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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징역 2년 확정, 의원직 상실 : 유죄 받은 한명숙, 노무현이 떠오른다

道雨 2015. 8. 20. 16:44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한명숙 전 총리의 유죄 확정

 

 

 

대법원이 20일 9억여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로써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인 한 전 총리는 의원직을 상실하고 곧 수감될 것으로 보인다.

시민운동 출신의 전직 국무총리마저 불법 자금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 정치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참담하기 그지없다.

 

기소 이후 5년 넘게 끌어온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는 건설업체 대표의 검찰 진술을 믿을 수 있느냐 여부였다.

1심 재판부는 진술의 신빙성이 없다고 보고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반대로 2심 재판부는 검찰 진술을 받아들여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8 대 5로 의견이 나뉘었지만, 사건을 파기환송해야 한다고 주장한 5명도 한 전 총리가 최소한 3억원을 받았다는 점은 인정했다. 결국 한 전 총리가 받았다는 돈의 액수에 차이가 있을 뿐, 그가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건 대법관 모두 사실로 인정한 셈이다.

 

야당은 이번 판결에 대해 “검찰에 이어 법원마저 정치화됐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최근 야당 정치인에 대한 검찰 수사와 불리한 판결이 잇따르고, 이것이 ‘야당 옥죄기’라는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건 맞다. 하지만 정치와 검은돈이 난마처럼 얽혀 공생하는 현실은 하루빨리 뿌리뽑아야 할 우리 정치의 가장 큰 고질이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자살 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검은돈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우리 정치는 영영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가 없다.

 

 

깨끗하고 온화한 이미지를 가진 전직 국무총리에 대한 유죄 확정 판결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검찰이 한 전 총리를 표적으로 삼아 잇따라 기획수사를 진행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국무총리의 동생이 건설업자에게서 나온 1억원짜리 수표를 전세금으로 사용했던 점이나, 그의 비서가 거액의 돈을 건설업자로부터 받은 점 등은 누가 봐도 매우 부적절하고 의심스런 정황임이 분명하다. 이런 게 통용되는 정치문화를 완전히 바꿔야 국회의원과 정치인, 고위공직자를 바라보는 시민의 시선은 비로소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여야는 이번 판결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활용하려 하기보다, 불신의 늪에 빠진 정치를 개혁하는 일대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정치개혁에 과감하게 나서야 정당도 살고 선거에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 2015. 8. 21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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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징역 2년 확정, 의원직 상실

“정치권력이 개입된 불공정한 판결”… 문재인 “검찰에 이어 법원까지 정치화”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5년 간 법적 공방을 벌이던 한명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전 총리)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이 확정됐다. 이로써 한 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하게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일 오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의원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2년에 추징금 8억 8천만 원을 선고한 2심을 확정했다. 대법관들의 의견은 8대 5로 엇갈렸다. 기소된 지 5년 만, 대법원으로 사건이 넘어온 지 2년 만이다.

 

한 의원은 지난 2007년 3월~8월,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앞두고, 3차례에 걸쳐 한만호 한신건설 전 대표에게 불법 정치자금 9억 원을 받은 혐의로 2010년 7월 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 한명숙 전 총리.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1심 재판부는 한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한 의원이 한 전 대표로부터 9억 원을 받았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한씨의 검찰 진술 뿐이고, 한 전 대표가 법정 진술을 번복하는 등 진술에 일관성이 없어 신뢰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한 전 대표는 검찰 조사에서 3차례에 걸쳐 9억 원을 전달했다고 진술했으나, 법정에서는 돌연 ‘거짓자백이었다’고 진술을 뒤집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유죄를 인정하며 1심을 뒤집었다. 한 전 대표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한 전 대표가 한 의원에게 3억 원의 반환을 요구하며 협박하는 듯한 정황, 폭로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사업상 이득을 취하려 한 정황들을 제시하며, 돈을 준 것이 사실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의 확정 판결에도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벌였다는 논란은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수사가 시작된 한 의원이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야권의 유력한 후보군이었다는 점 때문에, 사건 초기부터 ‘표적수사’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관련 기사 : <한명숙 ‘무죄’, 정치검찰 다시 쥐구멍?>

 

이번 사건은 지방선거를 앞둔 2010년 4월 9일, 법원이 ‘곽영욱 사건’ 관련해(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 미화 5만달러를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 한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한 날 언론에 흘러나왔다. 한명숙 무죄 가능성이 커지자 검찰이 또 다른 사건을 흘렸다는 비판이 일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대법원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검찰에 이어 법원까지 정치화됐다는 우려 금할 수 없다. 참담한 심정”이라며 “사법부만큼은 정의와 인권을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가 돼주길 기대했지만 오늘 그 기대가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문 대표는 대법원 방청석에서 선고결과를 지켜봤다.

 

한명숙 의원은 선고 이후 기자들에게 배포한 기자회견문을 통해 “찰은 별건을 조작해 2차 정치적 기소를 자행했다. 백주대낮 도로 한 복판에서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얼토당토않은 혐의를 덮어씌웠다”며, 하지만 검찰에서 제게 돈을 줬다는 증인이 재판장에서 돈을 준 사실이 없다는 양심고백을 했다. 결과적으로 돈을 준 사람이 없는데 돈을 받은 사람만 있는, 범죄의 구성요건도 갖추지 못한 날조된 사건이 되고 말았다”고 밝혔다.

한 의원은 이어 “오늘 정치탄압의 사슬에 묶인 죄인이 되었다. 법원의 판결을 따르지만, 유감스럽게도 인정할 수는 없다”며, “공정해야할 법이 정치권력에 휘둘려버리고 말았다. 법리에 따른 판결이 아닌 정치권력이 개입된 불공정한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한명숙 의원에게 징역 2년 원심을 확정한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민중의소리

 

 

대법원의 증거능력 인정이 이중잣대라는 비판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1심 재판부가 한 전 대표의 진술 번복에 대해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으나, 2심 재판부는 별다른 추가 증거없이 한 전 대표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을 뒤집었고, 대법원도 이를 증거로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지난 7월 16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국정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파기환송했는데, 그 이유는 2심 재판부가 증거로 인정한 이메일 첨부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때는 증거능력에 대해 엄격하게 판단한 반면, 한명숙 의원 판결 때는 그렇지 않았다는 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한명숙 의원은 “저에게 돈을 줬다는 증인을 재판정에 한 번도 부르지 않은 채, 2심 재판부는 무죄를 뒤집고 검찰의 손을 들어 유죄를 선고했다. 1심에서 입증된 모든 무죄 취지는 2심에서 채택되지 않았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대법원은 2심 재판부의 판결만을 인용하여 유죄를 선고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논평을 내 이번 판결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김영우 새누리당 대변인은 현안관련 브리핑에서 “이번 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사필귀정”이라며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번 재판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할 것이다. 법과 원칙에 따라 재판부가 판단한 것을 가지고, 아무런 근거 없이 공안탄압 운운하는 것은 변명에 불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 조윤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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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유죄 결정적 이유는 동생 전세금 쓴 1억원 수표

3억원 수수는 대법관 모두 유죄..나머지는 판단 엇갈려

 

 

(서울=연합뉴스) 이신영 기자 =

 

9억원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명숙(71) 전 국무총리의 발목을 잡은 것은 결국 동생의 전세자금 1억원이었다.

대법관 13명은 9억원 중 3억원 수수 부분은 모두 유죄로 봤다. 그러나 나머지 6억원에 대해서는 8명은 유죄, 5명은 무죄로 의견이 갈렸다.

 

 

◇ 한 전 총리 동생 전세금에 사용된 1억원 수표

 

대법원이 한 전 총리 사건을 유죄로 판단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그의 동생이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가 발행한 1억원권 수표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한명숙 의원 정치자금법 위반 유죄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20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한명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정치자금법 위반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리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대법관 8(유죄)대 5(일부 무죄) 의견으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 의원에게 징역 2년과 추징금 8억8천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한명숙 의원 정치자금법 위반 유죄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20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한명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정치자금법 위반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리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대법관 8(유죄)대 5(일부 무죄) 의견으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 의원에게 징역 2년과 추징금 8억8천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한 전 총리의 동생은 이 수표를 전세자금으로 썼는데, 한 전 대표와 한 전 총리의 동생은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이 수표는 결국 대법원이 한 전 대표가 1심 법정에서 한 진술보다 검찰 단계에서 했던 진술을 믿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근거가 됐다.

한신건영이 부도가 난 뒤, 한 전 총리 측이 한 전 대표에게 2억원을 반환한 정황이 드러난 점도, 한 전 대표가 검찰에서 했던 진술의 신빙성을 더했다.

 

대법원은 한 전 대표가 한 전 총리를 상대로 있지도 않은 허위의 사실을 꾸며내거나 과장·왜곡해 모함한다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고, 수사가 시작되기 전에 작성된 비자금 장부에도 공소사실과 부합하는 내용이 기재돼 있으며, 비자금 조성에 핵심 역할을 한 직원의 진술도 한 전 대표의 검찰 진술을 뒷받침한다고 밝혔다.

 

 

◇ 대법관 8명, 9억원 모두 유죄로 봐야

 

전원합의체 심리에 참여한 대법관 13명 가운데 양승태 대법원장을 포함해, 민일영·고영한·김창석·김신·조희대·권순일·박상옥 대법관 등 8명은 한 전 총리에게 적용된 9억원 금품수수 부분을 모두 유죄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한 전 대표가 3차례에 걸쳐 여러 명의 직원을 동원해 환전하는 등 매번 유사한 방법으로 복잡한 과정을 거쳐 은밀하게 자금을 조성했고, 검찰에서 9억원을 줬다고 한 이상 1∼2차 정치자금별로 나눠 일부만 믿고 일부는 믿지 않는 식으로 판단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들 대법관은 또 한 전 총리가 이 가운데 1차로 조성된 자금에 포함된 1억원짜리 수표를 받았으며, 어느 쪽에 포함되는지 불분명한 2억원을 반환했다는 점이 드러났다면, 3억원 뿐 아니라 같은 방식으로 조성한 나머지 6억원도 한 전 총리에게 갔다고 보는 것이 상식에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 대법관 5명, 9억원 중 3억원만 유죄 확실

 

주심인 이상훈 대법관을 포함해 이인복 ·김용덕·박보영·김소영 대법관 등 5명은, 9억원 가운데 3억원은 유죄로 인정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9억원 모두를 유죄로 보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을 냈다.

이들 대법관은 공판중심주의와 직접심리주의, 전문법칙의 원칙에 비춰볼 때, 수사기관 진술과 법정 진술의 내용이 정반대일 경우 수사기관의 진술을 증거로 삼으려면 객관적인 자료가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위증죄의 부담을 지면서 한 법정 진술에 더 무게를 둬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에 따라 객관적 증거가 있는 1차 정치자금 3억원만 유죄로 본 것이다.

 

이들 대법관은 또 한 전 대표가 7개월이 넘는 기간 수십차례에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1회의 진술서와 5회의 진술조서 외에는, 어떤 조사를 받고 어떤 진술을 했는지 알수 있는 자료가 전혀 없는 등, 증거수집 과정이 수사의 정형적 형태를 벗어났다고 지적했다.

 

한 전 대표가 검찰 진술 당시 사용처가 불분명한 비자금의 정당한 사용 내역을 밝히지 못하면 횡령죄로 처벌받을 수 있는데다, 수사협조 대가로 경영권을 되찾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어, 허위나 과장된 진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비자금 장부 사본은 입수 경위가 의심스럽고, 한 전 총리가 사용처로 직접 적시돼 있지 않아 증명력이 없으며, 한신건영 직원의 진술도 막연히 추측한 내용으로 보여 믿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eshin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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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 받은 한명숙, 노무현이 떠오른다

[기자수첩] 정치적 반대세력-보수언론 집요한 공세 속 ‘정치적’ 판결? 법리적 근거 납득 못해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한명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정치적 반대세력과 보수 언론의 집요한 공세 대상이었다는 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닮았다는 평가가 있다. 

 

한명숙 의원은 1974년 한국크리스천아카데미에서 간사로 시민 운동을 시작했다. 여러 여성단체장을 맡으면서 여성운동의 대모로 통했다.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 사회운동을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케하는 대목이다.

 

한 의원은 지난 199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에 따라 정치에 입문했다. 한 의원이 지역구(경기 고양)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후 치러진 총선에서 홍사덕 한나라당 의원을 누르면서다. 그리고 한명숙 의원은 2006년 노무현 정부에서 첫 여성 총리가 됐다.

 

민주화 운동과 사회운동을 하고 정치에 입문한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최고통수권자가 됐고, 그 아래에서 한 의원은 총리를 지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시작된 것이다.

 

한명숙 의원은 대표적인 친노 정치인으로 통한다. 지난 2012년 민주통합당(새정치민주연합 전신) 대표로 총선을 진두지휘하면서, 당내 비주류로부터 공천 학살의 주역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명박 정권으로 바뀐 뒤 두 사람이 겪은 시련도 비슷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으론 최초로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검찰은 기소 여부조차 결정하지 않고 시간을 끌었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 의원은 지난 2010년 7월 불법정치자금 9억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고, 1심에서 무죄, 2심에서 유죄를 받았다. 대법원은 지난 2년 동안 판결을 내리지 못하다가 전원합의체에서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판결이 지연됨에 따라 한 의원이 현직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세비 낭비를 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한 의원 입장에선 그동안 정치 활동의 발목잡는 족쇄로 작용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보통 법원은 불법정치자금 혐의와 관련해 정치권의 상황을 보며 ‘타이밍’을 재고 판결을 내린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데, 한 의원의 유죄 판결도 정치적 유불리를 따진 시점에 이뤄진 것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은 보고 있다.

이번 유죄 확정판결이 수구세력의 공세에 따른 정치적 판결이라는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회있을 때마다 '소환'해 공격의 대상으로 삼은 것처럼, 한 의원 역시 반대세력과 보수언론의 ‘먹잇감’이 돼 왔기 때문이다.

 

한 의원의 남편인 박성준 성공회대 교수가 박정희 정권에서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수감된 전력을 놓고, 보수언론은 박 교수를 종북의 아이콘으로 만들면서 한 의원을 공격하는 소재로 삼았다.

지난 2013년 채널A는 '종북부부' 명단을 공개한다며 한 의원과 박 교수를 올려놓고 "한명숙은 과거 정상회담 당시 방북해 '김정일은 온화하고 자상하고 위트가 넘친다'고 칭찬했다"고 비난하면서 종북의 이미지를 덧씌웠다.

나아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비 아래 깔려있는 대형 태극기를 밟았다며 "야당 대표, 국무총리까지 지낸 사람이 어떻게 태극기를 밟을 수 있냐"라는 억지 주장으로 그를 공격했다.

 

한 의원의 불법정치자금 혐의는 국정원의 공격 대상이기도 했다.

국정원 심리전단은 2012년 2월 한 의원의 불법정치자금 혐의 내용과 관련한 비난성 글을 집중적으로 트위터에 올렸다.

2012년 2월 당시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 달러를 받은 사건은 1심부터 3심까지 모두 무죄를 받았고,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9억원의 자금을 받은 혐의는 1심에서 무죄를 받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국정원은 한명숙 의원을 언급하며 "정치적 유죄 의혹을 해명하라"고 공세를 펼쳤다.

 

한 의원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유죄 선고에 대해 "법리에 따른 판결이 아닌 정치권력이 개입된 불공정한 판결"이라고 반발한 것도, 그동안 집요한 정치공세를 당해왔고, 법리적 근거 역시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만호 한신건영 전 대표는 검찰 진술에선 한 의원에게 9억원을 줬다고 했지만, 1심 법정에서는 '거짓자백'이었다고 진술했다.

 

이재화 변호사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검찰진술과 법정진술이 엇갈릴 때, 검찰 진술은 검찰 앞에서 일방적으로 한 진술이기 때문에, 법원이 면전에서 심문을 하지 않으면 하급심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일관된 입장이었고 기존 판례"였다며, "종전 판례를 뒤집지 않고 배치되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검찰 진술을 뒷받침하는 명백한 증거나 객관적 물증도 나오지 않았는데 이런 판결을 내린 것은 고도의 정치적 계산 하에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 이재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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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한명숙 재판 - 한 사장 “죄책감에 목숨 끊으려 했다”
“애초 진술 자체가 허위.. 더 이상은 답변하기 어렵다”
편집국 | 등록:2015-08-25 10:24:49 | 최종:2015-08-25 13:54:4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2010년 12월 20일, 한명숙 전 총리에게 9억 원대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건설업체 대표 한만호는 “한 전 총리에게 어떤 정치자금도 준 적 없다”고 실토하여 법정을 발칵 뒤집어 놓습니다. 한씨는 “한 전 총리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계시다”며 “죄책감에 시달려 목숨을 끊으려 했다”고 고백합니다. 진실의 길은 그 날 재판정의 모습을 다시 조명합니다. [편집자주]

[속보] 한 사장, "죄책감에 목숨 끊으려 했다"

한 사장, "한 총리님 의혹을 벗겨드리기 위해 오늘을 손꼽아 기다렸다"

(서프라이즈 / 독고탁 속보 / 2010-12-20)

변호인 : 왜 지금 와서 진실을 밝히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까?

한사장 : 시간이 지나서 허위진술을 한 것을 생각해보니 그동안 한 총리에 대해 존경심을 갖고 있었고 거기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허위진술로 인해 한 총리님이 서울시장에서 낙선하고 또 기소까지 당하여 고통을 받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이 참으로 한심스러웠고,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건강이 나쁘기도 했지만 죄책감이 밀려들어 심지어 목숨을 끊으려고 까지 했었습니다. 그러나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시고 (울먹이면서) 이대로 내가 삶을 마쳐버리면 한 총리님 의혹을 벗겨 드리기 어렵기 때문에 재판이 열리는 오늘을 손꼽아 기다려 왔습니다. 그래서 진실을 밝히게 되었습니다.

변호인 : 왜 수사기관에서 자신이 허위진술을 했다는 것을 밝히지 않고 법정에서 밝히게 된 배경이 무엇입니까?

한사장 : 검찰에서 열정을 갖고 수사를 하고 있어서 번복하기가 어려웠고, 또 아무리 내가 검찰에서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언론에서는 그저 그렇게 나오면 무마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한 총리님에 대한 의혹을 벗겨 드리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세간에서는 “그래도 받았을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게 될 것이기 때문에 법정에서 밝혀야 한 총리님의 누명이나 억울한 것이 벗겨질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 편집자주 - 재판정에서 독고탁님이 전해주신 내용입니다.

 

"한명숙에 돈 준 적 없다" 법정서 진술 번복

건설업자 "검찰서 허위진술… 한 전 총리에 누명"
'5만 달러' 1심 무죄 이어 또 뒤집혀… 검찰 당혹

(한겨레 / 송경화 / 2010-12-20)

"검찰에 허위 진술을 했습니다. 비겁한 저 때문에 한명숙 전 총리가 누명을 쓰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9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기소된 한명숙(66) 전 총리의 공판에서 애초 돈을 줬다고 진술했던 한아무개(49·수감 중)씨가 검찰에서 한 진술을 완전히 뒤집었다. 검찰은 이에 앞서 한 전 총리의 ‘5만 달러 뇌물’ 의혹 사건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터라 거듭 곤혹스런 처지에 놓이게 됐다.

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김우진)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증인으로 법정에 나온 한씨는 ‘총 9억 원을 한 전 총리에게 제공했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그 부분에 대해 할 말이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수감 이후 믿었던 이들로부터 억울하게 빼앗긴 회사(ㅎ건영)를 되찾고 싶은 욕심과 수사 초기 제보자 남아무개씨가 검찰에 찾아와 서울시장 이야기와 관련해 겁박을 해서 어쩔 수 없이 허위 진술을 했다”며 “비겁한 저로 인해 한 전 총리가 누명을 쓰게 돼 죄송하다”고 진술했다. 한씨에게서 금품을 건네받은 혐의로 함께 기소된 한 전 총리의 지역구 사무실 관리인 김아무개(50·여)씨는 한씨의 증언을 듣고는 법정에서 쓰러져 실려나갔으며, 한 전 총리는 눈물을 훔쳤다.

한씨는 검찰이 한 전 총리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9억 원 가운데 3억 원은 김씨에게 ‘대여’한 것이며, 나머지 6억여 원은 두 차례에 나눠 공사와 관련된 업체 관계자에게 성과급으로 주고, 일부는 자신이 썼다고 했다. 한씨는 한 전 총리의 공소사실에 ‘달러’가 등장하는 이유에 대해 “(돈을 받을 업계 관계자들이 성과급을) 달러로 달라고 해서 나왔던 얘기를 한 전 총리가 얘기한 것처럼 말한 것일 뿐 9억 원은 한 전 총리와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당황한 검찰이 관련 장부에 ‘한’ 자로 표시한 점과 현장검증을 할 때 한 전 총리 아파트에 가게 된 경위와 자세한 묘사를 구체적으로 진술한 점 등을 거론하자, 한씨는 “‘한’ 자는 한명숙이 아니라 내 이름의 ‘한’ 자이며, 어느 건설업자 사장이 장부에 (국회)의원의 성을 써놓겠느냐, 그렇게 무모하지 않다, 돈을 전달하러 한 전 총리의 집에 갈 때 ‘엘리베이터에 시시티브이가 있어서 긴장했다’고 말한 것은 어느 아파트나 5층 이상이면 엘리베이터에 시시티브이가 있어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한씨는 돈을 전달한 장소로 한 전 총리의 집을 댄 이유를 “수감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둘러댈 곳이 없어 자택이라고 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씨는 검찰 조사에서 “강압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54796.html

"한명숙에 죄책감, 허위진술 폭로 결심"

"사건 제보자 겁박에 '9억 수수' 허위진술"
검찰, "진술·재판 모두 유동적" 애써 '의연'

(뉴시스 / 박유영 / 2010-12-20)

한명숙 전 총리에게 9억 원대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는 건설업체 대표 한모씨는 20일 “한 전 총리에게 어떤 정치자금도 준 적 없다”고 밝혔다.

한씨는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우진)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증인으로 출석, “한 전 총리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계시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씨는 특히 “검찰 조사에서 수십 번 정치자금을 줬다고 진술한 것은 맞다”면서도 “이는 수사 초기 제보자 남모씨가 찾아와 서울시장 이야기를 거론하며 협조하지 않으면 불리할 수 있다고 겁박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수감 후 억울하게 빼앗긴 회사자금을 되찾을 욕심도 들어 허위 진술을 하게 됐다”며 “처음에는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고 진술하지 않았었지만, 남씨의 제보사실 등을 안 뒤 수사가 확대돼 남씨의 잘못이 드러나길 바라는 마음에 허위진술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왜 수사 때와 진술이 다르냐’는 검찰의 추궁에는 “애초 진술 자체가 허위”라며 “더 이상은 답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사 때) 잘 대해줘 감사하다”는 말은 잊지 않았다. 아울러 “검찰의 강압수사는 없었고, 그냥 내가 지어내서 한 말”이라고 덧붙였다.

한 전 총리 측 변호인이 뒤늦게 진실을 밝히게 된 이유를 묻자 “시장 낙선, 검찰 기소 등을 겪는 것을 보고 심한 죄책감에 자살도 생각했다”며 “의혹을 벗겨야 겠다고 생각해 폭로하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수사단계에서 말을 바꾸면 무마될 수 있다는 생각에 법정에서 밝혀야 겠다고 다짐했다”고 강조했다.

다만 “김씨에게 3억 원을 준 것은 맞다”며 “하지만 이는 ‘대여’로, 돈을 빌려 달라기에 어디에 쓸 것인지는 묻지 않았다. 현금 2억 원, 수표 1억 원을 준비한 것 같은데 (검찰 주장대로) 달러가 섞여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한씨의 진술이 이어지자 한씨로부터 돈을 받아 자신이 쓰거나 일부는 한 전 총리에게 전달한 의혹 등을 사고 있는 김씨는 갑자기 쓰러져 119구급차에 실려갔다.

나머지 6억 원의 행방에 대해서는 “입찰 중개업자인 박모씨와 김모씨에게 (수수료조로) 줬다”고 진술했다. 이에 검찰이 “증인들이 법정에 있으니 대질신문을 하자”고 나섰고, 한 전 총리 측 변호인이 반발하면서 잠시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한씨의 진술이 수사 때와 다르게 나오고 있지만, 한씨 진술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고 재판도 유동적이니 일단 오늘 공판을 잘 지켜보는 게 순서”라며 애써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이어 “공소유지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한씨가 일부 부인하는 진술이 거짓말인 것이 금방 드러날 것이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전 총리는 2007년 3월부터 같은 해 9월까지 한씨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 현금과 미화, 자기앞수표 등 총 9억 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7월 불구속 기소됐다. 김씨는 2007년 2월부터 같은 해 11월까지 한씨로부터 사무실 운영 및 대통령 후보 경선 지원 명목으로 9500만 원을 받고 버스와 승용차, 신용카드 등도 무상제공 받아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출처: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3599891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3856&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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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한명숙 재판 - ‘한명숙 죽이기’ 동시대극의 재구성
검찰 주연 ‘블록버스터’ 는 수준 이하 ‘자뻑쇼’였다
편집국 | 등록:2015-08-26 08:01:27 | 최종:2015-08-26 08:11:4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2010년 4월 9일, 대한통운 곽영욱 사장의 ‘10만불 뇌물 사건’ 결심공판(한명숙 피고인 무죄 판결)을 앞두고 ‘무명씨 시민’이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을 통해 당시의 재판을 재조명합니다. [편집자주]

 

 


'한명숙 죽이기' 동시대극의 재구성

[기고] 검찰 주연 '블록버스터'는 수준 이하 '자뻑쇼'였다

(프레시안 / 무명씨 시민 / 2010-04-07)

1.글쓰기를 시작하며 - 세기적 재판

선고일(4월 9일)을 목전에 두고 있다. 문득 35년전 그날의 끔찍한 과거사가 떠오른다. 이것은 필자의 오랜 직업병 탓이다.

1975년 4월 10일자 동아일보는 4월 9일에 인혁당 관련자 8명의 사형집행이 있었던 사실을 그림과 같이 보도했다. 그로부터 35년 후인 같은 일자 동아일보에는 '한명숙 징역5년 선고'란 1면 톱 기사가 실릴지도 모른다. 상상만 해도 섬뜩하다.

 


주지하듯이, 공안당국은 1974년 민청학련의 배후에 인민혁명당이 있다고 발표했다. 인혁당 관계자는 물론 민청학련 관련 학생들에게도 사형이 선고되기도 했다. 사형을 언도 받은 어떤 학생은 '영광입니다'라고 외쳤다. 사형집행이 있기 전날인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은 39명에게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아래 그림은 조선일보 4월 9일자 지면을 캡쳐한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의 확정 판결 다음날, 8명에게 사형이 전격 집행되었다. 이 사실을 전하는 신문 지면에는 미국무성이 전격적인 사형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는 단신이 보도되었을 뿐이다.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이 날은 국제적으로도 사법사상 가장 치욕적인 날로 기록되고 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후에 각종 과거사위원회의 조사를 거쳐 2007년 1월 23일 인혁당사건은 무죄 선고되었다. 검찰도 항고를 포기했다. 인혁당관계자뿐만 아니라 민청학련 관련자들도 2009년 9월 24일 재심 재판에서 무죄선고 받았다.

 


위 그림은 조선일보 2009년 9월 25일자 기사이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무죄를 알리는 이 기사 바로 오른편에 한명숙 사건의 실마리가 된 대한통운 비자금사건 관련 기사가 실려 있다. 35년전의 '사법살인'과 같은 야만이 되풀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우를 떨칠 수 없다.

'빨갱이 사냥' 차원에서 '사법살인'이 버젓이 용인되던 '야만'과 '극단'의 시절이 있었다. 최소한의 법적 절차마저 사치스럽게 여겨지던 적도 있다. 그런데 지금 다시 그런 '야만'과 '극단'의 시절로 되돌아가려 하고 있다. 한명숙 사건과 같은 것이 21세기에도 이 땅에서 연출된다는 것 자체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극이 무대를 넘어 현실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 사건을 '한명숙 죽이기극'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그래서 참담하게도 필자의 전공을 넘어 이글을 감히 쓴다.

필자의 글쓰기가 만용의 소치임을 잘 알고 있다. 막강 권력 검찰을 비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검찰 조서와 공소장 원문과 같은 1차 자료도 살피지 못했고, 재판을 직접 방청한 적도 없기 때문에 글쓰기가 조심스럽다. 하지만 공개된 자료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사건의 실재를 재구성해보려 한다.

이 사건에서 수많은 논점이 제기되지만, 오직 한가지 논점에만 집중하려 한다. 역시 핵심은 "곽영욱이 한명숙(who)에게 석탄공사 사장이 되기 위해(why) 2006년 12월 20일(when) 총리공관(where)에서 5만달러(what)를 건넸다(how)"는 사실이다.

기사 작성에서 6하원칙(六何原則, five W's and one H)은 기본이다. 공소장 작성에도 이 6하원칙은 필수이다. 이러한 6하원칙에 입각하여 검찰-언론-곽영욱 등이 그것을 집단 창작하는 과정을 면밀히 추적할 것이다.

일일이 각주를 달아 근거를 밝혀야 하지만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출처는 최소화했다. 하지만 결코 근거 없거나 신빙성이 없는 팩트를 근거로 이 글을 작성하지 않았다는 것만은 자신한다.

2.언론 특종을 통해 본 사건 재구성(피의사실 공표)

▲ *'체포영장'과 '공소장'을 원문으로 확인하지 못하여 약간의 착오가 있을 수 있음.

 


이 표를 힘들여 작성한 것은, 언론 특종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하기 위해서이다. 한편 검찰과 언론이 공모한 범죄(피의사실공표죄)를 고발하기 위해서이다. 이 글에서는 전자에 중점을 두고 살펴보겠다. 배경 색깔이 있는 부분이 특종에 해당하므로, 그 부분만 자세히 살피면 족하다.

다만 노무현의 죽음이란 비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범법 의식조차 못 느끼고 죄행을 되풀이 자행하고 있는 검찰과 언론 그리고 세태에 간단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은 피의사실을 유출한 적이 없다고 누차 말했다. 언론 기사들과 공소장의 내용이 다른 것이 피의사실 유출에 대한 검찰의 결백을 반증한다는 능청스런 지껄임을 듣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결국 귀신이 유출했거나 기자들이 창작했고 언론이 오보했다는 것이다. 한편 언론은 피의사실공표죄가 엄연함에도 불구하고, '검찰' '검찰관계자' '검찰소식통' 등 그 취재원을 구체적으로 버젓이 적시하고 있다.

필자는 검찰 조서와 공소장도 보지 못했다. 언론이 그것들을 전해 주어서 그 대강을 파악하게 되었다. 형법에 엄연히 중죄로 명문화되어 있는 피의사실공표죄가 기소독점권을 누리고 있는 검찰 자신의 범법과 직무유기로 사문화된 덕분이다. 그리고 언론의 공모 덕분이다. 필자가 범죄의 증거들을 활용하여 진실의 대강을 다행히도(?) 재구성했으니 지독한 역설이라고 해야겠다.

필자는 언론보도를 면밀히 살피는 과정에서, 검찰의 수사 내용이 거의 실시간으로 그리고 잘 기획되고 선별적으로 언론에 유출 보도되었다는 심증을 굳혔다. 실제로 곽영욱도, 전날 조사받은 내용이 다음날 언론에 보도되었다고 받은 진술했다. 따라서 표에 제시된 특종 기사들은 전날쯤의 취조 내용을 각각 보도한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또 특은 언론에게 특종이 독점되지 않고, 한겨레가 막판에 특종했던 것 등은, 검찰의 언론 유출 과정마저 기획되고 선택적이 있었다는 것을 증거한다. 검찰 조서와 동영상을 살필 수 있다면 이에 대해 보다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필자는 그것에 접근할 수 없다. 물론 검찰에 불리하다고 여겨지는 조서와 동영상은 검찰이 이미 숨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표를 실마리로 조서와 동영상을 면밀히 대조하면 검찰-언론의 피의사실 공표 범죄행위와 대강의 사건 재구성이 가능할 것이다.

필자가 추적한 바에 의하면, 한국일보의 특종으로부터 시작하여 40여일 동안 7건의 특종이 생산되었다. 그 특종의 생산 유통과정은 검찰의 공소장이 완성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검찰은 필요한 정보를 특정 언론에 누설하고 언론은 약간의 상상력을 더하여 특종을 생산한다. 또 이 특종에 대한 세간의 반응을 살피며 공소장은 조금씩 그럴듯하게 가다듬어 졌다. 곽영욱도 (검찰이 흘린) 언론 기사를 들이밀며 추궁했다고 법정 증언하지 않았던가.

최근 재판과정에서 공소장과 배치되는 결정적 증언들이 있었는데 이것마저도 이들 특종 지면에서 그 흔적을 살필 수 있다.

특종은 표에서 보듯이 한국일보-조선일보-중앙일보-CBS 노컷뉴스-동아일보-한겨레신문의 순이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특정 언론이나 보수 언론에 치우치지 않고 골고루 특종을 생산했던 점이다. 언론의 특종 경쟁을 검찰이 최대한 활용한 결과일 것이다. 또 그 내용에 따라 선별적으로 뿌렸던 점도 주목된다. 비판적인 언론으로 지목되는 CBS와 한겨레가 특종한 내용은 총리공관 모임에 동행자가 있었다는 것과 동행자 실명(정세균 강동석)을 공개한 것이다. 표적수사이고 야당탄압이라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검찰은 오히려 비판언론으로 지목되는 CBS와 한겨레를 적절히 활용했다고 추정한다면 과도한 것일까. 결국 CBS와 한겨레는 특종하여 그 성가를 높였을지 모르지만 검찰의 기획대로 놀아난 셈이다.

이 표를 토대로 하여, 이하에서 6하원칙의 각 항목별로 살펴보자.

3. WHAT - 5만달러 낙착 과정

표에서 보듯이, 뇌물액은 거액(11.13)-수만달러(12.4)-5만달러(12.5)로 변화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1면톱으로 한명숙의 실명을 폭로하며 본격 사건화하면서도 가장 중요하고 또한 관심 대상인 뇌물액수를 '수만달러'라고 보도한 것이 주목된다. 그런데 다음날 중앙일보는 '5만달러'라고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이 항목은 6하원칙 항목 중 가장 일찍 확정되었다.

곽영욱이 구속된 직후, 검찰의 최고 관심과 조사시간의 대부분은 그 뇌물액수에 두어졌을 것이다. 당시 지면에는 20만 10만 5만 3만달러설 등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설들이 근거가 없지 않음이 재판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공소장은 물론 검찰조서에도 누락되어 있는 10만달러와 3만달러 관련 진술들이 그것이다.

우선 10만달러설부터 살펴보자. 3월 15일자 재판에서 곽영욱은, 검찰조사시에 한명숙에게 10만달러를 주었다고 진술한 적이 있음을 분명히 증언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독고탁의 상세한 글이 있으니 부연 설명은 생략하겠다.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121353#pre).

10만달러설은 이 사건의 실체를 가늠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것이므로 번거롭지만 당시 법정 문답을 인용하겠다.

변 : (검찰의 조사과정에서) 10만 달러를 줬다고 말한 적도 있나?

곽 : 눈을 막 이렇게 뜨고 그러니깐, 무서워서 그랬다. 나중에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그게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檢 : 그 10만 달러는 곽영욱 사장 부인의 계좌를 추적하니 뉴욕에 있는 누군가에게 10만 달러를 보낸 자료가 나오더라. 그런데 그 근처에 한 총리가 미국에 갔더라. 그래서 한 총리에게 10만 달러 준 거 아니냐고 물었던 거다. 그때 곽 사장이 처음에는 한 총리에게 준 게 아니라 했다가,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곽 : 무서워서 그랬어요… 한 총리님에게 안줬는데… 원체 다그치니깐… 줬지 않느냐고 다그치니까… 검사님이 무서워서… 줬다고 말했다가… 나중에 부장님에게 10만불 줬다고 했는데, 거짓이다. 안 줬다고 했어요.

변 : 왜 10만 불을 줬다고 말했나?

곽 : 검사님이 죄를 맞추잖아요. 죄를 만들잖아요. 내가 보니깐, 다 수사한 거잖아요. 내가 미국에 10만 불을 보냈는데, 하필이면 한 전 총리가 미국에 간 시점에 줬느냐고 물어서 난 절대 안 줬으니깐. 그런데 (검찰이) 줬다고 하니깐 줬다고 했죠. 양심이 있으니깐 나중에… (말을 바꿨지만). 내 돈을 맞춰 가지고.


정말 쇼킹한 해프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10만달러 해프닝은 검찰조서에도 누락되어 있는 듯하다. 검찰이 이런 부끄러운 기록을 남겼을 리가 없다. 이 해프닝이 정확하게 언제 일어난 것인지 궁금하다. 위 인용문에서 검찰의 진술에서 주목되는 점은, 당시에 검찰은 이미 한명숙의 출입국 기록 등 과거사를 파악해두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표적수사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실마리이기도 하다. 여기서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곽영욱이 검찰이 제시한 10만달러설이란 황당한 각본에 쉽게 동의했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변호사였다면 10만달러 해프닝건을 최대한 추궁했을 것이다.

그리고 10만달러 각본이 폐기된 이유 역시 궁금하다. 곽영욱측이 뉴욕의 누군가에게 10만달러를 부쳤고 그것이 복잡한 경로를 통해 한명숙에 전달되었다는 각본도 제법 그럴듯한데 의외로 폐기되었다.

검찰이 10만달러와 3만달러설과 관련된 취조 내용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잘 알 수 없지만, 추정하자면 다음과 같다. 10만-3만-5만달러 순으로 변화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은 계좌추적과 한명숙의 미국 방문시기를 근거로 곽영욱을 압박하자, 곽영욱은 10만달러 뇌물설에 동의했다. 그런데 송금한 돈의 출구가 분명했던 탓인지 10만달러설은 곧 폐기된다. 검찰은 곽영욱의 거짓과 이로 인한 뺑뺑이에 엄청 화났을 것이고 더욱 거세게 겁박했을 것이다. 이에 곽영욱은 3만달러설을 문득 내뱉았다. 10만달러 각본은 이내 폐기되었지만 나름대로 각본의 구성에 일조했다. '달러'라는 것만은 '3만(5만)달러' 식으로 계승되었던 것이다.

3만달러설은 어느 순간에 결국 5만달러로 낙착된다. 이에 대해 곽영욱은 한명숙이 '좋은 분이라 좀 줄여야 돼서' 3만달러라고 거짓말 했다가 정정한 것이라고 재판에서 말했다. 곽영욱의 이 진술 역시 신뢰성이 없어 보인다. 곽영욱이 순순히 그리고 자발적으로 거짓을 실토하고 정정했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검찰이 3만달러설이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또 번복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검찰은 거짓 횡설수설 모르쇠 등에 번번이 당했으므로, 곽영욱의 3만달러설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검찰도 무척 갑갑했을 듯하다. 거짓임을 증명할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검찰도 공소장에서는 물론 재판에서도 돈의 입구와 출구를 전혀 밝히지 못했다. 3만달러와 5만달러는 양자 모두 거짓일 수도 있고 참일 수도 있다. 이런 사정을 미루어 볼 때 3만달러가 5만달러로 수정되는 과정이 궁금하다.

검찰관계자는 이에 대해 "총리에게 준 돈으로 3만달러는 아무래도 좀 적은게 아니냐며 불신감을 표현하자 곽씨가 액수를 5만달러로 높였다"고 한다(조선일보 3월 15일). 검찰의 이 해명보다 필자의 아래 가설이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

 


한명숙의 죄목이 특가법상의 뇌물죄이다. 이 법이 적용되어야 가중 처벌된다. 특가법 2조에서 보듯이, 3천만원 이상의 뇌물을 받아야 특가법 대상이 된다. 그런데 3만불은 당시 3천만원에 미치지 못했다. 뇌물이 건네졌다는 2006년 12월 20일(물론 당시에 검찰도 이 날짜를 몰랐지만) 당시 환율은 그림에서 보듯이 1달러에 925.8원이었다(이 그림은 조선일보 12월 21일자 경제면 상단을 캡쳐한 것이다). 물론 당시 검찰도 정확한 날짜를 몰랐다. 다만 07년 (초)무렵이라고 대충 알고 있었는데, 그 당시도 역시 900원대 초반이었다. 검찰도 필자처럼 당시 환율자료를 찾아보았을 것이다.

 


검찰과 곽영욱은 모종의 타협 혹은 거래한 결과 5만달러로 낙착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리하여 한명숙은 5만달러 즉 46,290,000원의 뇌물을 받은 파렴치범으로 낙인되고 특가법상 뇌물죄로 기소되었다. 내 추정이 맞다면 5만달러란 3천만원 이상의 무수한 수치 중 하나 그리고 가공의 수치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5만'이란 단어가 검찰과 곽영욱 중 누구의 입에서 처음 발설되었는지 자못 궁금하다. 차마 검찰의 입에서 '5만'이란 단어가 먼저 발설되었다고 상상하고 싶지 않다. 곽영욱이 말바꾸기를 거듭했으니, 검찰 스스로도 곽영욱의 5만달러 진술조차 확신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5만달러의 출처와 사용처를 검증하지 못했으니 더더구나 그러리라.

검찰은 곽영욱의 5만달러 진술만은 일관성이 있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위에서 보았듯이 5만달러 진술도 일관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심지어 5만달러설을 검찰 스스로도 믿지 못할 것이고 또 전혀 검증하지도 못했는데 5만달러설을 그 누가 신뢰할 수 있겠는가? 5만달러설은 검찰의 맹신에 불과하다.

4. HOW - '건네 주었다'로 낙착되는 과정

일반 뇌물사건에 비견해보면, 한명숙 사건에서 뇌물의 입구와 출구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는 것은 이례적이다. 신뢰도 높은 증거와 물증이 없고, 오직 곽영욱의 증언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건인지라, 뇌물 제공자 진술의 구체성과 일관성 등 신뢰도가 중요하다. 특히 뇌물이 전달된 정황이 설득력있게 제시되어야 한다. 실제로 '어떻게'에 대해 검찰도 무척 고심한 듯하고, 세간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고 현재까지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물론 재판부도 가장 눈여겨 살펴볼 부분이다.

그런데 재판부가 이 부분에 대한 공소장 변경을 검찰에 권고했고, 결국 공소장이 변경되는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는 것은 이미 신뢰도에 결정적 문제가 있음을 단적으로 증거한다. 곽영욱이 아무리 연로하고 병약해도 돈을 준 상황을 설마 헷갈리고 기억하지 못할까?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

표에서 보듯이, 조선일보 특종(12.4)이 있던 다음날, 중앙일보(12.5)가 5만달러설을 특종하면서 '직접전달'이라고 처음으로 언급했다. 그로부터 5일후에, CBS는 2차 특종 보도(12.10일)에서 아래와 같이 보다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곽(영욱) 전 사장은 총리공관에 들어갈 당시 양복 왼쪽 오른쪽 주머니에 각각 2만달러와 3만달러 등 모두 5만 달러를 넣고 한(명숙) 전 총리를 만나 돈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곽 전 사장은 최근 검찰 조사과정에서 이같은 모습을 직접 시연해 보였으며, 검찰은 돈을 전달한 정확한 시각과 당시 총리 공관의 출입기록, 곽 전 사장의 동선 등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오찬장 출입문 근처에서 한 전 총리에게 바로 건네줬다' '핸드백 같은 것 들고 다니니 거기에 넣었을 것이다'라는 등등의 내용들이 검찰조서에도 있다고 한다. 앞서 지적한 바 있지만 당시 언론들의 특종들이 언론의 순수작문만은 아니다.

상당히 구체적인 상황 묘사를 동반한 이 특종이 나오자,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기발한 패러디물들이 나돌았다. 그런 와중에 며칠 후 동아일보(12.14)에서 약간 돌출적인 듯한 특종보도가 나왔다. 한 전 총리를 만나러 공관을 갈 때, 여럿이 동행했으며 '동행자 중 몇 명은 공관에서 일정이 끝난 뒤 먼저 나갔고 내(곽영욱)가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다가 5만달러를 두고 나왔다'는 기사가 그것이다.

 


동아일보 특종 시점은 체포영장이 발부되기 2일전으로, 총리공관 오찬모임 날짜가 대충 파악되면서 그간의 혼란을 극복하고 극본을 거의 완성해 가고 있는 단계였다 다만 '언제' 문제와 이와 직결된 '왜' 문제는 여전히 약간 불확정적이었다. 동아일보 특종에서 2007년초라고 잘못 적시한 것은 강동석의 수첩에 힘입어 총리공관 오찬 일자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검찰도 정확한 일자를 몰랐었기 때문이다('언제' 장에서 상술). 동아일보 특종으로부터 2일후 체포영장에서는 '언제' '왜'마저 확정되었다.

그 뒤 한겨레신문(12.21)이 총리공관의 동행자들이 정세균과 강동석이었다는 것과 거기서 오간 대화 내용들을 보도했다. 돌이켜 보면, 동아일보 특종으로 특종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한겨레신문의 기사는 특종이라 하기에는 미흡하고 극의 막판 들러리 역할만 했다고 할 수 있다. 야당탄압 혹은 표적수사라는 세간의 시선을 감안하여, 야당 대표 이름(정세균)을 폭로하는데 비판언론인 한겨레신문이 선택적으로 발탁된 것이리라.

이상의 과정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동아일보 특종의 '두고 나왔다'가 공소장(12.22)에서 '건네주었다'라고 다시 바뀌었던 점이다. 공소장의 이 내용은 재판정에서 '의자위에 놓아두고 나왔고, 갖고 가는지 보지 못했다'라는 곽영욱의 진술로 다시 전복되었다. 결국 곽영욱의 법정 진술은 동아일보 특종 즉 '두고 나왔다'로 되돌아갔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곽영욱이 검찰조사시의 진술을 번복한 것으로 단순하게 여긴다. 그리고 곽영욱도 '검찰조사에서는 한번도 그렇게('두고 나왔다') 말한 적이 없느냐'고 재판부가 묻자, 곽영욱은 '없다'고 단언했다. 물론 검찰에게 물어도 곽영욱처럼 말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당시에 검찰에게 이를 재확인하지 않았는지 아쉽다). 결국 곽영욱과 검찰은 동아일보 특종이 오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동아일보와 이태훈 기자를 심히 모욕하는 것이다. 필자는 동아일보 특종이 오보가 아닐 것으로 추정한다. 내 추정이 맞다는 것은 동아일보 특종을 생산한 이태훈 기자가 증언해 주리라 믿는다.

'두고 나왔다'는 표현은 특종(12.14) 이틀전의 이태훈 기자의 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07년 초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 공관을 찾아가 한 전 총리를 만난 뒤 총리 공관에 5만달러를 두고 나왔다"(12.12)라고 보도했다. '여럿이 동행했다'는 부분만 없을 뿐, 나머지는 14일자 기사와 똑같다. 이런 표현은 오직 동아일보에만 실려있다. '직접 전달'의 보편 속에서 '두고 나왔다'는 동아일보만이 특수 표현을 연거푸 썼다는 것은 확실한 정보원(물론 '검찰 빨대'일 것이다)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이 특종은 이명박정권하에서 동아일보의 정보력과 위상을 짐작케 한다.

따라서 필자는 곽영욱이 법정에서 위증했다고 생각한다. 아마 검찰조서에도 이 부분은 남아있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10-11일자 조서와 동영상을 꼼꼼히 검토해 보면 그 흔적이 남아있을 것이다. 결국 '두고 나왔다'는 검찰에서의 곽영욱 진술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공소장을 왜곡 작성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곽영욱의 법정 진술은 진술 번복이 아니라 검찰에서의 진술을 재확인한 셈이고(그렇다고 곽영욱의 진술이 진실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법정에서 곽영욱의 진술이 공소장 내용을 뒤집으면서 검찰이 궁지에 몰리자, 담당검사 권오성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 '건네 주었다'에는 의자에 두고 나왔다는 방법도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기소할 때부터 손으로 건넸는지 식탁이나 의자에 놨는지 추상적이었다"고 변명했다. 검사의 말이라고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공소장의 가장 핵심 증거마저 추상적인데 기소가 가능한지? 노무현 사건에서 '포괄적 뇌물수수'라는 말이 유행하더니, 이제는 '포괄적 기소'마저 등장한다. 하여튼 '추상적 포괄적 기소'임을 검찰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검찰이 궁지에 몰리자 보수 언론들은, 검찰관계자의 입을 빌리는 형태로, 곽영욱이 진술번복을 검찰도 재판 시작 하루 전에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는 식으로 대신 변명해주었다. 과연 '두고 나왔다'는 곽영욱의 진술이 재판 하루전에 처음 있었던 것일까?

필자는 이 모든 혼돈과 모순의 출발이 기소유지를 위해 공소장을 왜곡 작성한 것에서 초래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고 나왔다'는 곽영욱의 진술은 동아일보 특종(12.12-14) 전에 이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진술대로 표현한다면 기소유지마저 어렵다고 검찰도 판단한 나머지, 공소장에서 '건네 주었다'라고 추상적 포괄적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내 추정이 맞다면, 이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검찰의 중대 범죄행위다. 이는 국민들은 물론 검찰수뇌부마저 기망한 것이다. 이러한 꼼수 마련에 검찰수뇌부가 직접 개입했을 가능성도 있다. 한명숙사건에 대해 검찰수뇌부가 대책회의를 했다는 신문기사도 더러 있었다. 설사 검찰수뇌부가 직접 관련이 없다 하더라도, 그 꼼수를 간파하지 못한 검찰수뇌부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필자가 이런 과감한 추정을 하는 것은 최근 검찰 행태에서 이와 유사한 꼼수들을 자주 발견했기 때문이다. 표적을 정하여 무리하게 기소했지만 재판에서 무죄로 판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그 사건을 담당한 검사들의 대부분은 책임지고 문책당하기는 커녕 오히려 영전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전달과정에 대해서도 곽영욱의 진술은 일관성이 없었고, 신뢰하기 어렵다. 더구나 검찰 조사시의 곽영욱 진술마저 공소장에서 검찰에 의해 의도적으로 왜곡된 것으로 추정된다.

관찰자로서의 필자도 이러한 추정들에 무척 조심스럽다. 하물며 검찰이 '곽영욱이 놓아둔 봉투를 보고, 한명숙은 몇 초 사이에... 남의 시선을 피해 재빨리 서랍장에 숨기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히....'식으로 추정하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심지어 이러한 내용은 공소장에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이번 재판을 픽션이고 '동시대극'이라 표현한 것이다.

5. WHEN WHERE WHY - 시간 장소 이유가 정착하는 과정

이번 사건에서 검찰이 밝혀냈다고 인정되는 것은 '언제'와 '어디서' 뿐이다. 즉 2006년 12월 20일 총리공관에서 곽영욱과 한명숙이 만났고, 그 자리에 정세균과 강동석도 동석했다는 사실 뿐이다.

'언제' '어디서' '왜' 역시 표에서 보듯이, 검찰이 갈피를 잡지 못했다. 특히 '언제' '왜'는 한명숙 체포영장(12.16)을 발부하는 단계에서야 정착되었다. 남동발전만을 언론에 흘리다가 체포영장에서 갑자기 석탄공사로 바뀌면서 황당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러한 혼선은 복잡한 듯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총리공관 오찬 일자에 그 열쇠가 있다. 즉 검찰 각본에서 '언제'가 특정되지 않고 유동적이면서 '왜'도 정해지지 못하고 가변적이었던 것이다. 이들 3자는 긴밀한 관련을 가지고 있으므로 동시에 다루어 보자.

이 셋 중에서 비교적 일찍 확정된 것은 '어디서'이다. 표에서 보듯이, CBS 특종(12.9)은 '어디서'가 바로 '총리공관'이라고 최초로 적시했고 이후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 타인을 거쳐 혹은 계좌로 뇌물이 전해졌다고 한다면, 증인이나 증거가 제시되어야 하기에 직접 전해주었다고 하는 편이 채택된 것 같다. 그것도 현금으로 또 달러로. 따라서 '무엇'(5만달러)이 낙착되자, 검찰은 둘이 직접 만난 정황에 대한 파악에 집중했을 것이다.

곽영욱은 총리공관에서의 만남을 쉽게 떠올릴 수 있었고 실토했을 것이다(그런데 언론 특종을 통해 보면, 의외로 5일 이상이나 걸렸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수년전 사실이니 정확한 일자는 기억하지 못했을 수 있다. 그런데 앞서도 지적한대로 '어떻게'와 '왜'를 기억하지 못했지 정말 의아하다. 그것들은 쉽게 잊혀지거나 헷갈릴 성질의 것이 아니다. '어떻게'와 '왜'를 떠올리면 '언제'도 대충 추정이 가능했을 터인데....

'언제'에 대해 이 건을 사건화 시킨 조선일보 특종(12.4)은 '2007년 무렵'이라 적시했다. 그로부터 수일 후인 10일경부터 '2007년 초' '3월' '1월' 등의 다양한 설들이 보도되었다. 동아일보 특종(12.14)에서도 '07년 초'였다. 그후 무슨 이유인지 '2006년 가을'로 추정되기도 하다가 체포영장(12.16) 단계에서야 그 일자가 정착되었다.

이와같이 '언제'의 오락가락과 모호함이 정리된 것은 강동석의 수첩 메모를 통해 총리 공관 오찬 모임 일자가 확인되면서 부터였다. 검찰조사를 받고 나온 강동석과의 인터뷰 기사(한국일보, 12.21)에서 이러한 사정을 엿볼 수 있다.

 


애초에 '2007년 무렵' 혹은 '2007년초'라는 설이 파다했던 것은 곽영욱이 놀고 있다가 남동발전사장으로 가게 된 것이 2007년 4월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남동발전 사장 선임 결정은 2007년 3월 30일에 있었다(조선일보, 3.31).

2006년 12월 20일은 석탄공사 사장 후보 응모 마감 6일전이었다. 그리고 석탄공사 사장이 선임 결정은 2007년 1월 25일(조선일보, 1.26)이었다. 곽영욱은 1등으로 올라갔지만, 정책적 배려가 작용하여 곽영욱은 최종 선택에서 탈락했다. 결국 석탄공사와 남동발전에는 3달 간격의 갭이 있다.

조선일보 특종(12.4)에서 남동발전이 언급된 이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체포영장 단계에서 총리공관 오찬 일자(2006년 12월 20일)를 고려하여, 남동발전(2007년 3월 30일)에서 석탄공사(2007년 1월 25일)로 갑자기 바뀌게 되었다.

28일 밤에 MBC에서 곽영욱을 직접 인터뷰한 화면을 얼핏 보았다. '나이가 드니 수천만원 정도 준 것들에 대해서는 기억이 안난다'고...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뇌물을 '어떻게' 전해주고 또 '왜' 주었는지를 제대로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이 정말 의아하다.

이렇게 '왜'가 변경되는 황당한 국면에서, 김주현 3차장(사건 담당 특수2부 직속 상관) 검사와 조선일보는 다음과 같이 변명했다.

곽 전 사장은 그러나 석탄공사 사장으로 가지 못했고, 다음해 한국남동발전 사장이 됐다. 이와 관련, 한 전 총리측은 "그동안 남동발전 사장 인사청탁이라고 흘리다가, 체포영장에는 석탄공사 사장으로 가기 위해 뇌물 준 혐의라고 돼 있는데, 이는 수사가 아니고 조작"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주현 3차장은 "석탄공사나 남동발전 모두 공기업이어서 이 과정은 다 연결돼 있는 것"이라고 했다. 애초 곽 전 사장의 요구가 공기업 사장으로 보내달라는 것이었고, 그 뒤 5만달러를 건네고 나서 남동발전 사장으로 간 만큼 '대가성 자금'으로 보는 데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조선일보 12.19).

석탄공사나 남동발전이나 공기업이니 '다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고!!! 누차 지적한 대로 이런 '포괄적' '추상적' 공소장도 있나!!! 우선 5만달러가 설사 전해졌다고 하더라도 실패한 청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실패한 경우도 과연 댓가성이 인정되는지 논란의 여지가 제기될 것이다(판례가 있겠지만 이것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므로 여기서 상론하지 않겠다). 필자는 김주현의 변명과 공소장을 감안할 때, 검찰이 '공기업 사장 청탁'을 했다는 식으로 두리뭉실하게 표현한 것은 의도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곽영욱의 진술과 배치되게 공소장을 작성했다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 곽영욱이 석탄공사를 일찍 진술했지만, 석탄공사 사장건이 실패한 청탁이므로 검찰은 고의로 은폐했다가 막판에 어쩔 수 없이 인정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양자가 '그게 그거'라는 식으로 호도하고.

게다가 재판과정에서 곽영욱은 청탁 관련 공소장 내용을 모두 번복했다(곽영욱이 진술을 번복한 것인지 검찰이 공소장을 위조 창작한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그 중 하나의 예만 들어보겠다.

검찰조서에 따르면, 정세균이 나갈 때 '곽사장을 잘 부탁한다'고 한명숙이 말했다고 곽영욱은 진술했다. 그런데 법정에서 곽영욱은 누구를 특정하지 않고, 식탁에서 일어나면서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3월 11일 진술). 그리고 다음날에는 '정확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3월 12일 진술).

결국 곽영욱은 한명숙에게 청탁했다는 사실 자체를 법정에서 전면 부정했다. 한편 검찰은 석탄공사는 물론 남동발전 사장 선임에 한명숙이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는지에 대해 구체적 증거를 단 1건도 제출하지 못했다. 결국 댓가성을 인정할 만한 어떠한 증거도 없는 셈이다.

6. 사건의 총괄적 재구성

6하원칙 중 WHO(누가)의 문제만 남았다. 왜 하필 한명숙이 사냥감이 되었던가의 문제이다. 이 문제는 간단하지만 사실은 이 사건의 본질에 해당하는 것이고 좀 복잡하기도 하다. 게다가 검찰이란 존재가 필자같은 일개 서생의 조롱을 받기에는 결코 만만치 않은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미련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 더 시간을 두고 살펴보는 편이 좋겠다. 대신 이상의 글을 전체적으로 정리하고, 지난한 글쓰기 과정에서의 소회를 피력하는 것으로 글을 맺으려 한다.

앞서의 표와 서술을 통해 공소장이란 극본이 작성되는 과정을 치밀하게 추구했다. 그것들을 구태여 요약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차피 필자의 글도 검찰 극본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임을 잘 안다. 그리고 필자 글의 내용이 모두 진실이라고 감히 주장하지 않는다. 그래도 검찰의 극본보다는 그럴듯한 진실을 담고 있다고 자부한다.

간단히 핵심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검찰의 조사과정, 공소장과 재판 과정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해보면, 6하원칙 중 확실한 것은 오직 한명숙과 곽영욱(누가)이 2006년 12월 20일(언제) 총리공관(어디서)에서 동석자 2명과 오찬했다는 것 정도이다.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무엇을' '어떻게' '왜'에 대해서는 검찰도 전혀 입증하지 못했다. 검찰은 뇌물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물증 등 신뢰도 높은 증거를 단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다. 필자가 공소장을 '허구'에 가깝다고 보는 이유이다.

검찰도 그런 사실을 인정하는듯이, 후원비 유학비용 골프채 골프빌리지 등의 주변적 정황 증거에 집착했다. 이들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상론할 여유가 없다. 다만 그것들의 대부분도 법정 진술이나 한명숙측의 해명 과정에서 설득력을 상실했다는 것만 지적해둔다.

그래도 검찰이 믿는 구석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바로 상황 증거인데 그 중에서도 곽영욱의 총리공관 오찬 참석이 그것이다. 곽영욱이 어떤 이유로 어떤 과정을 거쳐 누구 연락을 받고 참석했던가. 이것이 정황 증거의 핵심이다.

이점과 관련하여 필자가 그려본 상황은 다음과 같다.

공기업사장 인선 과정에 대해서는 당시 인사수석이었던 박남춘이 증인으로 법정에 출두하여 명쾌하게 해명한 바 있다. 곽영욱은 현재 비자금 조성, 횡령, 뇌물제공 등의 파렴치범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당시 언론 지면을 통해 보면 유능한 CEO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는 연세경영자상(조선일보 1999.11.23과 12.3)을 받았으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우수법정관리인으로 선정되었다(조선일보, 2004.4.23과 2005.4.22).

서울지법은 2002년부터 법정관리기업의 관리인을 대상으로 실적 평가를 통해 우수 관리인을 매년 선정했는데, 2005년 곽영욱은 4년 연속 우수법정관리인으로 선정되어 3000만의 특별보수까지 받았다(아래 그림은 조선일보 신문 캡쳐, 2005.4.22).

 


그다지 친밀하지는 않지만 곽영욱이 한명숙을 도운 적이 있고 그리고 개인적 인연도 약간 있는데다, CEO로서 평판이 좋은 곽영욱을 공기업 사장이 될 수 있도록 한명숙이 총리로서 일정한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필자는 그것이 법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곽영욱이 석탄공사 사장에 1등으로 추천되었지만 최종 결정 과정에서 탈락한 것은 공식적인 인사 선발 시스템이 침해받지 않았다는 단적인 증거이다.

필자는 한명숙측이 이 문제에 대해 적극 해명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검찰의 직접 신문에 대해 한명숙측은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리고 재판부에 이에 대해 해명하는 문서를 제출했다는 뉴스만 접했다.

물론 한명숙측의 진술거부권 행사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림에서 보듯이 현행 형사소송법에서 명문화되어 있는 피고인의 권리이다(그림은 법제처 사이트에서 캡쳐). 이미 한명숙을 법적으로 단죄하기 보다 흠집내기로 일관해온 검찰과 언론의 반칙과 불법을 감안할 때 더욱 그러하다. 검찰 질문에 한명숙이 답하는 부분이 TV화면과 신문지면을 화려하게 장식했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 점에서 진술거부권 행사는 불가피하고 현명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진실에 목마른 만년서생의 입장에서, 일말의 아쉬움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서두에서 살펴본 인혁당사건에서 그 판결 결과에도 관심이 있지만 인혁당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대해서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물론 그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단죄할 1차적 책임은 검찰에게 있다. 누차 말했지만 검찰은 그 책임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 피의자와 피고인에게 그 무죄와 결백을 증명하라는 것은 법원칙에도 맞지 않다.

공안검찰을 동원하여 '빨갱이 사냥'이 연출되었던 불행한 과거사를 떠올리게 된다. 요즘은 특수검찰을 동원한 '바보 사냥'이 추가되고 있다. 노무현 강금원 정연주 박원순 그리고 무수한 촛불 사건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한명숙 사건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극본 작성에 막대한 인력과 돈이 투입되었지만 그 극본은 수준 이하였다. 대한민국 특수부 검찰의 반칙과 불법에 분노하고 한편 그 무능에 실망했다. 극본이 무대나 극장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에 비애감을 느낀다. 더구나 검찰의 무리한 기소가 최근 빈발하고 있는 일련의 '자뻑쇼'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자뻑쇼'들을 권력핵심부가 연출하고 있는 현실에 깊은 좌절감을 느낀다.

한편 검찰이 진용까지 보강하며 '한명숙 죽이기'에 막판까지 필사적인데도, 결정적 약점이 드러나지 않는 한명숙이란 사람을 다시 보게 된다.

재판부는 물론 심지어 검찰마저 '포괄적 기소' '추상적 기소'임을 인정했다. 이따위 '포괄적' '추상적' 기소가 허용된다면 기소당하지 않을 이가 과연 있을까? 검찰 앞에 발가벗겨져 치부가 드러내지 않을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검찰의 망나니 칼춤에 다치지 않을 이가 있을까? 검찰과 한명숙 이 양자가 당분간 필자의 화두가 될 것 같다. '세기의 재판'은 법정에서도 그 진실이 가려지지만 역사와 현실에서도 가려진다.

무명씨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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