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같잖은’ 북한과도 대화를

道雨 2023. 6. 5. 10:46

‘같잖은’ 북한과도 대화를

 

 

 

“상대의 선의에 기대는 가짜 평화가 아닌 압도적 힘에 의한 평화로 미래 세대들이 안심하고 꿈을 키워나갈 수 있는 튼튼한 안보를 구축할 것이다.”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대통령실 업무보고에서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이 한 말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에 대화를 구걸한 ‘굴종적 가짜 평화’였지만,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은 ‘당당한 진짜 평화’란 프레임이다.

 

나는 ‘가짜 평화’란 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를 같잖다고 여기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진해 경희대 교수는 ‘같잖다’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 말을 쓰는 사람이 스스로 금을 그어놓고 타인이 거기에 못 미친다고 소리치는 말이다. 상대를 전면 부정하는 거라 당사자와 말섞기가 쉽잖다.”(<한겨레> 2022년 1월3일치 ‘말글살이’)

 

대선 때 윤 대통령은 양자 토론회를 제안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향해 대장동 연루 의혹 등을 거론하고 “이런 사람하고 토론을 해야 되겠냐”며 “같잖다”고 거부했다.

윤 대통령은 국제 규범을 어기고, 북한 주민의 인권을 유린하는 북한 정권과 말섞기가 싫을 것이다. 검사를 오래 한 윤 대통령은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인 북한 정권과의 대화 자체가 같잖다고 여길 수도 있다.

 

이미 50여년 전에도 검사들은 그랬다.

1960년대 말부터 냉전 체제의 긴장이 풀리는 등 국제 정세가 급변하자, 박정희 전 대통령은 금기시해온 남북대화를 어쩔 수 없이 공론화해야 했다. 1970년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청와대 참모들이 남북대화 시작을 검토하자, 대검찰청이 “북한과의 대화 검토 자체만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감”이라고 발끈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검사들은 세상 모든 일을 불법과 합법이란 이분법 잣대로만 재단한다.

 

이런 내부 반발을 의식해 박 전 대통령은 1971년 첫 남북대화에 나서며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적의를 가진 사람이라도 그의 한쪽 손을 붙들고 있으면 그가 나를 칠지 안 칠지를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에 대화가 필요하다.”

 

‘적과의 대화’는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던 로버트 맥나마라도 강조했다.

1997년 6월 맥나마라 등 베트남전 당시 미국과 베트남의 고위 안보당국자 등 26명이 베트남 하노이에 모였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20여년 뒤 이들이 3박4일간 벌인 토론 주제는 ‘전쟁을 피하거나 혹은 조기에 끝낼 기회는 없었는가’였다.

 

토론 뒤 맥나마라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중요한 교훈은 베트남 전쟁은 미국과 베트남 쌍방의 지도자가 보다 현명하게 행동했다면 피할 수 있었던 전쟁이란 점이다.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교훈을 두가지 말씀드리고 싶다. 하나는 우선 적을 이해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적을 오해하고 있었다. 두번째는 비록 상대가 적이라고 할지라도 최고지도자끼리의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게을리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2018년 12월14일 남북 체육회담 이후 4년 반가량 남북대화가 끊긴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남북이 1971년 8월20일 첫 대화를 시작한 이래 최장기 대화 단절 기록이다. 이전까지는 전두환 집권 때인 1980년대 초반 3년8개월이 가장 길었다.

윤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이나 실무자 대화·협상을 “정치쇼”로 규정한 마당이라, 남북대화 단절 신기록은 당분간 경신될 것 같다.

 

윤 대통령은 가치 외교를 내세워 미국, 일본과 밀착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친구만 가까이 두려는데, 마피아를 그린 영화 <대부>에서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두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 영화의 원작 소설에는 “적을 미워하지 마라. 판단력이 흐려진다”란 문장도 있다.

 

적을 미워하고 멀리하기는 쉽다. 도리어 적을 가까이 두려면 비난과 부담을 견디는 인내와 용기가 필요하다.

윤 대통령에게 ‘같잖은’ 북한과도 대화하는 담대한 용기가 있을지, 궁금하다. 지켜보자.

 

 

 

권혁철ㅣ통일외교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