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김건희, 측근) 관련

사적 채용, ‘용궁’으로 가는 그들만의 하이웨이

道雨 2022. 7. 27. 09:23

사적 채용, ‘용궁’으로 가는 그들만의 하이웨이

 

 

용산 대통령실을 시중에서 ‘용궁’이라 부르는 건 이제 보편적인 듯하다. 애초 적잖이 썼던 ‘용와대’는 거의 사라졌다.

용궁이 처음 공개적으로 거론된 건 지난달 10일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 오찬 자리였다. 윤 대통령이 당시 대통령실 명칭 공모에 올라온 ‘이태원로22’ ‘국민의집’ 등이 다 마음에 안 든다고 하자, 한 참석자가 “용산에 있으니 용궁이 어떠냐”고 했다. 우스개였다. 윤 대통령도 “궁이 들어가면 다 중국집 이름 같다”며 유머로 받았다. 대통령실은 결국 나흘 뒤 새 명칭을 정하지 않고 ‘용산 대통령실’을 당분간 쓰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권 핵심부가 우스갯거리로 한번 쓰고 만 용궁을 국민들이 널리 쓰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단 용산 대통령실 여섯 글자는 길다. 요즘은 ‘별다줄’(별걸 다 줄인다의 약어)이 대세 아닌가. 그렇다고 ‘용대’는 어색하다. ‘용산’은 국방부를 떠올리게 하고, ‘대통령실’은 너무 공식적인 느낌에 별로 줄인 티도 안 난다.

 

물론 이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용궁’이 입에 착착 붙는 건 대통령실을 용궁이라 부를 때 발성과 의미 전달 모두에서 상당한 편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몽글한 비음의 연쇄는 발음하기 편하다. 무엇보다 대통령실을 용궁으로 부를 때 두 단어 사이엔 묘한 긴장관계가 발생한다. 여기에 우리 뇌는 쫄깃하게 반응한다.

 

용궁의 기의는 윤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에 고정하고 싶었을 어떤 의미와 두 방향으로 어긋난다.

 

첫째, 윤 대통령은 구중궁궐 청와대를 벗어났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용궁은 청와대보다 더 직접적으로 ‘궁’이라는 제왕의 거처를 떠올리게 한다.

 

둘째, 용궁은 단지 궁궐을 넘어 완전히 이질적인 별세계를 상징한다. 윤 대통령은 국민, 언론과 자주 가깝게 소통하겠다며 기어이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겼다. 용궁이 널리 세간에 통용되는 지금의 상황은 윤 대통령의 의도가 실패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용산 대통령실을 권력을 위임받은 5년 임기 봉사자의 일터라기보다, 다른 차원에 사는 지배자의 거처로 보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어렴풋이나마 드러낸다.

 

이런 인식의 근저에 자리한 건 민심과 동떨어진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반복되는 행태, 발언이다. ‘전임 정부 탓’ 타령이 넘쳐나는 대통령의 출근길 문답, 씁쓸한 웃음만 남긴 나토 정상회의 비(B)컷 사진 연출, “근본 방도는 없다”는 안이한 민생 위기 대응과 정반대로 비호같이 날랜 경찰 장악 속도전 같은 것들이다.

 

화룡점정은 ‘사적 채용’ 논란이다. 장관과 대통령실 고위직을 윤 대통령의 검찰 시절 부하들과 법대충(서울법대·대광초·충암고) 인맥으로 채운 것도 모자라, 대통령실 중·하위직마저 외가 8촌, 강릉 사는 두 지인 자제들, 검찰 수사관 출신의 아들 등을 대거 앉힌 사실이 드러났다. 얼마나 더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래놓고 대통령은 관련 질문에 “허허, 오늘 하루 잘 보내시고”라며 들은척 만척 하고, 시민사회수석은 “대통령실은 원래 엽관제”라며 생경한 단어까지 동원해 비판 여론에 ‘악의적 프레임’ 딱지를 붙였다. 그러나 ‘하나회’ 후배 군인들로 청와대를 채우고 친인척을 온갖 고위직에 앉혔던 전두환·노태우 신군부 정권 이후 역대 어떤 정권에서도 이런 식의 노골적인 정실인사는 듣도 보도 못했다.

 

엽관제(獵官制, Spoils System)의 엽 자는 사냥을, 영어 스포일은 전리품을 뜻한다. 어쩌면 ‘관직 사냥’에 가까운 인사임을 대놓고 인정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별정직 ‘어공’(어쩌다 공무원)을 채용하더라도 엄정한 검증 절차 등 ‘공정’의 외관만큼은 갖추려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장제원한테 (우아무개를) 대통령실에 넣어주라고 압력을 가했더니 자리 없다고 그러다가 나중에 넣었다”고 했다. 압력에 의한 ‘사적 채용’ 자백이다.

 

‘용궁’ 별칭의 보편화는 민심이 점점 대통령실을 그들만의 리그로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적 채용’은 용궁으로 가는 그들만의 하이웨이라 할 것이다.

두려운 건 용궁에서 민심에 귀 막은 집권세력이 혹여라도 그들만의 판을 꾸밀까 하는 점이다. 기력 쇠한 용왕에게 그랬듯이, 지지율 추락 막겠다고 토끼 배라도 가를 기세다.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에 이어 지금은 경찰이 도마에 올랐다.

 

토끼의 지혜와 용기가 절실한 시간이다.

 

 

 

손원제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