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치하’ 언론계는 늘 계엄이었다
‘윤석열 치하’ 언론계는 늘 계엄이었다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선포 당시 계엄사령부가 발표한 포고령에는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 선동을 금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왠지 귀에 익지 않은가. 그렇다. ‘내란 수괴’ 윤석열 전 대통령이 틈만 나면 내뱉었던 말들이다.
“가짜뉴스와 허위 조작 선동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2023년 10월, 재향군인회 창설 71주년 기념식 축사)
“가짜뉴스에 기반한 허위 선동과 사이비 논리는 자유 사회를 교란시키는 무서운 흉기다.”(2024년 8월, 광복절 경축사)
윤 전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되뇐 가짜뉴스와 선동이 뭘 의미하는지는 자명하다. 자신과 아내에 대한 비판이다.
그가 깃발을 치켜든 ‘가짜뉴스와의 전쟁’은 철저하게 ‘비판 언론 때려잡기’로 귀결됐다. 애초 좌표가 그렇게 설정돼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 선포 당일 문화방송(MBC), 제이티비시(JTBC), 경향신문, 한겨레를 콕 집어 봉쇄와 단전·단수를 지시한 것도 그리 놀랍지 않다.
이걸로는 성이 안 찼을까. 포고령에는 권력의 치부를 끊임없이 들추는 언론을 향한 적개심이 깊게 배어 있다. 모든 언론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아야 하며, 포고령 위반자는 ‘처단’한다고 했다. 애완견처럼 굴지 않으면 치도곤을 당할 줄 알라는 겁박으로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언론계, 특히 권력이 불편해할 만한 보도를 해온 언론사들에게 ‘윤석열 치하 1000일’은 늘 비상계엄 상태였다. 검찰과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이 계엄군 노릇을 대신했을 뿐이다.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투입된 군인들은 “소극적인 임무 수행”(헌법재판소 결정문)으로 부당한 지시에 저항했지만, 검찰과 방통위 등 ‘문민 계엄군’은 수괴의 지시를 충성스럽게 이행했다.
언론을 겨냥한 ‘비상조치’는 두 갈래로 이뤄졌다.
권력 비판 보도에 대한 직접적인 처벌과 공영방송 장악이다.
검경의 수사, 방송심의를 빙자한 사실상의 보도 검열, 인사권 등이 비판 언론의 손목을 비트는 무기로 십분 활용됐다.
검찰은 2022년 대선 당시 나온 윤석열 후보 검증보도를 ‘대선개입 여론조작 사건’으로 몰아, 언론사 다섯곳을 1년 가까이 탈탈 털었다. ‘대통령 심기 경호 수사’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 밖에 김건희 여사의 대통령 관저 이전 개입 의혹 등, 윤 전 대통령 부부의 심기를 건드리는 보도가 나올 때마다 ‘언론 입틀막’ 수사가 이어졌다. 기자 사무실과 주거지 압수수색도 다반사였다.
대선 전인 2021년 11월, 김 여사가 비판적인 언론을 거론하며 했다는 “내가 정권 잡으면 거긴 무사하지 못할 거야”라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방심위는 계엄사 포고령에도 언급된 ‘언론 통제’의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윤 전 대통령의 ‘바이든-날리면’ 비속어 발언 등 정권 비판 보도에 전례 없는 최고 수위의 법정제재를 잇따라 내렸다. 방심위가 꾸린 선거방송심의위원회도 역대급 법정제재를 쏟아냈다. 보수 언론마저 우려 목소리를 낼 정도였다.
방심위와 선방위가 내린 터무니없는 법정제재는 법원에서 연전연패를 기록하는 중이다.
공영방송 장악 과정에는 검찰, 감사원, 방통위, 국민권익위원회 등 국가기관이 총동원됐다. 수신료 통합징수 폐지, 민영화, 지원금 중단 등 재원과 소유구조를 흔드는 치졸하고 극악스러운 수단을 쓰기도 했다.
‘대통령의 술친구’ 박민과 ‘파우치 앵커’ 박장범이 사장 자리를 잇달아 꿰차는 사이 한국방송(KBS)은 ‘정권 나팔수’로 전락했다. 문화방송이 법원의 제동 덕에 정권 수중에 떨어지지 않은 게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그게 못내 아쉬웠을까. 윤 전 대통령은 계엄 당일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문화방송을 ‘접수’하라고 지시했다.
‘내란 수괴’가 파면됐으니 이제 다 괜찮아진 걸까.
그렇지 않다. 지난 3년간의 적폐가 너무 뿌리 깊다.
이진숙 방통위와 류희림 방심위는 ‘합의제 기구’의 본분을 몰각한 채, 내란 수괴가 임명한 위원들끼리 파행 운영을 지속하는 중이다. 앞으로도 어떤 농단을 부릴지 알 수 없다.
박장범의 한국방송은 내란 세력의 눈치를 보느라 바쁘다. 이들이 있는 한 언론 자유는 여전히 위태롭다.
내란 수괴가 쫓겨난 뒤, 언론 탄압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반민주 세력이 다시는 언론 자유를 농단하지 못하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일이다. 지난 3년간 허술한 제도의 폐해를 충분히 봤지 않는가.
곧 대선이다.
공영방송 지배구조와 방송통신 심의 제도 등, 미디어 거버넌스 개혁에 나서도록 시민사회가 정치권을 압박해야 한다.
이종규 | 저널리즘책무실장
저널리즘책무실장 jk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