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정치의 사법화 부른 태만

道雨 2024. 11. 27. 09:03

정치의 사법화 부른 태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이대로 원심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상실하고, 10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된다. 정치인에게는 사실상 사망 선고다. 선거비용 434억원을 반환해야 하는 당에도 엄청난 타격이다. 민주당은 “정치검찰이 정치권과 야합한 결과를 재판부가 동조한 꼴”이라며 일제히 판사를 비난하고 나섰다.

 

“국토교통부의 협박 때문”이라는 말이 허위라고 해도, 그것이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을 막고 민의를 왜곡하여, 선거와 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할 정도의 문제인지, 이 정도로 정치인의 명줄을 끊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하지만 특정 정치인을 겨냥한 정치판결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사법부가 공직선거법을 근거로 선거를 무효로 만들고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판결로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대선만 해도, 선거범죄와 관련해 2001명이 입건되었고, 이 중 허위사실공표죄로 입건된 사람이 810명으로 40.5%를 차지했다. 판례들을 보면, 이번 사건보다 훨씬 사소해 보이는 문제들도 유죄가 나온 경우가 허다하다.

 

 

정치는 한편으로 법의 통제를 받아야 하지만, 다른 한편 최대한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영역이다. 특히 정치인이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철저한 검증을 거쳐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 민주주의 선거의 기본 원리다.

“진리와 허위가 맞붙어 논쟁하도록 하라. 자유롭고 공개적인 대결에서 진리가 불리하게 되는 것을 본 일이 있는가”라는 존 밀턴의 명언이 가장 잘 작동할 수 있는 영역이 바로 정치고 선거다.

 

한국의 공직선거법은 촘촘한 규제로 가득하다. 모호한 조항들도 적지 않다. 공직선거법의 조문은 279개고, 대검에서 발간하는 공직선거법 벌칙 해설은 923쪽에 이른다. 한국에서 가장 복잡하고 난해한 법이 공직선거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미 법 자체에 검찰이나 법원이 광범위한 재량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되어 있는 셈이다. 검사와 판사가 엄청난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법이 정해준 범위를 벗어나지는 못한다.

사법이 정치에 개입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공직선거법을 이렇게 만든 것은 정치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의 규제 일변도의 선거법은 고질적인 금권선거와 관권선거로 신음하던 한국 정치사의 산물이지만, 언제부턴가 선거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그에 반해 국민의 의식 수준은 놀라울 정도로 올라갔다. 선거법을 이대로 둘 것인지 따져봐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이다.

 

 

이번 판결의 근거가 된 허위사실공표죄도 진작에 손을 봤어야 했다. 폐지까지는 아니어도 그 적용 범위를 제한하는 입법적 조처가 필요하다.

 

당선무효형이 벌금 100만원인 것도 이상하다. 1991년에 정해진 것인데 30년 넘게 그대로다.

범죄의 죄책을 가리는 형사재판에서 양형으로 공직선거의 유·무효가 판가름 난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당선에 대한 사법심사는 별도의 절차에 따르는 것이 맞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재명 대표에 대한 당선무효형이 선고되던 바로 전날, 후보자 비방죄와 허위사실공표죄를 개정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이재명 대표도 선거법의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시기가 고약하다.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 개정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이었다. 정봉주 전 의원의 비비케이(BBK) 사건이 그 발단이었다.

 

선거법 개정은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다. 특히 선거법의 규제를 완화하는 입법은, 검찰에 대한 통제권과 사법부를 구성하는 권한을 가진 여당이 책임지고 처리해야 마땅하다. 유리한 위치에 있을 때 스스로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시절을 촛불혁명으로 마감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지만, 정부 여당은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도 선거법 개정에 무관심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당대표가 처벌될 위기에 몰리고 나서야, 부랴부랴 선거법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이번주에는 더 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이재명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에 대한 무죄 선고가 나온 것이다. 지난주 판결은 ‘최악의 정치판결’이자 ‘사법살인’이었는데, 이번에는 ‘진실과 정의를 찾아준’ 판결이 되었다.

 

명예훼손죄, 모욕죄 등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조항들, 직권남용죄, 업무방해죄 등 과도한 사법화를 부르는 법적 근거들은, 진작에 국회가 해결해야 했던 문제들이다.

정치가 사법에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해놓고, 결과의 유불리에 따라 정치검찰, 정치사법이라고 비난하는 악순환이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홍성수 |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