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스라엘이 마주할 ‘승자에 대한 저주’
지난 6월13일부터 12일 동안 지속된 이란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과 미국의 폭격은, 중동에서 계속되던 ‘승자에 대한 저주’를 반복할 것이다. 기존 지정학 구도와 질서를 허문 승자가 패자가 되는 역설이다.
그 역사는 오래됐다. 현재 중동 지정학 구도의 뿌리는 1967년 이스라엘-아랍의 6일 전쟁에 있다. 이집트·시리아·요르단·이라크와의 전쟁에서 6일 만에 완승한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최대 군사강국 및 미국의 확실한 대리자로 자리잡았다. 미국도 당시 소련에 기울던 아랍 국가들을 견제할 이스라엘이라는 든든한 동맹을 확보했다.
하지만 6일 전쟁은 그때까지 중동분쟁의 원인이던 팔레스타인 문제를 제쳐두게 만들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동기를 잃었다. 이집트 등 아랍 국가들은 강력해진 이스라엘과의 대결이나 타협에 몰두하게 됐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중동에서 해결 불가 상수가 됐다. 이스라엘은 어떤 일을 저질러도 미국의 지원을 받아 존속하는 상수가 됐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미국의 중재로 1979년 국교정상화를 했다. 때맞춰 이란에서는 이슬람혁명이 일어났다. 중동에서 미국의 최대 관심이 이스라엘에 쏠려 있는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아랍 대 이스라엘이라는 기존 중동분쟁 구도는 일변했다. 중동 무슬림들의 투쟁은 아랍민족주의에서 이슬람주의로 옮겨갔다. 이란 대 이스라엘이라는 대결 구도가 싹트기 시작했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주의 혁명을 차단하려고,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후원해 1981년 이란과의 전쟁을 사주했다. 이스라엘도 1982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소탕을 명분으로 레바논을 침공했다.
그 침공은 레바논에 헤즈볼라라는 친이란-반이스라엘 무장세력을 출현시켰다. 이란-시리아의 아사드 정권-헤즈볼라-하마스-이라크의 친이란 무장세력-예멘의 후티 반군으로까지 이어지는 친이란 시아파 연대를 만드는 계기였다.
8년간의 이란-이라크 전쟁이 사실상 이란의 승리로 끝났다.
이라크의 후세인은 미국 및 사우디에 보상을 요구하다가, 1990년 전격적으로 쿠웨이트를 점령했다. 1991년 미국이 이라크를 쿠웨이트에서 몰아내는 걸프전으로 이어졌다. 걸프전은 오사마 빈라덴의 알카에다 결성 등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의 부상으로 이어졌다. 2001년 알카에다의 9·11 테러의 원인이 됐다. 9·11 테러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및 이라크 전쟁으로 이어졌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으로 후세인 정권을 타도하고, 친미적인 정권 수립이라는 ‘레짐 체인지’(체제 교체)를 의도했다. 중동에 거대한 세력공백만을 야기했다. 이슬람국가(IS) 등 이슬람 극단주의가 발호했다. 이라크 전쟁은 이란 대 이스라엘이라는 중동분쟁 대결 구도를 완성했다.
이때부터 미국은 중동 수렁 탈출을 대외정책의 한 축으로 설정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는 2015년 이란과의 국제 핵 협상인 포괄적공동이행계획(JCPOA)을 타결해 타협을 추구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는 이를 파기하고는 대결로 다시 회귀했다.
트럼프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국교정상화인 아브라함 협정을 추구했다. 이란 대 이스라엘의 대결 구도에서 이스라엘 쪽을 강화하는 전략을 취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도 아브라함 협정을 이어받아, 이스라엘-사우디의 국교정상화가 눈앞에 있던 2023년 10월 가자전쟁이 발발했다. 가자의 하마스가 이스라엘-사우디의 접근에 쐐기를 박으려고, 이스라엘을 전격 공격했다. 이 공격은 이스라엘의 극우화를 재촉해, 베냐민 네타냐후가 이란과의 전쟁으로까지 가는 강경책의 자락을 깔아줬다.
그 결과는 이란 대 이스라엘이라는 기존 중동분쟁 구도의 해체이다. 이스라엘은 가자전쟁 발발 이후 하마스를 고립화하고, 헤즈볼라를 약화하고,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을 붕괴시켰다. 이란의 동맹은 해체 수준이고, 급기야 이란도 이스라엘과 미국의 강력한 폭격에 체제 위기까지 몰렸다.
지금은 분명 이스라엘과 미국이 기존의 중동 지정학 구도를 허물어뜨린 승자이다. 하지만 중동분쟁의 역사를 보면, 승자는 항상 더 큰 적에 봉착하고, 더 지독한 분쟁구도에 발목이 잡혔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폭격에도 이란의 핵 개발은 여전히 해결 미지수이다.
이스라엘과 미국에는 가자전쟁도 미해결이다.
따지고 보면, 가자전쟁 발발 이후 미국의 이란 폭격에 이은 이란-이스라엘의 휴전까지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 전쟁들을 끝낼 전략도 없고, 끝낼 자세도 안 보여주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란의 동맹을 와해하고, 이란을 약화시킨 것은, 그들에게 전략적 승리가 아니라 오히려 더 혼란과 세력공백을 부르는 전략적 재앙이 될 것이다.
정의길 :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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