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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사 한동훈' 만들어 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道雨 2022. 6. 22. 09:50

'해결사 한동훈' 만들어 준 문재인 정부

[取중眞담] 11년 만에 풀린 인혁당 피해자 배상금 이자 문제와 지연된 정치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이창복씨(자료사진).

 

2014년 4월 8일, 경기도 양평군 자택에서 만난 이창복씨는 조곤조곤한 말투로 담담하게 과거를 회고했다. 하지만 '1974년 상황을 설명해달라'는 요청에는 잠시 머뭇거렸다. 옛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의 고문에 못 이겨 거짓자백을 했다가 검사에게 기존 진술을 번복했을 때, 검사가 눈빛을 주자 중정 요원이 다시 자신을 지하실로 데려가던 순간을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 같았다"고 비유했다. 그는 '최악의 사법살인'으로 꼽히는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 피해자다.

몇 십년 뒤, 국가는 그에게 또 잔인한 결정을 내렸다. 2011년 1월 대법원은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이 제기한 국가배상금 청구소송에서 이자가 너무 많다며 기준일을 약 30년씩 뒤로 미뤘다. 명확한 계산근거도 없이. 곧바로 국가는 '대법원 판결 전 지급됐던 배상금 일부를 반환하라'며 빚쟁이로 돌변했고, 이창복씨에게도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장이 날아왔다. 8년 전 인터뷰에서 이씨는 "세상에 이렇게 가혹하게 할 수 있는가"라고 한탄했다. 박근혜 정부는 침묵했다.



국가폭력 피해자의 한탄에도… 미적대던 문재인 정부

문재인 정부는 어땠을까. 2017년 3월, 국가는 이창복씨가 초과이익금 약 5억 원(이후 지연이자가 붙어 약 15억 원으로 증가)을 제대로 반환하지 않고 있다며, 그의 자택을 대상으로 강제경매집행을 신청했다. 문 대통령 취임 후 정부는 일단 경매 집행을 뒤로 미뤘으나, 소송을 포기하진 않았다. 이씨는 2019년 강제경매집행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1심에서 패소했다. '원고 대한민국'은 항소심 재판부의 화해권고도 거부했다.

2017년 12월 7일 법무부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공권력을 이용한 국가의 반인권적 범죄는 민주국가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 범죄"라며, 정부는 피해자들의 국가배상금 청구소송에서 소멸시효를 주장하지 말아야 하고, 소멸시효 문제로 가지급된 배상금을 반환해야 하는 피해자들에게 배상금 반환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2019년 3월 국가인권위원회도 대통령에게 피해자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효과적인 구제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2020년 7월 27일 국회 정보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사안을 거론하며 "국정원에서 어떻게 해결책을 내야되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박지원 당시 국정원장 후보자는 "취임하면 반드시 정의롭게 (해결)하겠다"고 답변했다. 그는 2013년 10월 14일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사법부의 이상한 이자 계산법을 질타했던 국회 법사위원 중 한 명이었다. 

몇 달 뒤, 김경협 의원은 국가폭력 피해자 관련 국가채무를 감면할 수 있는 국가채권관리법 개정안도 대표발의했다. 그해 10월 11일 의원실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사법부에서 판단한 것(초과이익금 환수)을 정부 스스로 포기하면 배임 문제가 걸린다"며 "향후에도 유사한 상황이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아예 법을 개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법안은 여전히 상임위 서랍장 어딘가에 잠들어 있다.
 

 
그런데 2022년 6월 20일, 법무부는 누구도 예상 못한 발표를 내놨다. 이창복씨 관련 소송 항소심 재판부가 5월 4일 낸 화해권고를 받아들여, 이씨가 초과이익금 원금만 분할납부하면 지연이자 약 9억 6000만 원을 면제한다는 내용이었다.

'소송을 취하하면 배임죄가 성립할 수 있다'던 이전 정부의 논리는 "국가채권관리법상 채무자의 고의 또는 중과실 없는 부당이득반환의 경우 원금 상당액을 변제하면 지연손해금을 면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법무부 논리로 뒤집혔다. "소송수행청인 국정원은 '과거 정부가 해결하지 못한 이번 사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하여 화해권고안 수용입장'을 적극 개진했다"는 부연설명은 문재인 정부를 또 한 번 궁색하게 만들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날 오후 법무부 청사를 나서는 길에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주고받으며 여기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그는 "정부에서 꼭 화해권고를 수용하지 않는다고 잘못이라고 보긴 어렵다. 어차피 양쪽의 논리가 있다"라며 "저는 책임 있는 당국자가 책임 있는 판단을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책임 있는 당국자의 책임 있는 판단. 문재인 정부도 나름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뭉개버린 '정치적 해결'을 선택했다는 의미였다.



100점은 아니지만… "한동훈의 정치"로 남아버렸다

물론 법무부 결정 역시 100점짜리는 아니다. 그럼에도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라는 금태섭 전 의원의 의견에는 일리가 있다. 국회의원 시절 이 사안의 공론화를 위해 노력했던 그는, 21일 페이스북에 "정치적인 해결에 대해서는 배임죄가 된다며 들으려고 하지 않았던 당시 청와대. 지금 생각해도 화가 치민다"며 "민주당 내에서 거의 호응이 없었다. 그때 느끼던 무력감과 피해자들에 대한 죄송함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 

오랫동안 인혁당 피해자들을 조력해온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이번 일을 "한동훈의 정치"라고 평가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국정원장마다, 법무부 장관마다, 또 청와대 민정수석실 등등 계속 의사를 타진해왔지만 '배임'만 읊조리고, '실무자들이 반대한다'는 논리만 반복했다. 계속 법리만… 사실 정치를 하라고, 정무적 판단을 하고 책임을 지라고 권력을 준 것 아닌가"라며 "그걸 보면서 참담했는데, 어제 발표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착잡했다"고 말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듯, 지연된 정치 역시 정치가 아니다. 문재인의 정치가, 박상기와 조국·추미애·박범계의 정치가 부재했던 자리에는 윤석열의 정치, 한동훈의 정치가 비집고 들어섰다.

 

박소희(sost)

 

[관련 기사]
[2013년 10월 14일] "인혁당 사건, 대법원 판결로 30년치 이자 날아가" http://omn.kr/4ne2
[2014년 4월 8일] 이창복 "대법원은 인혁당 피해자들 두 번 죽였다" http://omn.kr/7qme
[2014년 4월 9일] 대법원이 30년 치 이자를 날린 기준, 아무도 모른다 http://omn.kr/7qqh
[2019년 3월 6일] 인권위 "빚더미 오른 인혁당 피해자, 대통령이 나서라" http://omn.kr/1hpjq
[2020년 10월 11일] '국가배상금 도로 뺏는 대한민국' 막는 법안 나왔다 http://omn.kr/1pkg2
[2022년 6월 20일] 법무부, 지연이자 납부 면제 결정 http://omn.kr/1zga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