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관련

임진왜란의 숨은 영웅 황진(黃進) 장군과 진주 창렬사(彰烈祠)

道雨 2020. 9. 3. 18:31

임진왜란의 숨은 영웅 황진(黃進) 장군

 

황진(黃進, 1550~ 1593)은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본관은 장수, 자는 명보(明甫), 시호는 무민(武愍)이다.

고조부는 황희()이고, 증조부는 지중추부사 황사효(黃事孝), 할아버지는 부사직 황개(黃塏), 아버지는 증 좌의정 황윤공(黃允恭)이며, 어머니는 남양 방씨(房氏)로 봉사 방응성(房應星)의 딸이다. 황윤길은 황진의 5촌 당숙이다.

 

개요

1550년 황희의 5대손이자 황윤공의 아들로 지금의 남원군 주생면 영천에서 태어났다. 1576년(선조 9) 27세 때 무과에 급제하여, 함경도에서 6년을 근무했다. 거산 도찰방과 안원 권관을 위시해 하위 관직을 거쳐 선전관이 됐다.

이듬해 종계변무(宗系辨誣) 일로 사신 황림(黃琳)을 보좌하여 군관으로 명나라를 다녀왔다. 1583년(선조 16) 함경도 북방에 사는 야인의 추장 니탕개(泥湯介)가 무리를 이끌고 침략하자, 이 싸움에 참전하여 많은 적을 사살하고 공을 세웠다.

 

조선통신사

1590년 황윤길(黃允吉), 김성일 일행을 따라 군관으로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후, 제용감 주부를 거쳐 동복현감이 되었고, 왜란의 기미를 감지하고 공무가 끝나면 말타기와 활쏘기를 부지런히 익혔다.

15926월 왜군이 전라도와 충청도를 침범하자, 이광(李光)이 권율을 도절제사로 삼고 영남과 호남의 경계에 나아가 수비했다. 황진도 이광의 휘하에서 전투에 참가해 왜군의 침입을 방비했다. 용인의 전투에서 패해 남하하던 중, 진안에 침입한 왜군의 선봉장을 사살하고, 이어 안덕원(安德院)(웅치전투의 연장선)에 침입한 왜군을 격퇴했다.

 

이치 전투

7월 훈련원 판관으로 이치전투(梨峙戰鬪)에 참가해 왜군을 격퇴했다. 왜군의 대병이 이치를 침범하자, 권율이 황진을 독려해 동복현의 군사를 거느리고 이치를 점거해, 총탄에 맞아 부상하기까지 하면서 대승했다. 당시 왜군이 조선의 3대 전투를 일컬을 때 이치(梨峙)의 전투를 첫째로 쳤다. 이복남과 황진은 이 전투로 이름을 떨치게 되어, 이 공으로 황진은 익산군수와 충청도 조방장을 겸했다.

15932월 전라병사 선거이(宣居怡)를 따라 수원에서 왜군과 싸웠고, 3월에는 충청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진()을 안성에 옮기고서 군대를 훈련시켰고, 죽산성의 왜군과 대치 중, 왜군이 안산성을 함락하고자 죽산성을 나와 안성에 진군하자, 맞서싸우면서 죽산성을 점령했고, 퇴각하는 왜군을 상주까지 추격해 대파했다.

 

2차 진주성 공방전

15936월 왜군 10만이 진주를 공략하자, 김천일(金千鎰), 경상도 병마절도사 최경회(崔慶會) 등과 진주성에 들어가 제2차 진주성 전투를 벌이다가 9일간의 항쟁 끝에 전사한다.

 

인간 관계

그는 최경회(崔慶會) 의병장과 1562년 유교 성리학 수학 시절 사형제(師兄弟) 관계를 맺었는데, 이후 1593년 임진왜란 때 사형(師兄) 최경회 의병장과 함께 진주성 전투에서 함께 전사하였다.

 

사후

황진의 사후 좌찬성에 추증되고, 진주의 창열사(彰烈祠), 남원의 민충사(愍忠祠)에 제향됐다. 시호는 무민(武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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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 장군 (신상정보 및 경력)

 

부모 : 황윤공(), 남양 방씨 부인()

출생일 : 1550

출생지 : 조선 전라도 남원군 주생면 영천리

사망일 : 15936(44)

사망지 : 경상도 진주성에서 전사(2차 진주성전투)

본관 : 장수(長水)

친인척 : 황개(친조부), 방응성(외조부), 황윤길(5촌 종숙부)

()는 명보(明甫), 시호(諡號)는 무민(武愍)

 

1572(선조 5)에 무과 급제

선전관, 거산도찰방, 안원권관

동복현감

익산군수

충청도 조방장

충청도병마절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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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창렬사(彰烈祠)

 

진주 창렬사(晉州 彰烈祠)1593년 임진왜란 당시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장렬히 산화한 순국 선인들의 신위를 모시기 위해, 경상도 관찰사 정사호가 건립하여, 1607(선조 40) 사액을 받은 곳이다.

1983720일 경상남도의 문화재자료 제5호 창렬사로 지정되었다가, 20181220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개요

 

창열사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호로 진주성 전투에서 전사한 것을 기리기 위해 진주성 내에 건립되어 있다. 2차 전투에서 많은 진주 성민이 순국한 후, 경상도 관찰사 정사호가 건립하였고, 선조 40년에 사액을 받았다. 후에 1868(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김시민 장군을 모신 충민사가 철폐되자, 이곳에 모시게 된다.

 

창열사 기념비

 

창열사에는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신위를 맨 윗자리에 모셔두었고, 진주목사 서예원, 창의사 김천일과 충청도 병마사 황진, 경상우도 병마사 최경회 등의 임진왜란 순국선열 39인의 신위를 모시고, 매년 음력 3월 초정일에 제향을 올리고 있다.

 

최경회의 도장

 

1747년 영조 23126일 경상우병영에서 조정으로, 진주 사람이 남강 가에서 주웠다고 하는 도장 한 개를 올렸다. 이것은 당시로부터 154년 전인 1593년 최경회가 소지하고 있다가, 남강에 몸을 던질 때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영조는 이것을 창열사에 두고 제를 올리라고 명하고, 도장갑을 만들고 그 위에 글을 지어 새기도록 하였다.

 

追憶往事 : 지난 일을 돌이켜 생각하니,

百有餘年 : 100여 년이 지났네.

幸得南江 : 다행히 남강에서 습득한

印篆宛然 : 도장에 새겨진 전자가 완연하니,

矗石閫義烈 :  촉석루에서의 뛰어난 의열

想像愴先 : 상상하니 먼저 서글퍼지네.

命留嶺閫 : 영남의 병영애 보관토록 하여

以竪忠焉 : 충절을 기리게 하노라”

 

건축물

 

건축물로는 외삼문인 유중문과 내삼문인 전파문이 있고, 내부에는 위패가 모셔진 창열사가 있다. 좌우측에 각각 한 채씩의 건물이 있고, 선인들의 비석과 함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세운 제장군졸지위라는 비석이 뒤뜰에 세워져 있다.

 

창열사는 특별히 관리를 하는 문중이 없기 때문에, 관리가 잘 되지 않아 쇠락하기 쉽고, 제사도 잘 지내지 않아, 조선왕조실록에도 쇠락하여 안타깝기 그지없다는 내용이 나오며, 현재 내부에서 상주를 하며 관리를 하고, 항일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인근의 대아고등학교 전 교장 박종한 선생의 의지에 따라, 정기적으로 대아고등학교에서 관리를 돕고 청소를 하여, 학교 깃발이 위패 옆에 놓여 있다.

 

배향

 

정사(창열사) : 7

 

충무공 김시민, 증영의정 상락부원군 수경상우도병마절도사

문열공 김천일, 증영의정 행창의사

무민공 황진, 증좌찬성 행충청병마절도사

충의공 최경회, 증좌찬성 행경상우도충병마절도사

충의공 장윤, 증좌찬성 행진주목사

효열공 고종후, 증이조판서 행임피현감 복수의병장

유복립 증이조참판 종부시주부

* 진주목사 서예원, 선무 원종 1등 공신(宣武原從功臣) 병조 참의(贈兵曹參議) 추증, 고종 때 진주의 창열사(彰烈祠)에 제향

 

동사(東祠) : 15

 

양산숙, 증승지 창의사 종사관

김상건, 증참의 (김천일의 아들)

김준민, 증병조참판 행거제부사

강희열, 증병조참의 분의의병장

조경형, 증병조참의 행진해현감

최기필, 증병조참의 행판관

유함, 증주부 의병장

이욱, 증호조좌랑 성균생원

강희복, 증호조좌랑 의병장

장윤현, 증호조좌랑 행수문장

박승남, 증병조참의 행판관

하계선, 증호조좌랑

최언량, 증호조좌랑

주몽룡, 증형조판서 금산군수 증시 무열

주대청 ,증도총관 가배량권관(加背梁權管

 

서사(西祠) : 17

 

이잠, 증병조참의 적개의병장

성영달, 증병조참의 행우병마우후

이종인, 증병조참판 행김해부사

윤사복, 증병조참의 행첨정

이인민, 증호조좌랑 증시무용

손승선, 증호조좌랑 의병장

정유경, 증군자감정 행주부

김태백, 증좌승지행 수문장

양제, 증호조좌랑 행선무랑

박안도, 증호조좌랑

이의정, 증병조참의 행보령현감

김개, 증도총관 행부장

송건도, 증사복

정재보, 증예조정랑

박세항, 선무원종공신 수문장

송제, 증호조참의 군수

김덕련, 김개의 손자

칠만민관군 신위(神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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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사항 ]

 

고종 때 대원군의 서원 철폐에서 제외된 47개 서원

 

경기도 : 개성 숭양서원 · 김포 우저서원 · 용인 심곡서원 · 안성 덕봉서원 · 파주 파산서원 · 고양 기공사 · 여주 대로서원 · 하남 사충서원 · 의정부 노강서원 · 인천 충렬사 · 광주 현절사 · 포천 용연서원

충청도 : 논산 돈암서원·노강서원 · 부여 창렬사 · 청주 표충사 · 충주 충렬사

경상도 : 부산 안락서원 · 진주 창렬사 · 경주 서악서원·옥산서원 · 영주 소수서원 · 구미 금오서원 ·

대구 도동서원 · 상주 옥동서원 · 함양 남계서원 · 안동 병산서원·도산서원 · 상주 흥암서원 ·

통영 충렬사 · 거창 포충사

전라도 : 정읍 무성서원 · 장성 필암서원 · 광주 포충사

강원도 : 철원 충렬서원·포충사 · 영월 창절서원

황해도 : 개성 숭양서원 · 배천 문회서원 · 은율 봉양서원 · 평산 태사사 · 해주 청성묘

평안도 : 평원 삼충사 · 안주 충민사 · 향산 수충사 · 평양 무열사 · 정주 표절사

함경도 : 북청 노덕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