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보는 시선

道雨 2022. 10. 26. 08:57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보는 시선

 

 

 

 

한 가정이나 개인의 지출 내역을 샅샅이 분석해 현명한 소비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움 주는 내용의 방송 프로그램들이 있다. 몇만원 단위 지출 내역까지 자세히 공개된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그 방송을 보다가 이상하게 느껴지는 대목을 짚었는데, 바로 기부금 지출 항목이 없다는 것이다.

 
 
 

기부금 통계는 집계 방식이 매우 다양해 일률적으로 비교하기 어렵지만, 어떤 지표로 보더라도 한국의 기부금 현실은 부끄러운 수준에 머물러 있는 편이다.

‘자본주의 종주국’이라는 나라에서는 1인당 연간 기부금이 200만원가량 되는데, 우리나라는 10만원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있다. 당시 그 나라 1인당 소득이 우리나라 두배쯤이었으니까, 우리가 같은 비율로 기부금을 낸다면 한 사람이 1년에 100만원쯤 내면 된다. 4인 가족이라면 그 가정에서 1년에 400만원쯤 기부금을 내면 다른 나라 사람만큼 하는 셈이다.

그 나라 사람 중 89%가 기부금을 내는 데 반해, 우리나라 사람 중 50%는 기부금을 전혀 내지 않는다는 통계도 있었다.

 

오래전 국회 인사청문회 한 장면이 생각난다.

60억여원 재산을 가진 후보자에게 국회의원이 물었다. “공무원 25년 재직하신 분으로는 재산이 많다고 생각 않으십니까?” 후보자가 답했다. “저도 이번에 놀랐습니다.” 국회의원이 다시 묻는다. “그렇게 번 수입 중에서 사회기부나 불우이웃을 위해 사용한 금액은 얼마나 됩니까?” 후덕한 인상의 후보자가 답했다. “저도 이번에 청문회를 준비하면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매우 아쉽게 느꼈습니다.”

참 부끄럽다 못해 비참하다. 우리 사회 양심의 표상 같은 대법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오간 대화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고위직 인사들은 스스로 ‘보수주의’라고 자처하는 경우가 많은데, 진정한 보수주의는 죄 없이 고통당하는 이웃을 나몰라라 하지 않는다.

도덕성·일관성·책임감·지혜 등 전통적인 가치를 중요시하는 것이 다른 나라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보수주의의 정체성이다.

 

한국 사회 지배층의 보수주의가 왜 이렇게 ‘천박한’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지 그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독립운동가 후손의 66%가 학력이 고졸 이하인 데 반해, 친일세력 후손은 3분의 1가량이 소위 명문대 출신이고 27%가 유학을 다녀와 사회 지배세력에 편입됐다는 한 독립언론사의 취재 내용에 미루어 막연히 짐작할 수 있다.

 

‘미국식 기부문화’를 바라보는 유럽의 시각은 매우 냉담하다. 우리나라 방송사들이 장마철에 홍수 피해를 본 사람들을 돕기 위한 기부금 모금 중계방송을 하는 장면을 보고 “미국 자본주의의 기부문화를 흉내 낸다”고 비웃기도 한다.

 

기부행위는 한계가 명백해 사회구조를 바꾸지는 못한다. 가난한 이웃을 도와주기는 하지만 그들의 몫을 빼앗아 가는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우지는 않기 때문이다. 자선사업가 중에 부패한 정치인이나 기업인과 친하게 지내는 이가 드물게 나오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20년 전인 2002년 핀란드 노키아 부회장이 오토바이를 몰다 과속으로 적발돼 범칙금 1억3천만원을 냈다. 그 나라에서는 소득에 비례해 범칙금을 부과하기 때문이다. 지금 화폐가치로는 그 몇배의 금액을 범칙금으로 냈을 것이다.

12년 전인 2010년엔 스위스의 한 부자가 스포츠카를 타고 과속하다가 벌금 3억2천만원을 냈다. 그 나라에서는 재산에 비례해 벌금을 부과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단순화했다고 비난받을 것을 각오하고, 어려운 법학용어를 쉽게 풀어 설명하자면, 재벌 회장이나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같은 금액의 범칙금(벌금)을 부과하는 것은 시민법의 ‘평등’이고, 재산이나 소득에 비례해 벌금을 차등해 부과하는 것은 사회법의 ‘평등’이다.

 

마찬가지로 파업을 한 노동자에게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라는 민법 규정을 적용해 회사가 입은 손해를 배상하게 할 것인지, 아니면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노동법 규정에 따라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볼 것인지에 관한 논쟁 역시 시민법과 사회법의 갈등이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시민법만 주로 공부한 한국 사회 지배세력은 “파업을 한 노동자에게 기업이 함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제한하자”는 노동법 개정 주장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다. 바람직하지 않은 시선이다.

 

 

 

하종강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