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판사는 전지전능한가

道雨 2022. 1. 11. 10:17

판사는 전지전능한가

 

 
서울행정법원 제8부(재판장 이종환)의 지난 4일 학원과 독서실 등에 대한 방역패스 집행 정지 결정을 보면서, 오래전부터 품어왔던 의문이 새삼 떠올랐다.
판사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판단을 내려도 되는가? 그럴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잘못된 판단으로 돌이키기 힘든 피해가 발생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헌법상 기본권은 존중되어야 하나, 동시에 공공복리를 위해 제약될 수 있다. 관건은 공공복리를 위해 기본권을 어느 수준까지 제약할 수 있느냐이다.

 

 

 

재판부는 “학원·독서실 등에 대한 이용마저 제한해 그들의(청소년) 학습권과 직업의 자유 등을 직접 제한하는 중대한 불이익을 가하는 것이 정당화될 정도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가 제시한 근거가 되레 객관적이지 못하고 합리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좀더 솔직히 말하면 빈약하고 부실하다.

 

 

 

재판부는 “최근 코로나 확산세가 커지던 시점인 2021년 12월 2주차(12월5~11일)에 12세 이상 백신 접종자 집단의 코로나 감염 위험이 약 57% 적다는 국내 통계 자료가 있지만, 이는 미접종자 집단이 접종자 집단에 비해 코로나에 감염될 확률이 약 2.3배 크다는 정도여서 그 차이가 현저하다고 볼 수는 없고, 미접종자 중 감염자 비율은 0.0015%(1000명 중 1.5명), 접종자 중 감염자 비율은 0.0007%(1000명 중 0.7명) 정도로 감염 비율 자체가 매우 낮다”고 밝혔다.
 
무슨 근거로 ‘2.3배 차이’를 “현저하다고 볼 수 없다”고 단정했는지 재판부에 묻지 않을 수 없다. 미접종자가 100명 정도 감염될 때 접종 완료자는 40명가량 감염되고 있는 것인데, 이 차이가 작다는 말인가? 혹시 코로나를 일반 감기쯤으로 여기고 있는 건 아닌가?
게다가 법원은 0.15%를 0.0015%, 0.07%를 0.0007%라고 잘못 계산하면서 “감염 비율 자체가 매우 낮다”고 했다. 어이가 없다.
 
더욱이 재판부는 확진율보다 더 중요한 지표인 중증화율이나 치명률은 아예 언급조차 않았다. 재판부가 인용한 기간 중 접종 완료자와 비교해 미접종자의 중증화율은 5배, 치명률은 4배나 더 높았다. 기간을 늘려 지난해 4월부터 12월 2주차까지 살펴보면, 미접종자의 중증화율과 치명률이 각각 11배와 9배로 치솟는다. 백신 접종이 감염은 물론 중증화와 사망의 위험을 크게 낮추고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재판부는 또 백신 접종자의 ‘돌파 감염’도 근거로 들었다. 자칫 ‘백신 무용론’으로 들릴 수 있는 무책임한 얘기다. ‘델타 변이’가 우세종이 되기 전까지 백신 접종의 예방력은 80~90%에 이르렀으나, 델타 변이가 우세종이 되면서 60~65%로 낮아졌다. 하지만 백신 접종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면, 델타 변이 확산 앞에서 지금 훨씬 더 참혹한 사태에 직면했을 것이다.
 
재판부는 ‘오미크론 변이’는 아예 간과해버렸다. 전문가들은 1월 말 이후 오미크론 변이의 급격한 확산이 예상되며, 지금 방역 조처를 완화하면 3월엔 하루 평균 신규 확진자 수가 2만명, 중환자 수는 2천명이 넘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백신 접종률을 높이고 치료제를 충분히 확보하고 의료 체계를 정비하지 않으면, 방역패스보다 더 고통스러운 거리두기 강화가 불가피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에 논란이 된 학원이 집합금지 대상에 포함되고 독서실과 스터디카페 영업시간을 밤 9시로 제한했던 게 불과 1년 전 일이다.
 
재판부는 이처럼 중대한 결정을 하면서,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별도로 듣지 않았다고 한다.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국내 전문가들을 믿지 않는다는 얘기인가?
그렇다면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기구와 전문가들이 지금으로선 백신 접종이 가장 최적의 감염 예방 수단이라고 한결같이 강조하는 건 어떻게 보는가? 그런 상황이 방역패스보다 기본권을 더 잘 보장해준다고 보는가?

 

* 고3 유튜버 양대림씨와 대리인 채명성 변호사가 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방역패스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판부의 이번 결정 이후 이른바 ‘백신 반대론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도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7일 서울행정법원 제4부에서 학원과 독서실 등 교육시설뿐 아니라 식당, 카페, 마트, 피시방, 영화관, 운동경기장 등, 대부분의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방역패스 집행정지 신청 관련 심문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신청인들은 “지하철은 방역패스를 적용하지 않으면서 대형마트는 왜 하느냐“ “정부가 임상시험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백신 접종을 사실상 강요해 중증 환자와 사망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등, 상식 밖의 주장을 쏟아냈다.
 
물론 정부가 방역패스 혼선을 자초한 책임이 있다. 방역패스 확대에 앞서 소통과 설득의 노력을 다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또 이상반응이나 면역 결핍 등 불가피한 백신 접종 예외 사유를 적극적으로 인정해주고 있는지 다시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형평성 논란’을 피하려고 행정 편의주의적으로 방역패스를 일률적으로 적용한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이용 시간 동안 계속 마스크를 쓰고 있는 학원·독서실 등과 마스크를 벗어야 하는 식당·카페 등은 조건이 다르다.
하지만 이는 시행하면서 보완·개선해야 할 사안이지, 방역패스의 효력 자체를 무력화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팬데믹 시대에 공공복리는 무엇인가? 우리 앞에 지금 코로나 사태를 진정시키고 일상 회복을 앞당기는 것 이상의 공공복리가 있는가?
지난 2년 동안 자영업자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고, 아이들은 학교를 제대로 가지 못했고, 의료진과 방역요원들의 희생은 끝이 없고, 국민들은 일상생활의 불편을 감수해야 했고, 정부는 천문학적 규모의 재정을 투입했다. 이 모든 게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방역패스 집행 정지 결정 이후 법원이 방역 정책의 ‘최종 심판관’이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법원이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판사라고 해서 모든 걸 다 알 수 없다.
그래도 판결을 해야 한다면, 전문가들의 의견을 최대한 경청하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국민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중차대한 문제다.
 
 
안재승 |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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