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유럽 배회하는 극우 '트럼프 유령'…'이념 전쟁' 부르나

道雨 2025. 2. 17. 15:16

유럽 배회하는 극우 '트럼프 유령'…'이념 전쟁' 부르나

 

"미국, 유럽과 문화 전쟁으로 전선 이동"

밴스, 극우 사상·혐오 발언 규제 맹공

"유럽 최대 위험, 러시아, 중국 아냐"

밴스 "민심 중요"…방화벽 해체 요구

숄츠 "간섭 말라…극우파 배제돼야"

독일 대통령 "미, 매우 다른 세계관"

 

 

"JD 밴스의 뮌헨 연설은 대서양 양안 동맹의 붕괴를 폭로했다."

 

유럽을 강타한 미국 부통령 밴스의 전날 뮌헨안보회의 기조연설을 다룬, 영국 가디언의 15일 자 기사 제목이다.

밴스는 연설에서 정작 듣고자 했던 우크라이나 종전 방안 등 트럼프 2기의 외교안보 정책은 거의 언급하지 않은 채, 언론의 자유 등 유럽의 민주주의 가치 후퇴를 들먹이면서, 극우 사상과 혐오 발언에 대한 유럽 각국의 규제를 공격함으로써, 유럽 지도자들을 경악하게 했다.

 

*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14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2025. 02. 14 [로이터=연합뉴스]

 

 

 

밴스 "유럽서 언론 자유 후퇴,

마을에 새로운 보안관 왔다"

 

밴스는 "유럽 전역에서 언론의 자유가 후퇴하고 있다"며 "유럽의 최대 위험은 러시아나 중국이 아니다. 내부로부터의 위험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트럼프의 리더십 하에서, 우리는 당신들과 견해를 달리할 수 있지만, 우리는 당신들이 공론의 장에서 생각을 말할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를 계기로, '언론의 자유'를 명분으로 온라인에서 가짜뉴스와 극우 이념, 혐오 발언 등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는 미국과 달리, 유럽에선 여전히 유지되는 상황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됐다.

특히 "마을에 새 보안관이 왔다"라고 말해, 이제 유럽도 본격적인 트럼프의 '통제권' 안에 놓였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런 밴스의 연설 내용에 대해, 트럼프도 14일 백악관에서 열린 행정명령 서명식에서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유럽은 그들의 훌륭한 권리인 언론의 자유를 잃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의중'을 담은 연설이 맞다고 확인해준 셈이다.

 

* 뮌헨안보회의가 14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가운데,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JD 밴스 부통령, 그리고 알리스 바이델 AfD(독일 대안당) 공동대표의 마스크를 쓰고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5. 02. 14 [로이터=연합뉴스]

 

 

 

유럽과 '문화 전쟁'으로 전선 이동

가디언 "유럽-트럼프 간 깊은 틈"

 

유럽 언론의 평가는 매서웠다.

가디언은 "22분 연설은, 가소로운 위선과, 유럽 민주주의에 대한 왜곡된 묘사, 유럽의 파시즘 트라우마에 대한 무감각으로 가득 찼다"고 했다. 그러면서 "간과하기 힘든 건, 가치문제에서 유럽 대부분과 트럼프 행정부 간 깊은 틈이었다"고 지적했다.

 

가디언은 "연설은 기존의 유럽-미국 간 논쟁이 더는 군사비 분담이나 러시아의 미래 안보 위협 성격 등이 아니라, '사회'라는 훨씬 더 근본적인 뭔가와 관련돼 있음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당면한 우크라이나전 같은 생사를 건 '군사 전쟁'엔 눈 감고, 전선을 유럽과의 '문화 전쟁'으로 이동시켰다고 봤다. 유럽에서 극우 포퓰리즘(대중주의)의 현실 권력 장악이 최우선 과제이며, '새 보안관'인 트럼프가 그렇게 되도록 돕겠다는 게 밴스 연설의 핵심인 듯 하다.

 

*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15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5. 02. 15 [AFP=연합뉴스]

 

 

 

밴스 "민심 중요…방화벽 자리 없다"

숄츠 "간섭 말라…극우파 배제돼야"

 

트럼프의 첫 표적은 오는 23일 총선을 치르는 독일이다. 연설에서 밴스가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AfD(독일 대안당)를 거론하지 않았지만 "민주주의는 민심이 중요하다는 신성한 원칙에 기반한다. 방화벽의 자리는 없다"고 말했다. 그리곤 "수백만 명의 유권자에게 그들의 생각과 걱정, 희망, 도움 요청이 근거 없다고 말하고도 생존"한 민주주의는 없다고도 했다.

 

'방화벽'은 극우 정당과는 어떤 경우에도 협력하지 않겠다는, 독일 연방의회 원내정당들의 원칙이자 금기다. 이렇게 보면, 밴스는 AfD를 배척하는 독일 주류 정치권을 대놓고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이런 스탠스는 이날 뮌헨 시내에서 진행된 AfD의 알리스 바이델 공동대표와의 회동에서 확인됐다. 밴스는 현직 총리인 올라프 숄츠는 따로 만나지 않았다.

 

앞서 트럼프의 측근으로 '정부효율부'(DOGE) 수장인 일론 머스크는, 바이델 공동대표와 'X'에서 라이브 대담을 하고, 지난달 25일 AfD 유세에서 화상으로 지원 연설에 나서 독일을 자극했다.

한편, 최근 여론조사에서 AfD는 20%가 넘는 지지율을 보여, 이번 총선에서 2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지만, '방화벽'에 막혀 연립정부 참여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 나치 옹호발언으로 유럽의회 정치그룹에서 퇴출된 독일의 극우 '독일대안당'(AfD) 지도자와 당원들이  9일유럽의회 선거에서 승리한 것을 자축하고 있다. 2024. 06.09 [AFP=연합뉴스]

 

 

 

르 몽드 "동맹국 미국, 서방 분열시켜"

독일 "미국, 우리와 매우 다른 세계관"

 

프랑스 르 몽드도 '뮌헨에서 JD 밴스, 이념 전쟁 선언'이란 기사에서, 밴스는 유럽의 최대 위협은 러시아나 중국이 아니라 "가장 근본적 몇몇 가치에서 유럽의 후퇴"를 지목했다면서 "위대한 동맹국인 미국은 서방을 분열시키고 파트너들에게 등을 돌렸다"고 풀이했다.

이어 "밴스는 유럽 민주주의 체제들이 언론과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고 비난했다"고 덧붙였다.

 

총선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끔찍했던 나치의 과거 범죄를 아무것도 아닌 듯 여기는 AfD를 미국 부통령이 노골적으로 옹호하자, 독일은 "외부 간섭"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숄츠 총리는 연설을 통해 "(외부 간섭은) 특히 우방과 동맹국 사이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며, 우리는 강력히 거부한다"고 말했다.

이어 "독일은 매우 강력한 민주주의 국가로,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에서 극우파는 배제돼야 한다. 그들과 협력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방화벽' 고수 의지를 확인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속할지는 우리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고 말해, 유럽에서 트럼프의 '새 보안관' 역할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도 "미국의 새 행정부는, 세월을 두고 구축된 기존 규칙과 파트너십, 또는 신뢰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우리와는 매우 다른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제질서에서 우리는 주체이지 객체가 아니다"라면서 '헤드라이트 앞의 사슴'처럼 "우리는 두려운 나머지 얼어붙어 있어선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국방부 장관도 "조금 전 미국 부통령이 유럽 전체의 민주주의를 의심하는 발언을 했다"며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그는 유럽의 상황을 일부 권위주의 정권에서 만연하는 상황과 비교했는데,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가세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 플로리다주 데이토나 비치에서 열린 미국 자동차 경주대회인 '데이토나 500'에 참석하고자 대통령 전용기에서 내리고 있다. 2025. 02. 16 [로이터=연합뉴스]

 

 

 

무다랄리 "유럽-미국 단층선 드러내,

대서양 양안 간 새 주먹다짐 싹 터"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뮌헨에 모인 유럽 당국자들이 밴스의 발언을 "부당하고 사실이 아닌 주장"이라고 반발했고, 한 유럽 외교관은 "완전히 미쳤다. 아주 위험하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나토와 우크라이나 얘기를 듣고자 했던 청중들이 민주주의 '강의'를 들었다고 조롱했고, 영국 BBC도 "러시아에 굴복하지 않으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방안과 유럽의 방위비 지출 확대 방안이 주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유엔 주재 레바논 대사를 지낸 아말 무다랄리 박사는, 아랍뉴스 15일 자 기고를 통해 밴스의 연설을 직접 참관했다면서, 이번 뮌헨안보회의는 "우크라이나와 국제질서, 대서양 양안 관계를 두고 유럽과 미국 간 단층선을 드러냈다"고 진단했다.

무다랄리는 유럽이 "훨씬 더 강하고 더 포퓰리스트적인 미국 행정부 시대"를 맞이해 관계 설정에 고심하고 있다면서 "이런 두려움은 특히 독일엔 실제적이다"라고 지적했다.

 

밴스의 AfD 지원과 관련해 그는 "유럽은 미국의 선거 개입이라 여기고, 미국은 대중의 목소리가 중요하다는 신성한 원리에 기초한 민주주의를 수호한다고 부르는 새로운 시대"라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대서양 양안 간에 알 수 없는 새로운 주먹다짐이 싹트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이유 에디터yooillee22@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