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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는 외교부 의견서, 미쓰비시 피해자 팔 꺾어"

道雨 2022. 8. 24. 11:40

"느닷없는 외교부 의견서, 미쓰비시 피해자 팔 꺾어"

[스팟 인터뷰] 이국언 이사장 "대법원 판단에 사실상 영향... 역사적 오욕"

 

 

 

"허탈하고 참담하다." 

일본 전범 기업 미쓰비시중공업(미쓰비시)의 국내 자산 강제 매각 및 현금화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이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연기된 것에 대해,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단체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국언 이사장이 22일 오전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외교부의 행태를 지적하며 한 말이다. 

7월 26일 외교부는 미쓰비시의 국내 자산 매각 여부 결정을 앞둔 대법원에 "강제 현금화 이전에 외교적인 해결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며 "(대법원에서) 충분히 고려해주길 바란다"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외교부가 건넨 의견서는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을 통해 지난 17일 확인됐고, 18일 언론에 공개됐다. 그리고 다음날인 19일, 대법원은 약식으로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마지막 날임에도 판단을 미뤘다. 

심리불속행은 하급심 판결에 위법 등 특정 사유가 없으면 본안 심리를 하지 않고 소송을 기각하는 결정이다.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대법원은 상고 기록을 받은 날부터 4개월 이내에 기각 결정을 내리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심리를 하지 않고 판결한다. 19일이 상고 기록을 받은 지 4개월이 된 날이었다.

대법원이 심리불속행 마지막 날인 19일 기각 결정을 내렸다면, 미쓰비시의 국내 자산에 대한 매각 명령이 확정돼, 현금화 절차가 진행됐을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사건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않았고, 이에 따라 대법원은 사건을 심리한 후 구체적인 판단 이유를 포함하는 정식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아래는 대법원의 이번 결정에 대해 이국언 이사장과 나눈 대화 주요 문답이다. 
 

느닷없는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 
 

▲ 대법원 전원합의체, 일제 강제징용 승소 판결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은 서울시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강제징용 피해자 원고 4명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자료사진).


  
 
 
- 결국 대법원이 결정을 미뤘다. 외교부 의견서가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아무래도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물론 대법원이야 외교부 의견서에 영향을 받았다 말하지 않겠지만, 결과가 이렇게 증명하는 것 아닌가. 사실상 피해자들의 마지막 남은 권리를 외교부가 나서서 팔을 꺾은 것이라고 봐야 한다."

-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일본에서 있었던 소송이야 논외로 치더라도, 국내에서 제기한 소송만 따지면 2000년대부터 지금까지 20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다. 과정에서 2018년에 얻은 판결은 오랜 세월을 버틴 끝에 어렵게 얻은 결과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소송이 진행될 때마다 우리 정부는 일관되게 '개인이 일본 민간 기업을 상대로 한 사적인 소송'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입장을 표명하는 것 자체를 부적절하다'고 말해왔다. 행여라도 피해자들이 정부의 구체적인 역할을 바라거나 요구할까 봐 피해자들을 미리 손절한 것인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정부한테 손 내밀지 말라고 아주 차갑게 외면한 거다. 이런 상황에서 얻은 결과가 2018년 대법원 선고였으니 얼마나 소중한가.

윤석열 정부가 탄생하더니, 확정된 대법원 판결에 대해 느닷없이 '공익과 관련된 사안'이라며 의견서를 제출했다. '사적인 소송'이라며 지금까지 손절했던 정부가 어느 날 갑자기 전범기업이 불리해지자 '공적'이라면서 의견서를 보낸 거다. 그러니 어찌 이러한 현실에 허탈하고 참담하지 않을 수 있나. 국가라는 존재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어떻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인지 너무나도 슬픈 일이다."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씨와 김성주씨 등 5명은 2012년 광주지법에, 일제강점기 시절 미쓰비시가 운영하던 공장에 투입됐지만 임금을 받지 못해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이들은 1심과 2심에서 이긴 뒤, 지난 2018년 11월 대법원에서도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우리 법원은 미쓰비시가 양씨 등 5명에게 각각 8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미쓰비시는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2019년 3월 우리 법원은 미쓰비시가 보유한 한국 내 상표권 2건과 특허권 6건을 압류하는 강제 절차를 명령했다. 이에 불복해 미쓰비시가 항고했으나 지난해 초 법원(대전지법)은 이를 기각했다. 미쓰비시는 압류명령에 불복해 대법원에 재항고했고, 지난해 9월 대법원은 상표권과 특허권에 대한 압류조치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2021년 9월 대전지법은 압류된 미쓰비시의 채권에 대해 '매각' 결정을 내렸다. 미쓰비시는 자산매각 명령에 불복해 항고했고, 2022년 2월 법원은 미쓰비시측의 항고를 기각했다. 2022년 4월 미쓰비시는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그리고 지난 8월 19일은 미쓰비시 측의 특허권 특별현금화 명령 재항고 사건에 대한 심리불속행 결정을 내리는 마지막 날이었다.

소송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양씨와 김씨를 제외한 다른 피해자 3명은 별세했다.
 


"외교부 의견서 철회해야"

 


  
- 대법원 결정을 앞둔 상황에서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나?

"외교부의 의견서가 재판부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여부를 떠나, 이미 외교부 의견서가 법원에 전달된 행위에 대해서 만큼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 역사에 중대한 오욕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과만 놓고 보면 전범 기업을 우리나라 외교부가 편든 모양새가 돼버렸다. 지금까지 버텨온 피해 할머니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 되고 있다. 당연히 외교부는 사후에라도 이 의견서를 철회해야 한다."

- 가능할까?

"일본 정부나 일본 전범기업의 부당한 주장이나 말도 안 되는 헛된 논리보다도, 정부가 이렇게 우리 앞에 벽을 치고 나서는 문제가 이 일을 진행하는 나한테도 큰 충격으로 느껴지고 있다. 그러니 당사자인 피해 할머니들한테는 얼마나 더 크게 다가오고 있겠나. 일제로부터 받은 아픔과 수난, 상처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피해자들을 두고, 우리 정부가 앞서서 전범기업을 해방시켜준 거다. 그야말로 우리 정부의 외교적 참사 아니냐. 외교부 의견서는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 

통화 말미 이 이사장은 "외교부가 대법원에 의견서를 전달한 것은 일제에 끌려가 청춘을 모두 빼앗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국익'과 '한일관계 회복'을 구실로 또다시 희생양이 돼라 말한 것과 다르지 않은 행태"라면서 "외교부의 의견서로 19일 결정이 미뤄졌지만 적법성이 너무나 명확한 사건인 만큼 대법원에서 결국 기각 결정을 내릴 것이라 기대한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해당 사건의 주심 법관인 김재형 대법관이 오는 9월 4일 퇴임하는 만큼, 빠르면 이달 안에 결정이 내려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박진 외교부장관은 지난 19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대법원 판단이 어떻게 나올지 예단할 순 없지만 존중하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