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김건희, 측근) 관련

‘살권수’ 아닌 ‘싫권수’…드러나는 검찰본색

道雨 2022. 7. 6. 09:12

‘살권수’ 아닌 ‘싫권수’…드러나는 검찰본색

 

 

독일에서는 검찰을 ‘가장 객관적인 관청’이라고 한다. 영예로운 칭호다. 범죄를 다루지만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고 피의자에게 유리한 증거에도 주목하는 등 객관적 판단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검사를 ‘공익의 대표자’로 규정한 우리 검찰청법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불편부당성은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하는 주된 근거가 된다.

 

그러나 우리 현실에선 허황된 신화에 가까운 이야기다.

검찰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에서 보듯 범인 조작을 걸러내지 못했고, 오히려 그 피해자를 ‘보복 기소’하기까지 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해 별장 성접대 사건을 무혐의 처분했고, 오히려 그 수사 협조자를 ‘별건 수사’로 기소하는가 하면, 김 전 차관의 해외 도주를 막은 이들을 대대적으로 수사했다. 검사가 선거에 개입하기 위해 특정 정당에 고발장을 보내 고발을 사주한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이처럼 검찰의 무능(한 척)과 악의가 뒤엉켜 객관적 정의를 외면한 사례는 무수하다. 검찰이 지고의 가치로 여기는 건 객관성이나 실체적 진실이나 정의 따위가 아니라 검찰 자신이었다. 자신이 복무해야 할 원칙보다 자신을 위에 두는 이런 태도는 ‘검찰지상주의’라고 부를 만하다.

그럼에도 근래 검찰이 목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살아 있는 권력 수사’(살권수)라는 선명한 슬로건 덕분이었다. ‘권력의 시녀’로 비판받던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에 맞서는 모습은 여론의 호의를 끌어낼 수 있었다. 객관성 잃은 과잉 수사나 정치적 수사라는 비판은 제한적인 효력만 가졌다. 이런 상황이 ‘윤석열 검찰’에 눈부신 조명을 쏘아주었고, ‘윤석열 대통령’을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 자산이 됐다.

그런데 정권을 잡은 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그동안 검찰을 지탱했던 마지막 명분조차 헌신짝처럼 걷어찼다. 새로운 ‘살아 있는 권력’의 직계 부하들로 검찰 요직을 빼곡히 채웠다. ‘살권수’가 애초에 불가능한 조건을 만든 것이다. 게다가 검찰의 객관성을 해친 검사들(간첩조작, 보복 기소, 김학의 전 차관 무혐의, 고발 사주 등 연루 검사)도 중용됐다. 객관성이나 실체적 진실이나 정의 따위가 아니라 ‘윤석열과 검찰 조직’이 지고의 가치임을 공식 선포하는 듯하다.

검찰 집단의 내면은 살아 있는 권력과 맞서는 비장한 정의감이 아니었음이 분명해졌다. ‘살권수’를 명분으로 한 검찰 독립성 요구, 이를 위한 집단적 저항과 온갖 레토릭도 다 허구였음이 드러났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 허수아비 검찰총장조차 없이 대통령 측근 법무부 장관이 그 측근들로 채운 노골적인 ‘친정부 코드 인사’에 아무런 반발도 없는 검찰 집단의 모습을 설명할 길이 없다. 지난 정부에서는 법무부 장관의 몇가지 ‘통제’조차 격렬히 거부하던 검사들이, 지금은 법무부 장관의 완전한 ‘장악’에도 애완동물처럼 다소곳하다.

이 모든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열쇠는 역시 검찰지상주의다. 검찰총장이 대통령 선거에 직행해도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훼손되지 않는다고 여기고, 그가 집권해 정부 곳곳에 검찰 출신 측근들을 포진시켜도 비정상이 아니라고 여기고, 검찰 조직까지 현직 대통령의 직계 수하들로 채워도 독립성이 침해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은, 검찰지상주의 말고는 불가능한 사고방식이다.

그러니 ‘살권수’는 이 검찰지상주의가 임시로 썼던 가면에 불과했다는 결론을 피해갈 수 없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였든, 검찰개혁을 추진하는 정권에 대한 응징 차원이었든, 검찰의 이해관계를 동력 삼은 수사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권력 수사’가 아니라 ‘싫어하는 권력 수사’(싫권수)라는 이름이 더 실질에 부합한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부지런히 대오를 갖춰 ‘과거의 살아 있던 권력’을 겨냥한 수사의 고삐를 죄는 모습에서, 검찰 선배인 ‘현재의 살아 있는 권력’과 관련된 수사는 유야무야 묻히고 있는 모습에서 가면은 다시 한번 벗겨진다.

이처럼 어느 정권에서는 ‘싫권수’에 달려들고, 다른 정권에서는 권력의 맞춤한 칼이 되는 검찰은, 헌법도, 법률도, 주권자 국민도 허락한 적이 없는 관청이다. 지금 한국 검찰은 객관성, 독립성, 정치적 중립 등 현대 검찰 제도의 핵심 원리들을 방기한 ‘유사 검찰’로 흐르고 있다. 수사권 조정이나 수사·기소 분리를 넘어, 검찰 제도 자체를 재설계할 근본적 개혁의 상상력이 필요한 단계에 이르렀다.

 

 

박용현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