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광장에 나온 종교와 언론

道雨 2025. 2. 21. 10:24

광장에 나온 종교와 언론

 

 

 

언론에 성역은 없다지만, 언론이 쉽게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는 대상이 있다면, 바로 종교인 듯하다. 특히, 극단적 사이비 종교나 이단 종파가 아닌, 이른바 4대 종교의 정규 종단이라면, 이에 대해 언론이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것은, 사실상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를 기대하는 것같이 찾아보기 어렵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특정 종파 하나만 살짝 다뤄도, 해당 언론사가 각종 시위와 민원으로 홍역을 겪는 게 다반사이다 보니, 무조건 종교 문제는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것이 우리 언론계의 암묵적 상식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강조할 필요도 없겠지만, 여러 국가가 일찌감치 헌법을 통해 종교와 정치의 분리 원칙을 명시하고 있듯이, 애초에 근대 국가 자체가 정교분리의 원칙 위에서 자리 잡은 것이다.

정교분리란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여 국가 운영의 합리성을 보장하기 위한, 민주공화국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원칙은 원칙일 뿐, 칼로 무 자르듯이 종교의 세계와 세속 정치의 영역을 깔끔하게 나눌 수는 없는 것이 실제 현실 모습이다.

이슬람 국가들이나 제정분리가 되어 있지 않은 일부 국가들은 논외로 하더라도, 미국에서도 대통령이 취임할 때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하는 취임식 장면은, 종교가 현실 정치의 한복판에서 여전히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록 기독교가 국교로 지정되어 있지 않더라도, 미국의 탄생에서부터 현재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까지 역사적으로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해왔던가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이런 현실론을 떠나서, 보다 근본적으로, 종교와 정치가 필연적으로 ‘좋은 삶’(good life)과 ‘공공선’(public good)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판단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현실의 윤리 판단 영역에서 서로 완전히 분리되기 어려운 것으로 보는 게 보다 합리적 이해일 듯싶다.

 

 

이렇듯 정치와 종교가 근본적으로 분리되기 어려운 것이라면, 정교분리란 실제로는 절대적 원칙의 문제이기보다는 각 국가가 가진 문화와 규범의 문제일 것이다.

 

예를 들어, 극우 목사이든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든, 종교인이 개인적 신앙과 믿음을 갖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성명을 발표하거나 사회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우리 문화에서 정치적이라고 배척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종교인들이 자신의 신앙적 신념을 실현하기 위하여, 우리의 국가적 체계를 훼손하거나, 타인을 강압적으로 억압하는 것까지를 종교 영역으로 보호하는 것은, 규범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것일 것이다.

즉, 국가가 개인의 믿음과 삶의 양심을 강요할 수 없듯이, 종교가 국가적 체계를 통해서 자신들의 신앙적 믿음을 강요하여 국가 공동체의 이성적 정치판단을 가로막는 것은, 우리의 정교분리 문화와 규범 속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정치와 종교가 근원적으로 구분될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적어도 우리가 신정 국가가 아닌 이상, 종교적 신념이 세속 국가를 지배하는 상위의 규범이거나 운영원리가 될 수 없는 노릇이다.

 

주말마다 광화문, 대구, 광주에서 신앙과 정치가 뒤섞여 만들어내는, 우리 국가 체계에 대한 공격과, 타인에 대한 노골적 혐오 표현을 보면, 이제 더 이상 이를 일부 이단 종파의 문제로 묵과하고 갈 수는 없는 일인 것 같다.

 

정교분리가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것은, 종교의 세속에 대한 참여와 개입을 모두 부정하지 않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종교의 사회적 참여가 국가 공동체의 이성적 판단을 가로막거나 합의된 공동선을 훼손하는 경우에는, 이에 대한 사회적 비판과 책임의 대상에서 예외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종교가 현실 정치권력의 일부로서 작용하고자 한다면, 민주적 운영원리와 공론장의 원칙 위에서만 작용하여야 하고, 이는 다른 사회적 권력과 마찬가지로 상호 감시되고 견제되어야 한다.

 

정교분리의 도식적 구분 속에서, 우리는 종교 문제라면 무조건 회피하는 소극적 모습을 보여왔던 것 같다.

여기에 언론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가의 헌법적 체계가 위협받는 지금, 다른 사회 권력에 대한 감시와 마찬가지로, 종교단체가 발휘하는 세속 권력에 대한 언론의 적극적 감시가 어느 때보다도 요구된다.

언론이 종교의 정치적 발언을 억제하여야 한다는 게 아니라, 민주적 규범 속에서 용납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언론의 비판과 견제가, 종교를 대상으로도 마땅히 적용되길 바란다.

 

 

 

홍원식 | 동덕여대 ARETE 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