             우리가 어느별에서 그리워했기에
             이토록 아름답게 사랑할 수 있나

             꽃은 시들고 해마저 지는데
             저문 바닷가에 홀로 어둠 밝히는 그대
             그대와 나 그대와 나
             해뜨기 전에 새벽을 열지니
             해뜨기 전에 새벽을 열지니

 

             우리가 어느별에서 헤어졌기에
             이토록 밤마다 별빛으로 빛나는가
             우리가 어느별에서 잠들었기에
             이토록 흔들어 새벽을 깨우는가
            

             꽃은 시들고 해마저 지는데
             저문 바닷가에 홀로 어둠 밝히는 그대
             그대와 나 그대와 나
             해뜨기 전에 새벽을 열지니
             해뜨기 전에 새벽을 열지니
             해뜨기 전에 새벽을 열지니

 

 

* 한 동아리 후배가 결혼을 할 때, 축가로 동료들이 이 노래를 불러주는 것을 보고 들은 적이 있었다. 결혼식 축가로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으며, 여럿이 합창으로 불러주니 더욱 듣기 좋았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