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공포와 야만의 경보음이 울린 아침에

道雨 2023. 6. 2. 10:52

공포와 야만의 경보음이 울린 아침에

 

 

 

 

 

 

 

나중에 안 것이지만 정확하게 오전 6시32분이었다고 한다.

아파트에서 울리는 화재경보와는 음향의 크기와 음색이 조금 달리 들리던 경보음. 허공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공포감이 엄습하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왈칵 겁이 났다. 불이 났나? 어느 동에서 불이 났지? 무섭고 두려웠다. 베란다 문을 열고 냄새를 맡으려 애썼다. 허공에선 계속 경보음이 울어댔다.

이것도 나중에 안 것이지만, 1분 동안 울렸다고 한다.

 

다행히 경보음은 수그러들고 마음이 놓였지만, 이미 심장은 녹아내린 것 같았다. 함께 사는 고양이 때문이었다. 고층 아파트에 불이 나면 어떤 불행이 시작되는지 뉴스를 본 사람들은 상상할 것이다. 17층에서 고양이 세마리와 함께 대피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가? 그리고 무엇을 챙기고 무엇을 그대로 두고 나와야 할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경보음 속에서도 아파트 단지 재활용물품을 실어가는 차가 작업하고 있었다. 짐짓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머지않아 다시 핸드폰에서, 들어본 적이 없는 잔인한 음향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자가 날아왔다.

 

‘오늘 6시32분 서울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아, 전쟁이 났구나. 두말할 필요도 없는 확신으로 전쟁을 생각했다.

1950년 6월 시작된 전쟁. 3년 동안 끌었던 전쟁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개 갑작스러웠다. 전쟁은 이렇게 갑작스럽게 일어날 것이다. 1950년 겨우 세살이던 나. 하지만 눈과 귀로 피란을 경험한 공포가 내면화돼 있는 사람. 그 경험은 나의 내면에 죽지 않은 바이러스로 ‘잠재’돼 있다.

영원한 평화가 약속되기 전에는 결코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약속된 평화도 없는 현실에서는 어떤 치료제도 없는 깊은 질환인 셈이다.

경계경보는 바로 이 바이러스를 내 생명으로부터 폭발시켰다.

 

첫째와 셋째 고양이는 눈길이 닿았다. 그러나 둘째는 어디에 숨어 있는지 볼 수가 없었다. 10분이 흐르고, 20분이 흐를 즈음 다시 핸드폰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이래도 문자 안 읽을래? 이런 위협감을 느끼게끔 하는 잔혹한 음향은 어떤 이가 생산했을까?

 

‘06시41분 서울특별시에서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 사항임을 알려드림’

행정안전부의 문자였다.

그러니 문제의, 허공을 찢는 듯하던 경계경보는 6시32분.

그 경보에 대한 설명은 9분 후인 6시41분에 국민이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오발령’이었음을 알리는 행안부의 문자는 7시3분.

 

갑자기 허탈감이 밀려들었다. 안도감보다 먼저. 그리고 불쾌하고 괘씸했다. 선거 때만 되면 오로지 국민만을 위해서, 국민의 편에 서서 등등으로 국민이 주인이라서 국민의 말만 듣고 국민의 안전과 이익을 최우선으로 할 것을 하늘에 맹세하듯 말하고 또 말하던 ‘분들!’

 

국민이 주인이라면 국민을 존중한다면 어떻게 이런 재난경보를 미사일 쏘듯 내보낼 수 있는가. 주인이 놀라면 어쩌라고. 주인 중에는 거동이 불편한 어른부터 어린아이들까지 있는데. 나처럼 반려동물과 생활하는 사람도 얼마나 많겠는가.

 

더군다나 우리가 누군가! 전세계,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국가, 휴전상태에 놓인 국가 국민 아닌가.

휴전(休戰). 전쟁을 좀 멈춘 상태.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전쟁. 휴전은 그런 것이다.

 

아직도 우리 국민 중에는 전쟁의 공포, 그 절체절명의 혼란과 무법천지의 상황을 경험한 분들이 살아 계신다. 그런 경험이 없는 세대라고 왜 분단을 모르겠는가.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이 상황을 이용해 먹던 정치가들. 선거 때면 ‘북풍몰이’라는 것으로 전략을 짰다. 전쟁 경험이 기억에 없는 세대들이 다수 유권자가 되자, 슬그머니 북풍몰이는 사라졌다. ‘빨갱이’ ‘간첩’도 해가 갈수록 약효가 떨어지는 주제가 됐다.

정치가들이 그것을 이용해 먹지 않고, 진심으로 ‘평화’ ‘분단 극복’ ‘민족화해 협력’ 등등의 제 할 일들을 했다면, 5월31일 오전 6시32분부터 7시3분 사이에 일어난 코미디 같은 일은 없지 않았을까?

국민 마음을 요리조리 잡아끌어 표를 모으던 정치세력들. 도대체 몇십년이 흘렀나.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고 나아졌나?

 

국민을 조금이라도 존중한다면, 국민을 위한다면, 위기 상황이 왔을 때라도 겁먹지 않고 차분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정부가 재난 상황에 잘 대처할 것이라고, 정부를 믿으시라고 안심시키는 일부터 했을 것이다.

어려움에 닥친 자식을 대하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다친 자식이 공포에 떨 때, 우선 안심시키고 뒤로 다급하게 처치를 위한 일을 하는 부모의 마음으로. 그래야 국민을 주인으로 아는 정권이 아니겠는가.

 

부디 우리의 현재를 잘 살피고 그 원인을 찾아 진실과 사실에 가닿는 해결책을 찾고, 그 해결책을 우리 실정에 맞게 실천하려고 노력해주길 바란다.

 

우리는 현재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자식을 낳기 싫은 나라가 된 것이다.

정권 하나가 나랏빚을 400조나 늘려놓았다는 말을 들었다.

전세 사기와 코인 사기, 주식투자 사기 등등, 살이 찌지 않으려는 애달파 보이는 노력에 편승한 약물과, 정신적 공허를 이기지 못해 찾게 되는 다양한 마약과 사이비 종교들. 모두 타인의 불행을 휘둘러서 돈을 벌려는 추악한 범죄다.

자살하는 이들은 늘어나고, 증오심은 마치 사회감정처럼 퍼져 있다.

 

크기와 굵기가 다른 손가락 다섯개가 있어야 손이 제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듯이, 그리고 그 손가락이 서로 비방하고 멸시하지 않듯이, 우리도 기능과 역할이 다른 국민 모두가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고 기댈 수 있을 때, 비로소 건강한 국가라고 할 것이다.

그래야 아이도 낳고, 자살도 하지 않고, 마약이나 사이비 종교의 유혹에 넘어갈 필요가 없지 않겠나.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 나의 생각으로 인해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세상.

오래전에 남미 쪽 어느 나라 정치가가 한 말이라고 기억되는데, 나는 정말 이런 평화를 원한다.

 

오늘 아침 울린 저 공포와 야만이 느껴지는 경보음에, 존재 자체가 뒤흔들리는 삶은 얼마나 초라한가.

너무 초라해서 울지도 못하겠다.

 

 

 

이경자 |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