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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안보는 함부로 흔들면 안 된다

道雨 2022. 5. 10. 10:34

외교·안보는 함부로 흔들면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 임기가 10일 시작됐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앞으로 5년 동안 대한민국 대통령은 윤석열이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누가 대통령이든 경제 성적표는 비슷했다. 경제 규모는 커졌지만, 잠재성장률은 떨어졌다. 비정규직이 갈수록 늘었고, 양극화는 점점 심해졌다.

경제는 민간 영역이 크다. 경제의 주체는 노동자와 사용자다. 국민과 기업이다. 정부의 역할은 지원과 감시다. 한계가 있다. 외환위기를 초래한 김영삼 대통령처럼 대형 사고만 치지 않으면 누가 대통령을 해도 나라가 당장 망하거나 흥하지 않는다.

 

외교·안보 성적표는 달랐다. 점수 차가 크다.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은 잘했고,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은 못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북방정책을 했고,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했다. 이 시기에 한반도 상공에는 전쟁의 먹구름이 걷히고 평화의 기운이 감돌았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때는 남북관계가 얼어붙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 취임 초기에는 전쟁이 날 뻔했다.

 

외교·안보 성적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대통령들의 안목과 역량 차이 때문이다. 외교·안보는 경제와 달리 민간 영역이 거의 없다. 거의 100% 정부가 주도한다. 대통령이 판단을 잘못하면 나라와 국민이 위험에 빠진다.

국제 정세와 운도 많이 작용한다.

김영삼 대통령은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1994년 7월25일 남북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했다. 북한 핵무기 개발 포기와 전쟁 불가를 다짐받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회담을 보름 앞두고 김일성 주석이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그 뒤 남북관계는 크게 악화했다. 1994년 남북정상회담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한반도 평화가 앞당겨졌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7월11일 국회 개원 연설에서 “과거 남북 간에 합의된 7·4 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비핵화 공동선언, 6·15 공동선언, 10·4 정상선언의 이행 방안에 대해 북한과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선언했다. 하필 이날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군에 의해 피격되는 사고가 터졌다. 그 뒤 남북관계는 꽁꽁 얼어붙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비핵·개방 3000’은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해야 우리가 지원을 시작한다”는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 ‘비핵·개방 3000’은 북한의 핵 포기 시작부터 단계별로 북한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실용주의 정책이었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만 없었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상당히 많이 진전시켰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안보는 어떨까?

대선 후보 공약집에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실현’, ‘남북관계 정상화와 공동번영 추진’, ‘국민 합의에 기초한 통일 방안 추진’ 등이 있다. 그런 목표를 어떻게 달성하겠다는 것인지 방법론은 잘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굴종적인 자세로 남북관계를 비정상적으로 만들고 국민의 자존심을 훼손”, “문재인 정부가 군사합의서, 종전선언 등을 국민적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국민 분열을 야기”, “북한 눈치 보기로 한-미 연합 방위 태세 약화 초래”라는 표현도 있다. 아무래도 문재인 정부와 반대로 가려는 것 같다. 걱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외교·안보 문외한이다. 대학에 입학할 때 부친이 선물한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를 감명 깊게 읽었다고 한다. 대학교 1학년 때는 박우희 교수의 경제학개론에서 에이 플러스를 받았다고 술만 마시면 자랑을 했다고 한다. 검찰에서 경제 수사를 많이 했기 때문에 경제의 기본 흐름에 대해 일정한 식견이 있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외교·안보는 윤석열 대통령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검찰의 수사 분야도 아니었다. 역사책을 좋아해서 사법시험 공부를 할 때도 많이 읽었다고 하지만, 그 정도로 외교·안보 지식이 쌓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큰 걱정이다.

대한민국의 외교·안보 정책은 사실 하나밖에 없다. 한반도 긴장 완화를 통한 북한 비핵화와 단계적 평화 통일, 그리고 한-미 동맹을 기본 축으로 하는 균형 외교다. 그게 전부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를 ‘종북 좌파’, ‘반미 친중’으로 몰아붙이는 이른바 보수의 주장은, 분단 기득권 세력의 선거용 책략에 불과하다. 옳지도 않고 사실도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런 꼬임에 넘어가면 절대로 안 된다. 아무리 다급해도 색깔론은 안 된다.

 

외교·안보에는 보수도 진보도, 여당도 야당도 없다. 그게 진실이다.

 

 

성한용 |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