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의대정원과 지역의사

道雨 2020. 9. 1. 10:42

의대정원과 지역의사

 

 

의료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갈수록 커지고 다양화·고급화되고 있다. 인구 고령화와 만성 질환자 증가, 소득 수준의 향상과 의료 소비자 권리 의식 강화의 영향이다. 전공의들의 수련 시간 단축 등으로 인해 같은 의사 수로도 의료 서비스 제공량은 줄었다. 그런데도 의과대학 입학 정원은 15년 전에 대폭 축소된 뒤 동결돼왔다.

 

의사 인력의 수급에는 여러 변수가 작용한다. 가장 큰 수요 요인이 인구의 고령화인데,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 의사 공급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의과대학 정원이다. 우리나라는 언어 문제 때문에라도 외국인 의사가 와서 활동하기 어렵다. 의사 인력을 대거 이민 받는 미국·영국과는 다르다.

지방에서 의사 부족은 심각한 사회문제다. 사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비슷하게 고민하는 문제다. 결국 전체 의사 인력 수를 늘리거나 지방에서 근무하는 의사 비율을 늘려야 한다.

 

의과대학 입학 과정에서 지역 근무를 조건으로 하는 의사를 뽑고 장학금으로 교육할 수는 있다. 그렇더라도 평생 어떤 지역에 근무하도록 강요할 수는 없다. 결국 일정 기간 근무 의무를 부과하는 정책을 도입하면, 그 기간만이라도 지방에서 일하게 하는 정도의 효과는 있을 것이다. 지역 근무를 하면서 연고가 생겨 계속 그 지역에 머물 가능성도 생길 수 있지만, 지방 근무 의사가 늘어나는 효과는 거기까지다.

의료 서비스의 제공을 민간에 맡기고 있고, 직업 선택과 거주의 자유가 있는 우리나라에서 지역 근무 의무화는 한계가 있다.

 

지금처럼 의사 인력 자체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의대 정원 확대가 거의 유일한 대안으로 꼽힌다. 정부가 발표한 방안에서 외견상 방점은 ‘지역’ 의사 배출에 있지만, 실제로 기대되는 효과는 의사 인력의 ‘확충’ 자체에 있다. 우리나라는 의과대학 입학정원(3058명)만큼 해마다 의사를 배출한다. 의대 졸업자 수는 인구 10만명당 약 6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오이시디, OECD) 회원국 평균은 14명이니 한국의 두배가 넘는다. 오이시디 의사 비율을 대한민국 인구(5200만명)에 적용하면, 의대 입학 정원이 7000명은 돼야 한다.

물론 오이시디 평균이 절대적인 기준은 될 수 없다. 열심히 일하는 우리나라 의사들의 근무 상황, 한의사의 임상 활동 등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연간 4000명 이상의 의사 인력은 배출돼야 지금과 같은 의료 난맥상을 피할 수 있다.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의사의 불균형 분포가 문제라고 주장한다. 맞다. 불균형 분포가 심각하므로 이를 해결하는 것이 과제다. 하지만 전공과목이나 근무 지역은 개인의 선택이고 정책으로 강요할 수 없다. 실효적 정책 수단은 의대 정원 확대밖에 없다.

전체 의사 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흉부외과 의사가 부족하다” “비뇨기과 의사가 부족하다”고 아무리 호소하고 대책을 세운들 먹혀들 수가 없다. 부족한 전문 과목에 의사가 충원되면 다른 과목에 구멍이 생기니 가망이 없는 일이다.

교육 여건과 생활 편의 시설을 잘 갖춘 도시에서 돈 잘 버는데, 억대 연봉을 준다고 누가 지방 오지로 가려 하겠나. 기초 의과학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한들, 임상에서 희소가치를 누리고 대우를 잘 받는데 누가 관심을 가지겠는가.

 

의사에게 병·의원 임상만이 활동 무대는 아니다. 제약회사와 의공학 분야, 정보기술(IT)·생명공학(BT) 등 의사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곳은 많다.

충분한 의사 인력을 배출해야 한다. 의사들이 당장 안정된 소득을 보장하는 임상에만 머물지 않고, 더 큰 발전에 눈을 돌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부족한 인력으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의사들의 부담을 줄이고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 꼭 필요한 환경이다.

 

정형선 ㅣ 연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960092.html?_fr=mt0#csidxe03e8a256fb12ae803d693a79110a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