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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뒤 자립 조건 무상임대” 원룸 6개 기꺼이 내준 기부천사

道雨 2021. 12. 30. 09:56

“3년 뒤 자립 조건 무상임대” 원룸 6개 기꺼이 내준 기부천사



 

고양 대화동 다가구주택 소유 김성란씨
저소득층에 4~6가구 3년간 무상임대
현금 지원에 이어 20년간 기부 실천

10년간 원룸 거쳐간 사람만 30여가구
“지하에서 지상으로 진출…보람 느껴
몰라서 기부 못하신 분들 함께해요”

 
* 지난 28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대화동 다가구주택 반지하 원룸에서 집주인 김성란(왼쪽)씨가 대화동 주민센터 통합사례관리사인 류은숙씨와 원룸 무상임대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3년 뒤
자립해서 나가는 조건으로 방을 무상임대 해드리는데, 목표가 생기니까 대부분 열심히 일해, 3년이 안 돼 집을 얻어 나가더군요.”
지난 28일 경기도 고양시 대화동에서 만난 김성란(59)씨는 자신의 3층 다가구주택 반지하 원룸으로 내려서며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비움이 희망인 집이다. 7평 원룸은 ‘재기’한 옛 주인을 보내고, 새 주인을 기다린다. “몸만 들어와도 될 정도”로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전자레인지, 가스레인지 등에 식탁, 침대까지 골고루 갖췄다. 큰 창으로 볕이 들어 지하란 느낌도 들지 않았다.

 

 

김씨가 무상임대를 시작한 건 다가구주택을 직접 지은 지 2년이 지난 2012년께다. 10년 넘게 후원단체를 통해 저소득층 20명에게 월 20만원씩 기부해왔는데, 그 후원단체에서 횡령 사건이 발생해 ‘직접’ 기부를 결심했다.
궁리해보니 당시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30만원을 받고 있던 반지하 원룸이 보였다. 그는 무작정 대화동 주민센터를 찾았다. 원룸 4개 기부 의사를 밝히고, 집이 필요한 어려운 가정을 선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렇게 시작한 임대 ‘선행’은 원룸 4개에서 6개로 늘어났다. 건물 안 임대 가구 중 절반이 넘는다. 무상임대지만 완전 공짜는 아니다. 2년 전부터는 세입자가 전기·가스 요금은 내도록 했다. “모두 공짜면 책임감이 없어진다”는 주민센터 쪽 의견을 받아들였다.
세입자가 살아갈 힘을 추슬러 전세보증금 등 종잣돈이 모였다고 알리면 그때는 주민센터가 나선다. 세입자는 주민센터의 소개를 받아, 김씨네 무상임대에서 저소득층 전세임대주택으로 갈아타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 경기도 고양시 주민 김성란씨가 무상으로 제공한 고양시 대화동 다가구주택 반지하 원룸에 전자제품과 가구들이 구비되어 있다.
 
김씨의 원룸을 거쳐 간 가구는 주민센터가 집계를 시작한 2017년 이후 13가구를 포함해, 10년간 어림잡아 30가구가 넘는다. 대부분 한부모가정, 홀몸노인, 사업에 실패해 신용이 어려워진 사람 등 그 순간의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이었다.
김씨는 입주 때 ‘3년 안에 집을 얻어 나간다’는 조건으로 계약서를 작성하는데, 3년이란 시한이 오히려 세입자들의 자립 의지를 북돋는 구실을 한다고 말했다.
 
깔끔한 방 구석구석에 사연의 더께가 쌓여 있다. 살림이 어려워져 엄마는 찜질방에, 두 딸은 친구 집에 각각 흩어져 살던 가족이 다시 모였고, 월세를 살다 체납돼 도시가스가 끊기고 쫓겨날 처지에 내몰린 한부모가정이 몸을 녹였다. 김씨는 “아기엄마에게 더 있으라고 했는데 자기만 너무 혜택을 받으면 미안하다며 2년도 안 돼 나갔다”고 전했다.
 
김씨가 20년 기부를 멈추지 않은 것은 빈손으로 결혼한 자신의 경험 덕분이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네 아이를 키우면서 무역업체 대표로 자수성가하기까지 녹록지 않은 삶이었다. 거기에 싱가포르에 유학 중이던 중학생 딸의 영향도 컸다.
 
“집에 아프리카 아이들 얼굴이 실린 우편물이 자주 와서 딸에게 물어보니, 용돈을 쪼개 국제구호단체에 기부하고 있다며, 엄마도 참여해보라고 하더군요. 딸이 기부에 눈을 뜨게 해준 선생이죠.”
영국에서 건축을 전공한 딸은 취업한 뒤에도 꾸준히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씨의 베풂은 대화동 마을로 확산됐다. 대화동 통합사례관리사 류은숙(56)씨는 “대화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서 김씨 사례를 소개했더니, 마을 공방과 카페 운영자 15명이 ‘우리도 해보자’고 의기투합해, 공방에서 작품을 내놓고 카페에서 공간을 제공해 바자회를 열었다. 100만원을 목표로 했는데 모두 500만원이 모였다”고 전했다.
 
주민센터에서 연말 소득공제나 언론 인터뷰 알선 등을 제안할 때마다 김씨는 극구 사양해왔다. <한겨레> 창간독자라며 “기부를 하고 싶어도 방법을 몰라 못 하는 분들을 위해 이번 인터뷰에 응했다”며, 얼굴을 알리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었다.
“코로나로 모두들 힘든데 이럴 때일수록 많이 가진 사람이 앞장서 나누면 좋겠습니다. 반지하에서 종잣돈을 만들어 방 2개짜리 지상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낍니다. 이 집을 팔기 전까지는 비빌 언덕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고양/글·사진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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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area/capital/1025324.html?_fr=mt1#csidx04a5b2a787ab86eb66616003dd4154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