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안전·보호’보다 ‘통제·단속’에 쏠린 공권력 기조 바뀌어야

道雨 2022. 11. 5. 09:36

‘안전·보호’보다 ‘통제·단속’에 쏠린 공권력 기조 바뀌어야

 

 

 

이태원 참사 뒤편에 어둡게 깔린 배경에는 국가 공권력이 국민을 대하는 근본 태도의 문제점이 자리잡고 있다. 참사 현장의 공권력 부재는 당일 집회·시위 현장에 넘쳐나던 경찰관들, 마약 등 단속을 목적으로 대거 투입된 수사인력들과 기묘한 대비를 이룬다.

공권력 행사의 무게중심이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는 것보다 국민을 통제·단속하는 데 두어지는 그릇된 인식과 관행을, 이번 참사를 통해 심각하게 돌아봐야 한다.

 

참사 당일 서울 시내에서 열린 주요 집회에는 경찰 추산으로 4만명가량이 참석했는데, 집회 대응에 동원된 경찰력은 4천여명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폭력 시위가 예상되는 것도 아닌데 과도한 경찰력을 투입해 집회를 통제·관리하는 게 경찰의 해묵은 관행이다.

참사 발생 3시간 전께 용산경찰서 소속 경찰관이 교통기동대 출동을 긴급 요청했지만, 집회 관리를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한다. 용산경찰서장도 집회 현장에 나가 있었다.

국민의 헌법적 권리인 집회·시위에는 이렇게 과잉 대응을 하면서, 압사 위험을 호소하는 시민들의 신고에는 그토록 무신경했던 게 공권력 운용의 현주소다. 이태원 인근에는 대기 중이던 기동대도 있었는데 현장에 투입하지 않았다니 더욱 통탄스럽다.

 

또 경찰은 핼러윈 축제를 맞아 마약 등 범죄 단속에는 매우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당일 이태원에 배치된 경찰관 137명 중 50명이 형사들이었다. 용산경찰서 인력에 더해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등이 추가 투입됐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직접 인력 보강을 지시하는 등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검경 수장이 잇따라 마약 범죄 대응을 강조했고, 윤석열 대통령이 경찰의 날에 “마약과의 전쟁에서 승리해달라”고 주문할 정도였으니, 경찰이 기민하게 움직일 만도 하다.

 

하지만 시민들이 모인 축제를 범죄 단속의 기회로 여기는 발상만 했지, 안전 관리에는 철저히 둔감했다는 게 문제다. 대통령실부터 일선 경찰서에 이르는 지휘 계통의 어느 한 곳에서라도 역대급 인파의 안전 관리에 생각이 미쳤다면 막을 수 있는 참사였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2조는 경찰의 임무로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를 맨 앞에 꼽는다. 그다음이 ‘범죄의 예방·진압 및 수사’다. 국가 공권력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명확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민 보호보다 통제·단속을 우선시하는 전도된 인식은, 이번 참사 이후 책임 회피에 급급한 정부의 태도에도 그대로 투영돼 있다.

이에 대한 근본적 반성 없이는 사태 수습도 재발 방지도 허울에 그칠 수밖에 없다.

 

 

 

[ 2022. 11. 5  한겨레 사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