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관종의 횃불

道雨 2022. 1. 11. 10:28

관종의 횃불

 

                                * 최근 ‘멸공 논란’을 빚고 있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인스타그램 갈무리.
 

 

 

관심을 가져주면 안 되는 대상이 있다. 이제는 사회문화적 연구 대상이 된 관심종자, 줄여서 관종이 분명할 때다.

어그로 끄는 것이 뻔한데 관종이라 비웃으면 당사자는 오히려 좋아한다. 그게 바로 좌와 우, 진영을 가리지 않고 창궐하는 관종이라는 종의 특징이다.

관종은 외부 시선을 먹고 산다. 관종 행태에 ‘좋아요’를 눌러주는 이들뿐만이 아니다. 관종은 자신의 언행을 두고 부들부들 떠는 사람들로부터도 만족을 얻는다. 너희들이 나를 어쩔 건데라는 심리가 깔렸다.

정치적 지분이 아닌, 돈을 특권과 자랑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관종이 될 때 특히 그러하다. 이러면 정말 약이 없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그간 행태를 상식 있는 사람들이 무시한 이유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재벌 3세의 관종 행태에 ‘묻고 더블로 가’ 외치기 전까지는.

 

세습으로 취업하는 재벌 3세가 관종을 ‘부캐’에서 ‘본캐’로 삼았다. 짜증은 시민과 주주 몫, 뒤치다꺼리는 신세계 직원 몫이다.

“난 콩 상당히 싫다” “콩콩콩콩 콩콩콩”.

멸공의 횃불을 높이 든 1968년생 재벌 3세 부회장이 이런 유치한 글을 인스타그램에 쓰고 있다. 세계 8대 무역국이 된 한국 재계가 다 같이 부끄러워해야 할 수준이다.

 

기업 가치를 총수 이익과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제지 등은, 지난해 상반기부터 그의 이런 관종 행태를 그럴듯하게 포장해왔다. ‘마케팅을 위한 철저히 계산된 행보’라는 평가는 그나마 회계장부 테두리 안에 있었다.

장난처럼 보였던 “공산당이 싫어요” 발언이 표현을 바꿔가며 거듭된 뒤로는, 짐짓 한국 최대 수출국인 중국 리스크를 언급하기도 했다. 대신 ‘재벌 총수의 이례적 정치적 발언’ ‘과감한 소신 발언’이라며 추켜세우는 것을 잊지 않았다.

과거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정치 4류, 행정 3류, 기업능력 2류’ 발언과 “콩콩콩”을 슬그머니 견주기도 했다.

 

언론의 질소충전식 과대포장이 더해지니 떨어지는 지지율에 멸치 허리나 콩깍지라도 잡고 싶은 윤석열 후보가 이마트에서 멸치와 콩을 덥석 집은 것도 무리가 아니다. 개+사과도 했는데 멸치+콩이 대수겠는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멸공 구호를 옹호하는 발언이 마지막으로 나온 것은 1988년 1월이었다.

“그간 공공건물에는 승공, 반공, 멸공 등 구호가 많이 나붙어 있었다. 그런데 현재 이러한 구호마저 우리 사회에서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마저도 전두환 정권 말기 민정당 의원이 내지르는 단말마에 불과했다. 불과 1년 뒤 본회의장에선 “시대착오적 멸공통일론을 고창하는 극우단체들이 준동하는 현실”을 질타하는 대정부 질문이 나왔다.

 

관종을 자처한 정용진 부회장이야 그렇다 치자. 정권교체에 모든 것을 걸었다는 제1 야당 대선 해시태그가, 면책특권 넘쳐나는 여의도에서도 34년 전 자취를 감춘 멸공 구호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노태우·김영삼 정부 때도 안 하던 짓을 지금 2022년 국민의힘이 하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후보를 따라 너도나도 멸공 캠페인에 나선다. 공공건물은 어쩔 도리가 없으니, 에스엔에스(SNS)라도 멸공 구호로 도배할 기세다. 정 아쉬우면 정권탈환 목표로 16년 만에 사들였다는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전면에 케이(K)-멸공을 내걸지 못할 이유도 없어 보인다.

 

2006년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자기 자식 군대 빼돌린 사람들이 국가안보를 외치고 멸공을 부르짖으며, 독재세력에 빌붙었던 무리들이 민주와 자유를 입에 달고 살아도 그리 신경 쓸 필요 없다. 그저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자극적인 언사만 부각되면 그만일 뿐이다. … 과거도 묻지 말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도 묻지 말고, 그리고 왜 집권해야만 하는지도 묻지 말고….”

 

정용진 부회장은 몸무게 1㎏을 초과한 고도비만으로, 윤석열 후보는 눈이 나빠 군 면제가 됐다. 면제 뒤 몸무게는 줄었다. 면제 덕에 사시 공부를 오래오래 할 수 있었다. 누구나 살은 찔 수 있고 눈은 나쁠 수 있다.

군가 ‘멸공의 횃불’은 유튜브에 있다. 1절 육군, 2절 해군, 3절 공군이다. 따라 부르면 입으로만 하는 멸공이 가능하다.

 

 

김남일ㅣ사회부장

namfic@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26693.html#csidxfac4be26c49b11fbb14576f1829ed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