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김건희, 측근) 관련

이토록 낯설고 기괴한 세상

道雨 2025. 2. 21. 10:13

이토록 낯설고 기괴한 세상

 

 

 

 

 

이 몇달 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매우 낯설고 기괴한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어떤 전쟁이나 사변도, 천재지변도 없는 상황에서 비상계엄이 선포된 것이 그 시작이었다.

 

21세기에 세계 10위권의 선진국의 일원인 대한민국 땅에서 비상계엄이라니?

 

그 순간 한국인들은 모두 함께 타임머신에 태워져, 40~50년의 과거 어느 한 순간에 내동댕이쳐진 기분이었다.

천만다행으로 한국 사회는 이런 황당한 사태에 휘둘리지 않고, 빠른 복원력으로 다시 21세기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위엄을 되찾는 데 성공했다.

그동안 국민 욕받이로 천덕꾸러기 취급만 받던 국회의원들이 앞장을 섰고, 시민들이 그 뒤를 든든히 지원하면서 비상계엄은 해제되었고, 하룻밤 사이 그토록 오만불손한 권력자였던 윤석열이라는 문제적 인간은, 탄핵소추의 대상이자 형법상 내란죄의 피고인으로 전락했다.

 

비상계엄이라는 망나니 칼춤을 추기 이전, 처음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알 수 없는 이유로 집무실과 관저를 옮기겠다고 할 때부터, 아니 그 훨씬 전, 이전 정부의 검찰총장으로 검찰개혁에 앞장서겠다고 하다가 판을 뒤집고 항명을 저지를 때부터, 그는 언젠가 큰 사고를 칠 것같이 위험해 보였다.

 

2년 반 정도의 집권 기간 동안, 아니나 다를까 그는 쉬지 않고 사고를 냈는데, 이 한겨울 밤의 비상계엄 선포는, 작은 사고를 큰 사고로 막는 연쇄범죄의 마지막 수순이자 필연적 귀결이었으니, 따지고 보면 그리 낯설 것도 기괴할 것도 없는 일인지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가 2년 반 만에 비상계엄이라는 방식으로 자폭함으로써, 이 막장 드라마가 종식되기에 이른 것은 차라리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 황당한 내란 사태가 어느 시점을 통과하면서, 이제는 또 다른 성격의 낯설고 기괴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체포를 거부하고 관저에서 농성을 벌인 이 파렴치한 인물의 행동은 어쨌든 자신의 몰락을 막기 위한 최후의 발악으로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 막가는 행동에 부응하여 일부 극우세력들이, 계엄은 구국의 행동이며 대통령을 구해야 한다고 나서서, 탄핵심판과 내란 수사를 노골적으로 방해하는 행태를 보이기 시작했고, 심지어 여당 소속 의원들조차 적극 합류하고 나선 것이 그 또 다른 기괴한 일들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급기야 일부 극우세력들이 범죄자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난입하여, ‘국민저항권’ 행사를 운운하며 극렬한 난동을 벌이는, 정말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초현실적인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이 서부지법 폭동을 전환점으로 해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견고했던 헌법 체제는 갑자기 논쟁적인 것이 되었다. 비상계엄의 위헌성에 대한 확고한 국민적 합의에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헌정질서에 대한 위협을 조속히 제거하고자 하는 입법부는 물론, 그 최종 판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법부의 절대적 권위도 노골적으로 의심받거나 부정되기 시작했다.

 

폭력에 의해 일시적으로 입법부를 무력화시키려 했다는 것만으로도 내란죄가 구성되는데, 이처럼 국가의 삼권분립 체제 자체를 노골적으로 부정하고 파괴하는 행위는, 국가 존립의 기본 토대를 무너뜨리는 명백한 내란 행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이들은 현존하는 국가 체제 전체를 부정하는 일관된 서사 체계까지 가지고 있는 확신범들이다.

 

이들은 최근 ‘중공’이 대한민국을 속국화하여 지배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있고, 여기에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사회 각계각층의 종북(종중) 좌파세력들이 적극 영합하고 있는데, 대통령이 이러한 음모를 분쇄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지만, 이들 좌파세력에 의해 좌절되었으므로, 이들 좌파세력이야말로 내란세력이고, 자기들은 이런 좌파세력을 척결하기 위해 일어선 애국세력이라는 서사가 그것이다.

참으로 딱한 일이지만, 이미 어떤 임계점을 넘어버린 확신과 열광은 위태로워 보인다.

 

 

지금 이 국면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훨씬 전부터도, 아니 이미 집권 초기부터도 장기집권을 꿈꿨던 것으로 보이는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터무니없는 야심과, 극소수의 극우 반공 기독교세력의 미망이 극적으로 결합한, 매우 특수한 국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한국판 보니와 클라이드처럼 마치 내일이 없는 듯 폭주하다가, 이윽고 파국을 앞둔 이 희대의 깡패 부부는 쥐구멍만한 희망을 발견했으며, 광화문 거리의 단골 소란세력들은 갑자기 자신들이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허황된 망상의 날개를 달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국 사회는 갑자기 매우 위험한 사회가 되고 말았다. 최소한 40년 가까이 어렵게 민주공화국으로서의 품격을 지켜오던 대한민국 사회는,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위기를 맞게 되었다.

한 막가파 깡패 부부를 중심으로 뭉친 작은 내란세력을 효과적으로 진압하여, 민주공화정의 헌정질서를 바로잡고, 산적한 국가사회적 과제들을 향해 달려가려던 발길은, 이제 그보다 더 규모가 크고 소란스러운 내란세력에 의해 일시적으로 가로막힌 형국이 된 것이다.

 

이 새로운 내란세력의 등장이 징후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파시즘의 본격적 대두라고 볼 정도는 아니다. 비상계엄을 조기에 좌절시킨 데서 나타난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하고 견고한 토대에 견주어, 이들의 일시적 ‘난동’은 아직은 통제가 가능한 수준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방심해서도 안 된다. 계엄 선포 당일부터 지금까지 쉼 없이 민주공화정의 화력이 되어준 수많은 민주시민들과, 위헌적이고 반민주적인 비상계엄 명령에 사실상 태업으로 맞선 민주군대, 일사불란하게 대오를 지켜나간 민주적 정치세력, 그리고 약간의 의구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법치의 원칙 아래 내란 범죄자들에게 상응하는 응징의 수순을 밟아오고 있는 검찰과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수사기관들과 헌법재판소와 법원 등 사법기관까지, 민주주의의 상식을 공유한 민주주의 동맹의 냉정하고 단호한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다.

 

민주의 이름으로 야만을 허락할 수는 없다.

관용의 이름으로 저 맹목의 재앙을 방임할 수는 없다.

민주사회 자체를 붕괴시키려는 파괴자들에게는, 어떠한 관용도 양보도 있어서는 안 된다.

다음 세대에 이처럼 이상하고 기괴한 일들이 일어나는 신세계를 물려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김명인 | 문학평론가·인하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