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천안함'이라는 사상검증, 보수-진보 언론의 합작

道雨 2023. 6. 8. 15:20

'천안함'이라는 사상검증, 보수-진보 언론의 합작

 

 

 

'북격침'에 대한 합리적 의문 제기 불온시하는 언론

잘못된 질문에 답할 게 아니라, 질문 온당한지 물어야

 

 

사실상 하나의 답변밖에 허용치 않는 질문 강요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의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 내정과 사퇴 사태가 확인시켜 준 것들 중 하나는, 한국사회에서 펼쳐지고 있는 사상검증, '천안함'이라는 사상검증이다. 천안함은 북한에 의해 격침된 것인가, 아닌가, 이 두 가지 선택지에 대한 답변을 해야 하는 사상검증이다.

사실상 두 가지가 아니라 하나의 결론, '북한의 소행이며, 나는 그것을 진리로서 믿습니다'라는 답변밖에 용납되지 않는 '건전한 사상'의 검증이다.

 

이래경 이사장의 여러 과거의 발언들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파편적인 해석을 보여주고 있지만, 천안함 침몰 원인의 진상에 대한 한국언론의 보도 역시 그 점에서 판박이다.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한 그루의 나무만을 보고 숲 전체를 얘기하는 격이다.

의도적으로 거두절미하고 자의적인 사실의 선택으로 전체의 진상이라고 내놓는 이른바 ‘보수’ 언론의 보도는 말할 것도 없지만, 그 주장의 헛점과 그 같은 주장들의 의도를 경계하고 지적해야 할 이른바 '진보'언론들도 그 사상검증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천안함의 함장이었던 이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부하들 죽인 게 나인가 북(北)인가?”라고 물었다고 하는데, 세상의 일들이 단지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나뉜다고 생각하는 듯한 이가 대한민국 해군의 영관급 장교, 특히 대형 전투함의 지휘관이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그같은 단순논리가 천안함 침몰 사태를 과학과 진실규명의 문제에서 종교와 신앙의 영역으로, 그것도 저급한 종교의 차원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그같은 유사종교화, 사상검증의 강요 속에서, 경계에 실패한 책임을 져야 할 함장이 오히려 전쟁 영웅처럼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요지경이 펼쳐지고 있다.

 

 

* 천안함 침몰원인을 조사해온 민.군 합동조사단이 20일 오전 국방부에서 조사결과를 공식 발표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역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TV로 이를 지켜보고 있다. 2010.5.20 연합뉴스

 

 

침몰 원인에다 진상 왜곡 은폐 의문 겹쳐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순찰중이던 천안함이 두 동강 나고 46명의 해군 장병이 희생된 사건에 대해, 당시 이명박 정권은 북한 잠수함의 어뢰 공격에 의한 격침으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정부의 사고 원인 발표는, 의문의 해소가 아닌 또다른 의문, 더욱 심각한 의문의 출발이었다. 사고 원인에 더해 진상의 왜곡과 은폐에 대한 의문이 겹쳤다.

 

북한에 의한 격침설의 근거가 10가지 제시되면, 그 근거를 뒤집고 반박하는 10가지, 20가지의 논거들이 제시됐다. 당시 대통령이던 이명박 씨 자신이 “내가 배에 대해 조금 아는데, 북의 공격과는 무관하다”고 발언했었다. 당시 한미 합동훈련에 참가한 미군 장교도 훈련 중 발생한 사고라고 말한 사실이 당시 언론에 보도까지 됐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북 잠수정에 의한 격침으로 ‘방침’이 선회한 듯했다. 특히 조선일보의 '북 격침'  주장이 이를 이끌었다. 도저히 어뢰에 의한 폭발이라고는 볼 수 없는 수 많은 반증들이 나왔지만 모두 무시됐다.

 

많은 의문을 제기하다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해 재판을 받아온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위원(진실의 힘 대표)이, 지난해 6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던 것은, 숱한 의문과 의혹들에 충분한 근거가 있다는 점이 공인된 것이다. 북한 어뢰 공격설을 뒤집는 좌초설을 주장해 온 그에 대한 재판 과정은 그의 말처럼 “국방부의 조작과 허위와 은폐, 거짓을 드러내는” 과정이었다.

 

법원은 천안함 프로펠러가 휘어진 현상과 증거로 제시된 어뢰추진체 백색흡착물질에 대한 정부의 발표가 과학적으로 충분히 입증되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천안함 침몰은 북 격침에 의한 것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결론은, 7일 촛불행동의 논평처럼 “다른 주장을 펴면 희생자를 모독하고 한국 해군의 명예를 손상시킬 뿐만 아니라 북의 입장을 옹호한다는 지탄을 받게" 돼버렸다.

 

이번의 이래경 이사장 일로 인해 한때 흔히 볼 수 있었던, 정치인들간의 토론회에서 이에 대한 답을 강요받고 ‘북한의 소행’이라고 답하고서야 대한민국의 공직을 맡을 자격을 얻는 '의식'이 다시금 되살아날 수도 있다.

 

신상철 대표의 "과학적인 분석과 판단이 필요한 일을, 거의 종교와도 같이 ‘믿어라, 믿지 않으면 종북이다’라고 한다"는 말처럼 과학과 진실규명의 문제를 종교와 신앙, 맹신과 광신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천안함 침몰에 대한 의혹 제기는 매우 단순하고 상식적인 것이었다.  

사건 당시 인근 해역에서는 한미합동 대잠수함 경계훈련이 전개되고 있었다. 그같은 삼엄한 경계 상황에서 ‘북한이 작전 중인 한미해군의 탐지망에 전혀 걸리지 않은 채, 1.7톤에 달하는 중어뢰를 장착할 수 있는 130톤 연어급 잠수함으로 해류가 강한 지역까지 침투해, 그것도 순찰함에 불과한 천안함을 공격할 수 있겠는가’하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게다가 많은 이들이 제기하듯이, 북의 잠수함이 천안함 공격 후 유유히 도주까지 했다면, 작전 대실패에 따른 책임추궁이 전혀 없었다는 것도 의혹을 낳는다.

 

신 대표의 말이나 촛불행동의 논평처럼 “천안함 사건은 현재 진행형 사건”이며, 희생장병들의 진정한 명예를 위해서라도 이 사건에 대한 진실 찾기는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천안함은 지금도 계속 침몰되고 있으며 두 동강 나고 있는 것이다. 장병들은 두 번 세 번 거듭 죽임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질문 자체를 용납치 않는 상황, 장병들 거듭 죽이는 일

 

천안함 침몰은 사건 그 자체로서만 아니라, 북한 소행론이라는 결론이 국내외 정치 및 외교안보적으로 어떻게 이용됐는가와 연결된다.

염무웅 문학평론가의 “이 사건은 한반도 정세에만이 아니라, 당시 일본 민주당 정부의 붕괴에도 깊은 연관이 있을 수 있는, 요컨대 남북한과 중국 일본이 포함된 동북아 평화체제의 성립을 미국 군사지배세력은 용납하기 어려웠던 게 아닌가 싶고, 그 과정에서 천암함 사건이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는 지적 그대로다. 

 

이런 많은 의문과 의혹들을 조선 중앙 등의 이른바 '보수' 언론은 외면하며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이들 언론의 보도 자체가 의문을 만들고 증폭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를 견제해야 할 이른바 '진보' 언론들이 그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가.

코로나 바이러스 미국 기원설 등과 함께 이래경 이사장의 의문 제기의 취지를 ‘음모론 신봉’으로 몬 경향신문의 보도가, 이 사안에 대한 진보 언론의 보도의 단면을 보여준다.

 

지금 한국언론에 필요한 것은 천안함 침몰이 북 소행이냐 아니냐는 양자택일 앞에서, 실은 한 가지 정해진 결론에 답하는 것이 아니다. 그 질문 자체가 온당한 것이냐고 묻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 질문을 강요하는 자칭 타칭 ‘보수’ 언론과 ‘보수 권력’, 보수라기보다는 진실 추구의 시도를 종북으로 모는 이들을 견제 반박해야 할 언론들이 오히려 그 질문 안에 갇혀 있다.

 

결과적으로 '보수' 언론의 '천안함에 대한 질문 봉쇄'를 돕고 있다.

의도되지 않은 보수-진보 언론의 '천안함의 종교화'의 합작이 벌어지고 있다. 

 

 

 

이명재 에디터promes65@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