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황혼의 들녘에 서서

道雨 2014. 3. 21. 19:57

 

 

 

                황혼의 들녘에 서서

 

 

며칠 전 TV에서 노년의 죽음과 관련한 두 편의 영화를 잇달아 보았다.

하나는 브래드 피트, 안소니 홉킨스가 주연배우로 등장하는 '조 블랙의 사랑'이라는 외화였고, 또 하나는 주현이라는 배우가 연기한 '해로'라는 우리나라 독립영화였다.

 

'조 블랙의 사랑'이라는 제목에서 보듯이, 스토리는 조 블랙(저승사자) 역을 한 브래드 피트의 이승 여자에 대한 사랑의 감정과 번뇌, 그리고 긍정적 체념(결말)을 그리고 있지만, 이 영화에서 나는 비교적 이른 나이인 65세에 저승사자를 맞이하여, 구차하지 않고 품위있게 며칠 동안의 나머지 삶을 정리해가는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에 더 공감이 가는 바가 많았다.

 

'해로'는 병들고 늙은 남편이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아내와 함께 생을 마치고자, 집안 정리 및 단장, 물품(자전거) 손질 등, 모든 것을 가지런하고 보기좋게 가꾸어놓는 과정이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여겨지기도 하였다.

 

이 두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삶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근래 우리 집에는 작은 아들(범진)과 관련하여 몇 가지 일 들이 연이어 있었다.

 

고등학교(해운대고)를 졸업한 지 10년 만에 드디어 대학교(동의한의대)를 졸업하였다. 고교 졸업하고 부산대학교에 입학해서 한 학기 마치고는 휴학했고, 재수는 하지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바로 3수를 해서 동의한의대에 입학, 그리고 동의한의대에서 성적 부진으로 인해 두 번의 유급, 중간에 축구하다 십자인대 파열로 인한 재건수술(이로 인해 군대 면제) 등, 이런 우여곡절 끝에 올해 드디어 한의사 국시에 합격하고, 졸업을 하게 된 것이다.

 

졸업을 앞두고 나의 권유로 범진이는 동의대 한방병원에 인턴(수련의)으로 지원, 합격하여 근무하게 되었는데, 단 하루를 근무하고는 그만두고 나와버렸다.

이유는 병원의 수련 체제(문화)가 자기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계속 있다가는 사고칠 것 같다는 말을 하였다.

 

집사람은 큰 아들(공진)과 범진이 친구들까지 불러서 설득을 하고자 하였다.

나도 나름대로 이유를 설명하고, 병원으로 돌아가 수련과정을 거치는 것이 좋겠다고 얘기했지만(그러면서도 자기 인생이니만큼 내가 강요는 하지 않겠고, 결정은 범진이 본인이 하라고 하였다), 범진이는 결국 병원을 그만두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집사람과 나는 크게 실망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범진이와 더불어 앞으로의 생활에 대해 의논하고, 경제적인 것들을 포함하여 마음을 단단히 먹도록 했다.

 

그러던 중, 범진이가 졸업식을 마치고(동의대 한방병원은 한의대 졸업식을 하기도 전에 며칠 전부터 병원에서 인턴생활을 시작한다) 집에서 쉬고 있던 중, 지난 주 월요일부터 한의대 동문 선배가 운영하는 한의원에서 부원장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운이 좋게도 졸업한 지 얼마 안 되어 비교적 빨리 일자리를 찾은 것이며, 더욱 내가 잘 아는 형님뻘되는 분이 원장으로 계셔서, 내심 크게 안심하고 다행이라 여겼다.

 

 

 

이렇게 몇 가지 일을 겪고 난 후에, 위의 영화를 보면서 문득 나 자신과 내 가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든 생각은 참 다행스럽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큰 숙제들은 모두 마친 듯한 느낌이다. 물론 범진이 결혼이 남아있긴 하지만, 마음이 한결 가볍다.

 

내가 자주 인용하는 나이대별 인생의 목표(이 블로그의 글 중 '우아하게 내려가기' 참조)에서, 50대에는 '자식'이 목표였다.

자식의 교육과 자식의 장래(직업 등)에 관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범진이가 한의사로서 생활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해결되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는 것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 훈자(訓子)편’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黃金滿籯  不如敎子一經      賜子千金  不如敎子一藝”  

 

“황금이 상자에 가득 차 있어도 자식에게 하나의 경서(經書)를 가르치는 것만 못하고, 자식에게 천금을 준다 하더라도 한 가지 재주를 가르치는 것만 못하느니라.”

 

경서를 요즘 말로 해석하면 고등교육(전문적인 교육)이 되겠고, 재주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위의 글은 이 블로그에 실린 글 '진료실의 명심보감'에서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내 나이가 올해(2014년) 58세이지만, 50대까지의 목표(30대는 돈, 40대는 명예, 50대는 자식)는 모두 이루었거나 지나왔고, 이제 60대의 인생의 목표만이 남아있다고 볼 수 있는데, 60대의 인생의 목표가 바로 '죽음'이다.

 

이런 생각이 들던 차에 위의 두 영화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죽음에 대해 담담하고, 어찌보면 우아하고 멋있게 나머지 생을 정리할까 하는 행복한 생각에 잠기게 된 것이다.

 

이제 겨우 58세 밖에 안된 나이이므로, 우리나라 평균수명으로 볼 때 아직 창창하게 남아있는 것과 같으니, 나머지 생을 정리하면서 죽음을 준비하기에는 너무나 충분한 시간이라, 마음에 여유가 넘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형제나 친척들에게도 더 잘해주고, 이웃과 사회에도 조금 더 기여하고, 조금이라도 더 나누어주고, 조금이라도 더 부드럽게 대해주고, 조급하지 않고 여유있게 보낼 생각에 마음마저 너그러워지는 듯하여 좋다.

 

인생을 하루의 시간에 비유해본다면, 지금의 나는 오후 5시에서 6시 사이쯤 되지 않을까?

저녁 황혼 무렵이 될 것이다.

떠 오르는 아침의 태양이나, 한 낮의 햇볕처럼 강렬하지는 않지만, 황혼의 들녘에 서서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보고있지는 않을까?

누군가 얘기했듯이 '저녁이 있는 삶'이 기대되는 것이다.

 

 

어제 우리 모임 동기들에게 책('유경의 죽음준비학교')을 선물했다. 집사람이 독서회에서 읽고 토론한 책으로, 내용이 좋다고 작년 연말 송년회 때 우리 모임에서 추천한 책이다. 

 

금년 8월 경, A팀(내가 소속된 동기생 모임) 모임을 가지면서 타임캡슐을 묻으려 계획하고 있다.

그때 가족들에게 쓴 편지나 유언장 등을 포함할 예정인데, 삶을 돌아보고, 또 죽음(인생의 정리)에 대하여 생각해보고, 또 편지 등을 쓸 때 참고로 하라는 다목적용이다.

 

자, 우리 친구들 모두 함께, 황혼의 들녘에 서서, 지나온 길도 돌아보고,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우아하고 여유로운 저녁을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오늘(2014. 3. 27) 위의 책(유경의 죽음준비학교)을 모두 읽었다.

죽음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인생 여정을 돌아보고,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욱 소중하게 여길 수 있게 해주는 듯하다.

지금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이 시간 이후의 나머지 삶을 더욱 가치있고 아름답게 보내기 위한 것이기도 하며, 담담하고도 두렵지 않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해주는 데 크게 도움이 될 듯 하다.

동기생들 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같이 읽어보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