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관련

임진왜란의 숨은 영웅이자, 이순신의 절친 : 선거이

道雨 2020. 9. 13. 15:34

임진왜란의 숨은 영웅이자, 이순신의 절친, 선거이

 

선거이(宣居怡, 1550년 ~ 1598년)는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본관보성, 자는 사신(思愼), 호는 친친재(親親齋)이다. 보성선씨 시조 선윤지(宣允祉)의 8세손이며, 판서 선형(선형)의 증손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초기에 이순신과 함께 한산도 대첩에 참전하여 승전했고, 그해 12월에는 전라도병마절도사로서 독산산성 전투에서 승리하였으며, 뒤를 이어 권율 도원수의 부원수 자격으로 행주대첩의 승리를 이끌어 냈다. 1594년 9월의 장문포 해전에서 승전하였다. 1605년 선무원종공신일등(宣武原從功臣一等)에 추봉되었다.

* 한산도 대첩 당시, 선거이는 전라우수영(이억기 수사) 예하의 진도군수로서, 삼도연합함대의 일원으로 참여하였다고 한다.

생애

1569년선전관으로 등용되고, 1570년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1586년에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이일(李鎰)의 계청군관으로 함경도에 배치되어, 그곳에서 충무공 이순신을 만났다. 1587년 녹둔도에서 조산보 만호 이순신과 함께 여진족을 막는 공을 세웠으며, 1588년에는 거제현령, 진도군수를 역임하였다.

* 이순신이 이일의 모함으로 백의종군할 당시 이순신을 옹호하였음.

이어 청백(淸白)으로 성주목사를 거쳐, 1591년에 전라우도 수군절도사가 되었다. 이순신과는 가장 가까운 전우였으며, 나이는 이순신보다 5살 어렸지만, 계급은 7등급이 앞서갔다.

1592년 7월에 한산도대첩에 참전(전라우수영 휘하의 진도군수로 있던 중 전투에 참여)하여, 전라좌수사 이순신과 함께 왜적을 크게 무찔렀다. 1592년 12월 독산산성 전투에서는 전라병사로서 전라순찰사 권율과 함께 승첩을 올렸는데, 전투에서 크게 부상당하였다.

다음해인 1593년 2월에는 행주산성전투(행주대첩)에 부원수 자격으로 참가하여, 도원수 권율이 적을 대파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9월에는 함안에 주둔하고 있던 적군이 약탈을 일삼고 있었으므로 이를 공격하다가 부상을 당하였다. 그 뒤 충청병사에 올랐다.

이후 한산도에 내려와서는 이순신을 도와 둔전을 일으켜 군대의 식량을 비축하여 공을 세운 바도 있고, 1594년 9월에는 이순신과 함께 장문포(長門浦))에서 일본군을 맞아서 승전, 공을 세웠다(장문포 해전). 이어 충청수사가 되고, 다음해(1595년) 황해병사가 되었다.

(* 황해병사가 되어 떠나기 전 날, 이별의 술잔을 나누며 이순신이 지은 이별의 시가 난중일기에 전함)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남해·상주 등지에서 활약하였으며, 올라오는 일본군을 격퇴하여 주춤시켰다.

1598년 제2차 울산성 전투에서 2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양호(楊鎬)를 도와 싸우다가 울산에서 전사하였다.

임진왜란의 3대첩중 한산도 대첩과 행주 대첩에서 공을 세운 유일한 장수이다.

 

당시 영의정이었던 유성룡의 기록에도 나오는 바와 같이 "바다에서는 이순신, 육지에서는 선거이"이라 할만큼 이름이 높았다.

1605년 선무원종공신일등(宣武原從功臣一等)에 추봉되고, 보성 오충사(五忠祠), 고양 오충사(五忠祠), 행주서원(행주산성 내)에 제향되었다.

 

 

선거이(宣居怡)

생애 :  1550년 ~ 1598년

출생지 : 조선 전라도 보성군 사망지 : 조선 경상도 울산군 울산왜성

본관 : 보성 자 : 사신(思愼) 별명 호 : 친친재(親親齋)

복무 : 조선군  

최종 계급 : 황해도 병마절도사

근무 : 거제현령, 진도군수, 성주목사, 전라수사, 전라병사, 충청병사, 충청수사, 황해병사

지휘 : 조선군

주요 참전 : 녹둔도 전투, 임진왜란(독성산성 전투, 행주대첩, 장문포 해전), 정유재란(제2차 울산성 전투)

서훈 내역 : 선무원종공신 1등 추록 기타 이력 1570년(선조 3년) 무과 급제 

사당 : 전남 보성군 오충사(五忠祠), 고양 오충사, 행주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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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이와 헤어질 무렵의 난중일기 

 

9월 14일 [양력 10월 16일] <계미> 맑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우수사(이억기)․경상우수사(배설)가 같이 와서 이별하는 술잔을 들고서, 밤이 깊어서야 헤어졌다.

(충청)수사 선거이(宣居怡)와 작별하며 준 시는 이러하다.

 

북방에 갔을 때 함께 고생했고,

남쪽에 와서도 생사를 같이했네

오늘 밤 달빛 아래 나누는 술 한잔은

내일이면 헤어질 우리의 심정이로다

 

9월 15일 [양력 10월 17일] <갑신> 맑다. 수사 선거이(宣居怡)가 와서 아뢰고 돌아가는데, 또 이별의 잔을 들고나서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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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詩] 이순신(李舜臣)의 증별선수사거이(贈別宣水使居怡)

 

 

贈別宣水使居怡(수사 선거이를 떠나보내면서)

 

 

北去同勤苦 (북거동근고)  북방에 갔을 때에 같이 힘써 일했더니

南來共死生 (남래공생사)  남방에 와서도 생사를 함께하네

一杯今夜月 (일배금야월)  한잔 술 오늘 달빛 아래 나누고 나면

明日別離情 (명일별이정)​  내일은 이별의 슬픈 정만 남으리

 

 

[출처] [韓詩] 이순신(李舜臣)의 증별선수사거이(贈別宣水使居怡)|작성자 맑은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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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한시 贈別宣水使

 

지금까지 살펴 본 공의 한시의 세계는 ‘비분강개’ ‘우국충정’ ‘결사항전’등의 어휘가 핵심이 아닐까 한다. 이는 작품들이 생사를 넘나드는 피비린내 나는 전장터에서 만들어진 것들 이었기에,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전래되는 공의 한시 작품 중에서, 宣居怡(선거이)라는 분과 작별하면서 지은 아래의 송별시는, 인간의 따뜻한 정념(情念)을 진솔하게 표현한 것으로, 공의 작품으로는 드물게 보이는 시가 아닌 가 한다.

 

贈別宣水使(선거이 수사를 작별하며 드림)이라는 제목의 이 시는, 평소에 자신을 잘 이해하고 동료로 또는 부하 장수로 오랜 친분을 쌓아 온 선거이 수사에게 전하는 흐뭇한 작별의 시이다. 

1595년 9월 경에 충청수사로 재임하다 황해병사(黃海兵使)로 자리를 옮기는 선거이 수사에 대한 송별시로서, 작품의 시기를 구체적으로 파악해 볼 수 있는 시이다.

 

태평 성대를 만났다면 충무공께서도 이러한 다정 다감하고 우아한 시를 많이 남기셨을 터인데, 참으로 모질고 혹독한 시대를 만나 숨가쁘게 살다 가신 공에게는, 전쟁터의 칼바람과 피비린내 풍기는 작품이 대부분임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젊어서는 북쪽 국경에서 여진족을 막아 내는 일에 의기투합하였고, 국난기에는 수군통제사와 충청수사로 만나서 나라 지키는 일에 힘과 지혜를 모았던, 두분 사이의 돈독했던 우정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서, 인간미 물씬 풍겨나는 아래의 오언절구를 감상해 보자.

 

 

   題 : 贈別宣水使 (선수사를 송별하며 드림)

 

   北 去 同 勤 苦 (북거동근고)  북쪽 국경에서 함께 고생하였고

   南 來 共 死 生 (남래공사생)  남쪽 바닷가에서도 생사를 함께 하였네

   一 杯 今 夜 月 (일배금야월)  한잔 술 나누는 오늘 밤 달이

   明 日 別 離 情 (명일별리정)  내일은 서로 떠나는 이별의 정이 되겠구려

 

 <어휘풀이>

 

 * 北 去 : 함경도 변방에서 여진족을 막아내던 일을 상기, 당시 충무공은 조산보의 만호로 재임하였고, 선수사는 함경병사 이일(李鎰)군관이었다. 누명을 쓰고 충무공께서 첫 백의종군을 하실 때, 宣수사는 공을 적극 변호하고 진심으로 위로해 주었다고 한다.

 * 南 來 : 남쪽 바다에서 적과 싸우던 시절, 선수사는 충무공 휘하의 충청수사(忠淸水使)로 재임하면서, 두 분은 왜적을 물리치는 일에 서로 합심하였음. 선수사는 역시 명장으로 행주산성 대첩시에, 권율장군을 도와 공을 세웠고, 충청수사 재임시인 갑오년(1594년)에는 장문포 해전에서 충무공과 함께 부상을 당하기도 한 인물임

 * 別 離 : 작별, 병신년(1595년) 9월 경에, 선수사는 충청수사에서 황해병사로 그 자리를 옮기게 된다.

 

*** 이 부분은 도헌님의 문화사랑방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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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부원수 선거이 장군, 육군보병부대 "선거이 연대"로 명명

 

선재학

 

                 임진왜란 부원수 선거이 장군, ‘선거이 연대’ 명명식 통해 '부활'


2016.06.01 | 충청신문, 
[충청신문=대전] 선치영 기자 =



임진왜란 당시, 육지에서는 권율 장군, 해상에서는 이순신 장군과 함께 바다와 육지를 오가며 혁혁한 전공을 세운, 부원수 선거이(1550-1598) 장군이,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보병부대에서 ‘선거이 연대’로 명명식을 갖고, 현대 장병들에게 장군의 용맹함과 충절 의지를 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보병 모 사단 ‘권율부대’는 1일, 100여명의 ‘보성선 씨’ 종원들과 부대장병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선거이 연대’ 명명식을 가졌다.

권율부대는 행주대첩을 기리고 후대에 그 전과를 계승하기 위해 행주대첩 당시 부원수로서 혁혁한 공을 세운 ‘선거이 장군’을 선정해 연대 명칭을 ‘선거이 연대’라 칭하고, 정문 입구에 안내판 건립, 현관 입구에 장군의 생애와 업적, 유적지와 역사자료 등을 전시했다.

 

초대 ‘선거이 연대’를 맡게 된 연대장은 “선거이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부원수 겸 전라도병마절도사(참모총장 격)로서 도원수(합참의장 격)인 권율과 함께 ‘행주대첩’을 이루는데 공을 세웠고, 바다에서도 충무공 이순신과 함께 ‘한산도대첩’의 주역이 된, 육지와 바다를 오간 유일한 인물”이라며 “선거이 장군이 이끌던 1만4000여 전라병영 소속의 병사들이 행주대첩을 이루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임진왜란의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선거이 장군의 업적을 설명했다.

이어 “이처럼 훌륭한 전공을 세운 선거이 장군의 이름을 딴 연대를 이끌게 돼 너무 자랑스럽고 어깨가 무겁다”며 “선거이 장군의 업적을 계승할 수 있는 최상의 연대로 대한민국을 지키는 선봉에 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역사기록에 의하면 선거이 장군은 충무공 이순신과 "서로의 자질을 가장 높이 평가했고, 가장 절친한 전우“라고 나와 있다. 선거이는 이순신보다 5살이 어렸지만 계급상 7년이 높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해상의 최고사령관과 육상의 최고사령관을 나란히 맡았고, 두 사람 모두 임진왜란을 매듭짓는 최후의 전투와 마지막 해전에서 나란히 순국하고 만다.

 

특히 충무공 이순신은 수군통제영에서 함께 근무하다가 다른 임지로 떠나는 선거이를 아쉬워하며 ‘증 별 선수사 거이’ 라는 시를 난중일기에 남겨 마지막으로 헤어짐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선거이 장군은 ‘부원수 겸 7도 병마절도사’로 임명돼, 임진왜란 마지막 육상전투인 ‘울산성 전투’에서 2만여 병력을 이끌고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다. 장군을 두려워한 왜적들이 장군의 유해를 강탈해가는 바람에 시신을 찾지 못해, 장군이 태어난 전남 보성군 조성 지역에서 ‘초혼장’을 치르고, 가묘로 비석을 세워 후손들에게 아쉬움을 남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선거이 장군이 있었기 때문에 행주대첩이 가능했다“고 기록돼 있고, 예조에서 내려준 금석문(비석내용)에는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서는 선거이라고 불렸고, 그 공로가 충무공에 비견할 만 하다"라고 기록됐으나, 문신들의 견제로 ‘선무공신’에는 오르지 못하고, ‘선무원종 일등공신"에 추봉됐다.

광주시 광산구에 충신정려(솟을대문)가 있으며, 고양시 행주서원, 고양시 오충사, 보성군 오충사, 장흥군 포충사 에서 매년 제사를 지낸다.

 

고양시 덕양구 강매동 매화정마을에 '선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선호직 매화정종중 회장은 "고양시에서는 선거이 장군의 증조부인 우의정 선형 장군의 불천위제사가 매년 2차례씩 봉행되고 있으며, 행주서원에서도 선거이 장군의 제사를 모시고 있는데, 이번 명명식을 계기로 선거이 장군의 제사를 한층 더 격상시키는 방법을 고양시와 함께 고민해 보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고려말 선윤지를 시조로, 현재 인구가 4만여 명에 불과한 단일본인 ‘보성선씨’는,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모두가 한가족”이라며 애착을 보이는 선창규 대종중 회장은 “오늘 명명식을 통해 선거이 할아버지의 이름을 딴 부대가 생겨, 조상님의 업적이 재조명되는 계기가 돼 너무 자랑스럽다”며 “올해는 족보도 새로이 만들고, 좋은 일만 계속 생긴다. 앞으로도 선거이 장군의 위업을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겠다"고 자랑스러워했다.

 

■ 임진왜란 부원수 선거이 장군, ‘선거이 연대’ 명명식  2016.06.01 | MBS 

장군과 함께 바다와 육지를 오가며 혁혁한 전공을 세운 부원수 선거이(1550-1598) 장군이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보병부대에서 `선거이 연대`로 명명식을 갖고 현대 장병들에게 장군의 용맹...
http://www.mbstv.co.kr/news/articleView.html?idxno=96737

 

■ 임진왜란 부원수 선거이 장군, 육군 ‘선거이연대’로 재조명 2016.06.01 | 굿모닝충청 

임진왜란 당시 권율·이순신 장군과 함께 육지와 바다를 오가며 혁혁한 전공을 세운 부원수 선거이(1550-1598) 장군의 이름을 딴 육군 부대가 탄생했다.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보병사...
http://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40765

 

■ 선거이 장군, ‘권율부대’에서 ‘선거이 연대’ 명명식...행주대첩 주역 

2016.06.01 | 씨엔엔 (CNN) 21방송 
이순신 장군과 함께 바다와 육지를 오가며 혁혁한 전공을 세운 선거이(1550-1598) 장군이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보병부대에서 `선거이 연대`로 명명식을 갖고 현대 장병들에게 장군의 용맹...
http://www.cnn21.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992

 

■ 임진왜란 승리주역 선거이 장군, ‘선거이 연대’ 명명식 2016.06.01 | 전남인터넷신문 

이순신 장군과 함께 바다와 육지를 오가며 혁혁한 전공을 세운 선거이(1550-1598) 장군이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보병부대에서 ‘선거이 연대’로 명명식을 갖고 장병들에게 장군의 용맹함과 ...
http://jnnews.co.kr/news/view.php?idx=165316

 

'보성출신'  선거이 장군 이름 딴 연대탄생 |광남일보 2016년6월3일 금요일

 

임진왜란 부원수 선거이 장군, 육군 '선거이연대'로 재조명 |장흥신문 2016년6월10일 금요일

 

 

■ 행사 이모저모

■  선점숙(국선작가)님 선거이 장군 충절시 작품

선거이 연대  고양 오충사 참배 2016년6월16일

(선거이 부대 연대장외 100여명의 장병과 참배 후 기념 사진)

■ 2017년6월2일 선거이 부대 명명 1주년 기념 행사

선거이 장군 약력 http://cafe.daum.net/sun.jk/YEJu/163 바로가기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고전번역원소개 문집을 바탕으로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