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되었지만

道雨 2022. 1. 25. 10:35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되었지만

 

*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지난해 7월 2일(현지시각)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했다. 이태호 주제네바 한국 대표부 대사가 제68차 유엔무역개발회의 무역개발이사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작년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1964년 이후 처음으로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했다. 60년 전 아프리카 국가들보다 가난하던 한국이, 이제 서구의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2020년 경제규모로 볼 때 세계 10위가 되었고, 선진국 클럽인 주요 7개국(G7) 회의에도 초청되었다. 이제 구매력평가 기준의 1인당 국민소득은 프랑스 등의 유럽 국가들이나 일본보다 높아졌고, 시장환율에 기초해도 몇년 안에 더 높아질 전망이다.

세계의 수많은 개발도상국 중 선진국을 따라잡은 국가는 극히 드물어서, 외국에서 아시아와 아프리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필자로서는 매우 뿌듯한 일이다.

 

그러나 최근 한국 소식을 보면, 선진국의 영광 뒤에 가려진 어두움이 여전히 크게 보인다. 얼마 전 광주의 아파트 공사장에서는 아파트 외벽이 붕괴하여, 하청업체 노동자 1명이 사망했고 5명이 실종 상태다. 포스코의 포항제철소에서도 30대 하청노동자가 중장비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2020년에도 하루 평균 2.4명의 노동자가 작업장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2017년 전체 노동자 대비 산재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 중에서 3위이며, 특히 건설산업에서의 사망률은 노동자 10만명당 25.5명으로, 오이시디 평균(8.3명)보다 훨씬 높아서 최고를 기록했다.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보면 한국은 경제성장률과 생산성 그리고 임금상승률이 매우 높으며, 코로나19에 대한 방역도 가장 훌륭한 수준이다.

그러나 가처분소득의 격차와 상대적 빈곤율은 가장 높은 축에 속하며, 노인들의 자살률은 최고로 높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국내총생산 대비 사회복지지출 비율은 빠르게 증가해왔지만, 2019년 현재 약 12%로서 오이시디 평균(약 20%)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탄소배출 증가율은 선진국 중 가장 높고, 감축 노력도 부족해서 기후악당국가로 불린다.

 

한국인들은 분명 과거보다 훨씬 더 잘살게 되었지만, 과연 더 행복해졌고 한국 사회도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었을까?

작년 11월 발표된 퓨리서치센터의 설문조사는,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요인들에 관해 17개 선진국 시민들에게 질문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가족이 1위였고, 평균적으로 가족, 직업, 물질적 행복 순이었다. 그러나 한국인들만이 유일하게 물질적 행복을 1위로 뽑았다. 물론 다른 나라들에서도 물질적 행복이 중요하긴 했지만 그들은 다른 요인이 더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이 조사는 주관식의 열린 질문인데, 유독 한국인들은 한 가지 요인만 대답한 이들이 많았다는 점에서, 해석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볼 때 한국인들이 특별히 물질적인 요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런 결과는 아마도 치열한 경쟁과 각자도생 속에서 삶의 불안이 큰 우리의 현실과 관련이 클 것이다.

한국은 급속한 경제적 성취를 이루었지만, 기득권이 강고하고, 사회적 신뢰와 연대 그리고 안전망은 부족하며, 상위 10%의 성 안과 밖의 사람들 사이에 격차가 큰 사회다.

결국 안정적인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의 정규직 직원이 아닌 많은 이들은 끊임없이 불안에 시달리고, 그들의 아이들은 출발선에서부터 뒤처지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이는 집단자살 사회라고까지 이야기되는, 극단적으로 낮은 출산율로 이어진다. 운좋게 태어난 한국의 어린이와 청소년들도 다른 선진국과 비교할 때 행복도가 많이 낮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

 

얼마 전 여당 대선 후보는 국민소득 5만달러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지속적인 경제성장도 중요하겠지만, 이미 선진국이 된 한국에서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우리 사회에서 모자라는 부분을 채우는 일일 것이다.

필자를 포함하여 많은 이들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심각한 불평등과 인구문제 그리고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과 같은 커다란 이야기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또한 기득권의 해체와 공정한 경쟁을 위한 노력이나 기술과 노동의 변화에 대응하는 정책에 관해서도 듣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여야 후보들의 선거운동과 공약들을 보면 실망이 작지 않다.

 

가끔 나의 학생들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한 한국을 부러워하며, 현재 한국의 상황에 대해 물어보곤 한다.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한 선진국을 만들기 위해 한국인들은 지금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대답해줄 수 있다면 좋겠다.

 

 

이강국 |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