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헛소리

道雨 2022. 12. 28. 09:42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헛소리

 

 

 

이명박씨가 사면됐다.

사법부가 확정한 이명박씨 범죄사실 중 하나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지위에서 100억원이 넘는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다. 파렴치범이자 세계적 망신이다.

대한민국은 공무원의 뇌물죄를 엄하게 처벌하고 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1억원 이상 뇌물은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공무원이 100억원을 훨씬 넘는 뇌물을 받고 징역 17년을 선고받았는데, 2년 살고 끝나는 경우는 없다. 전직 대통령 말고는.

 

대통령실과 여권은 ‘국민통합’을 이야기한다.

사면 때마다 늘 나오는 명분이고, 늘 납득하기 어렵다.

뇌물 받아 자기 배 불린 고위공직자 죄를 면해주는 것이 누구와 누구의 통합에 도움이 되나? 죄인에 대한 법원의 유죄 판결이 사회를 분열시킨단 말인가?

국민의 선택을 받은 대표자는 특별하다는 주장도 있다. 주장 자체도 설득력이 없지만, 이번 사면에는 선출직이 아닌 원세훈, 남재준 전 국가정보원장 등도 포함됐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사면권이란 그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권에 속했거나 가까운 사람들이 향유하는 특권일 뿐이다. 정치권에 강력한 로비를 할 수 있는 경제계 인사 역시 그 특권을 알뜰하게 나눈다.

 

이명박 사면에 야권이 비판하는 듯 보이지만, 사면만큼 정치권이 한목소리인 사안도 많지 않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권까지 그 어떤 정권도 사면권 행사를 자제하거나 공정한 기준을 세우지 않았다.

 

 “‘국민대화합’, ‘경제 살리기’ 등 그럴싸한 명분으로 비리를 저지른 정치인·기업인들에 대한 사면·복권”, “대통령의 측근이나 정권창출의 공신을 슬쩍 집어넣고, 야당 정치인도 적당히 끼워넣음으로써 물타기를 하는 것”. 

 

노무현 정부 말인 2007년 한 신문의 사설이다. 오늘치 사설이래도 손색없다.

 

 

사면권은 대통령의 신성불가침 권한처럼 여겨지지만 그렇지 않다. 헌법 제79조 1항은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즉, 법률로써 사면의 원칙과 한계를 정할 수 있다.

그러나 법률을 만드는 정치권이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을 스스로 제한했을 리 만무하다.

 

사면법은 1948년 정부조직법 다음으로 만들어진 대한민국 제2호 법률이다. 그 이후 2007년에서야 첫번째 개정이 이뤄졌다. 헌정사상 가장 오랜 시간 개정되지 않은 법률이 사면법이다. 그만큼 가장 통제받지 않은 권한이 대통령의 사면권이었다.

 

이제는 한 단계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대선 때마다 후보들은 사면권 행사 자제를 공약한다. 사면권 통제가 필요하다는 여론도 충분하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야권이 ‘사면권을 남용하는 현 대통령을 견제하겠다’는 명분을 가지고 과감한 제도 개선을 기대할 수도 있는 국면이다.

 

사면법 개정 방안에 관해 여러 논의가 있다. 뇌물죄 등 특정 범죄는 사면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법, 사면 절차에서 사법부나 피해자의 의견을 듣는 방법 등이다.

 

필자는 두가지 방향을 특별히 주장하고자 한다.

 

첫번째는 사면 대상을 ‘최저 형기 경과자’로 제한하는 것이다. 형기의 반, 최소한 3분의 1은 복역해야 사면 대상에 포함될 수 있어야 한다.

사면은 사법부가 내린 결정의 효력을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변경하는 것이다. 당연히 권력분립의 원칙, 법 앞의 평등 원칙과 대립한다.

이 헌법적 긴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안은 일정한 처벌을 보장하는 것이다.

사면을 성문헌법에 최초로 규정한 미국의 경우, 형기가 종료한 이들을 사면 대상으로 하는 문화가 정착됐다.

 

두번째는 2007년 도입된 사면심사위원회의 실질화다. 사면심사위원회를 법무부 산하가 아닌 독립적 위원회로 격상하고, 절반 이상이 대법원·국회 추천 등 외부위원들로 구성된 위원회의 의결을 거친 이들만 사면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은 일반사면은 국회 동의를 요건으로 뒀지만, 특별사면은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았다. 바로 이 공백을 이용해 수십만명, 수백만명 규모 특별사면이 남용돼왔다. 일반사면을 국회가 통제하듯이, 특별사면 역시 독립기구를 통해 제한돼야 한다.

한때 ‘군주의 대권’으로 명명되던 사면권의 축소, 제한은 세계적 추세다.

 

위 두가지 원칙이 입법된다면, 사면권 행사는 자연스럽게 엄격한 기준 아래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이는 헌정사의 중요한 발전이 될 것이다.

 

 

 

임재성 | 변호사·사회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