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상호관세 발동 유예로 급선회한 까닭
트럼프가 상호관세 발동 유예로 급선회한 까닭
주가, 달러, 국채가격 동시 하락의 ‘트리플 약세’
주가 폭락 손실 메우려 헤지펀드들 보유 국채 매각
세계 2위 미 국채 보유국 중국이 팔기에 나서면?
일본과 유럽, 동남아 등도 ‘미국 팔기’ 자세전환
서머스 전 재무 “상호관세, 금융위기 촉발할 수도”
장기적 불안재료는 자본의 ‘미국 이탈’ 우려

전례없는 고율의 상호관세 발동 뒤 주가가 폭락하고 달러 시세도 떨어진데다 미국 국채마저 가격이 떨어지고 금리가 올라가는 이른바 ‘트리플 약세’에 놀란 트럼프 정권이 상호관세 발표 하루도 지나지 않아 90일간 유예(중국 제외) 조치까지 취했으나 시장은 안정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9일의 상호관세 유예 조치로 잠시 반등했던 주가는 10일 다우 공업주 30종 평균주가가 한때 주당 2100달러나 빠지는 급락세를 보였으며, 달러 시세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지금 1달러=140엔대 중반을 오가는 일본 엔 강세도 이와 같은 달러 시세의 하락 덕이라고 할 수 있다. 원화도 달러 대비 강세를 보이고 있다.
주가, 달러, 국채가격 동시에 하락의 ‘트리플 약세’
이 때문에 트럼프 정권의 일관성 없는 조령모개식 정책이 야기한 불확실성과 신뢰 저하가 자본의 미국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0일 백악관은 “중국에 대한 추가관세 세율은 총 145%”라며, 전날 발표한 125% 세율을 더 상향조정해서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 주가 하락은 가속됐다. 145%로의 상향조정이 미국 중국의 무역전쟁을 더욱 격화시켜 경기악화를 부를 것이라는 시장의 경계감이 커졌고, 다우 평균주가는 주당 상승폭이 사상 최고치인 3000달러 가까이까지 갔던 전날의 급등세가 불과 하루만에 1014달러(2.5%)나 떨어지는 하락세로 마감했다.
골드만삭스의 분석가 도미니크 윌슨은 “정책의 불투명성이 여전히 매우 높아, 소비자와 기업활동을 짓누르고 있다”며, 트럼프 정부가 상호관세 추가부분을 일시 발동정지(유예)한 뒤에도 “미국의 경기후퇴 리스크는 여전히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자산을 매입해 온 해외 투자자들이 “미국의 법제도와 정책의 불투명성에 계속 의구심을 품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미국 장기 국채와 달러 시세 하락 압력이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일본경제신문> 4월 11일)

서머스 전 재무장관 “트럼프 관세, 금융위기 촉발할 수도”
하루 전인 9일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재무장관은 “지난 24시간 동안 벌어진 사태는, 미국의 (잘못된) 관세정책으로 우리가 심각한 금융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걸 시사하고 있다”고 X(예전 트위터)를 통해 경고했다.
10일 미국 장기금리의 지표가 되는 10년물 국채 이자는 4.4% 전후로 움직였다. 3월의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세는 시장의 예상을 밑돌아, 관세의 영향이 본격화하기 전에 인플레가 재연될 것이라 예상했던 시장의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으나, 장기금리는 일시적으로 내려간 뒤 꾸준히 올라가기 시작해 지난 주말보다 0.4%p 정도 상승했다.
<닛케이>에 따르면, 재정운영의 핵심요소인 미국 국채의 발행잔고는 28조 달러(약 4경 96조 원)를 넘어, 세계최대의 금융상품 역할도 하고 있다. 미국 장기금리는 미국의 주택 대출을 비롯한 전 세계의 금리동향에 영향을 끼치며, 금융기관이 국채를 담보로 단기자금을 융통하는 등 금융 인프라도 떠받치고 있다. 따라서 금리 급등을 수수방관할 경우 금융시장이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이 경고한 것도 그 때문이며, 트럼프 정부가 서둘러 상호관세 시행을 유예한 것도 그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의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급격한 관세인상에 대한 불안이 미국 주가 급락을 초래한다 하더라도 금리 인하가 “(투자자 중심인) 월스트리트가 아니라 (기업이나 소비자를 가리키는) 메인스트리트를 도울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는 지난 6일 “금리는 연초 이후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어서 주택 대출 신청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낙관했으나, 상호관세 조치 발표 이후처럼 금리 상승이 멈추지 않을 경우 그 기대는 무산될 수 있다.


주가 폭락 손실 메우려는 헤지펀드들 보유 국채 매각
상호관세 발표 이후 미국 주가가 역사적 급락세를 보이면서 운용자산 리스크(위험)를 완화하거나 현금을 확보할 필요가 커진 기관투자자들이 본래 ‘안전자산’이었던 미국 국채를 서둘러 매도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미국 국채는 경제위기 때 세계의 자금들이 안전자산인 이를 매입하면서 가격이 올라간다(이자는 하락).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조치를 발표한 지난 2일 이후 한 주간 미국 국채 매입세가 형성되면서 국채이자는 내려갔다. 그런데 9일 상호관세가 발동되면서 채권가격은 급락했다. 상호관세 발표 뒤 멈추지 않는 주가 하락으로 거액의 손실을 떠안게 된 헤지펀드들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보유 국채를 서둘러 팔아 현금화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 때의 대규모 금융완화로 풀린 돈을 거두어 들이기 위해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보유 채권을 방출하기 시작한 2022년 이후 미국 국채시장에 헤지펀드들이 대거 유입됐다. 국제통화기금(IMF) 추산에 따르면, 헤지펀드들의 미국 국채 보유량은 2021년에 시장 전체의 2~3%에 지나지 않았으나, 2024년 여름에는 11%까지로 급증했다.
국채가격 하락으로 민간은행들도 큰 손실
헤지펀드들의 미국 국채 대량 매도는 국채가격을 떨어뜨리고, 이는 민간은행의 보유채권에도 손실을 안긴다. 미국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따르면, 이로 인해 미국 은행들이 떠안은 보유채권의 손실분은 2024년 말 4824억 달러(약 691조 원)이나 된다. 헤지펀드들의 국채 매도가 계속될 경우 바로 금융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고 서머스 전 장관이 경고한 이유 가운데 하나이고, 트럼프 정부가 황급히 상호관세 시행 유예를 결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장기적 불안요소는 자본의 ‘미국 이탈’ 우려
시장 참가자들이 불안해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해외 자본이 미국을 떠나가는 것이다. 10년물 미국 국채 입찰을 앞둔 지난 9일에는 “아시아의 중앙은행들이 입찰을 꺼리는 것 같다”는 소문이 시장에 나돌았다. 유럽의 부유층 자금을 운용하는 영국의 운용회사는 고객들의 요구에 따라 올해 초부터 미국 자산을 수조 원 단위로 매각하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 정권의 강경한 경제, 외교 자세에 불안을 느낀 해외 투자자들의 미국 이탈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 2위 미 국채 보유국 중국이 팔기에 나선다면?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의 움직임이다. 중국은 지난 1월 현재 약 7600억 달러어치의 미국 국채를 보유한 세계 2위의 미국 국채 투자국이다. 시장에서는 미국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중국 인민은행이 미국 국채 매도에 나서고 있다”는 소문이 미국 자산운용회사들 사이에 돌고 있다. 유럽의 대형 채권 헤지펀드들도 중국이 금융을 무기로 활용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얘기들을 하고 있다. 무역전쟁이 금융전쟁으로 확전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과 유럽, 동남아 등도 ‘미국 팔기’ 자세전환?
세계 1위의 미국 국채 투자국인 일본의 투자자들도 지금 신중하게 자세전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일본 재무성 통계에 따르면 일본 투자자들은 미국 국채를 중심으로 한 외국 채권 매도초과분(매도에서 매입분을 뺀 차액)이 지난 주에 약 2.5조 엔(약 25조 원)으로, 5개월만에 가장 컸다. 사는 쪽보다 파는 쪽이 더 많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동남아시아와 신흥국들도 지금의 통화체제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 인도네시아 통화 루피아는 지금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고, 베트남 등의 통화 시세도 크게 내려가고 있다. 국제무역 관계자는 “동남아 지역에도 금융위기 리스크가 스며들기 시작했다”며 경계했다.(<닛케이> 4월 10일)
미국 국채시장은 상호환세의 유예 조치에도 호전되지 않고 있다. 9월의 장기금리는 4.3% 전후로, 지난 주말보다 0.4%p나 높아진 상태다. 달러 시세는 계속 떨어지고 있고, 주가는 잠시 상승하면서 투자자들의 불안심리가 잠시 완화되는가 했으나 다시 급락했으며, 미국 국채 매도 압력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데변인과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의 주장대로 “이 또한 트럼프의 계산 속에 이미 다 들어 있던 것”이라고 해서 해소될 수 있는 사태는 아닌 듯하다.
한승동 에디터sudohaan@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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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역린, 중국의 루비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진정해, 모든 게 다 잘될 거야”라는 짤막한 글을 올린 것은, 미국이 세계 57개국에 비상식적인 ‘상호 관세’(한국엔 25%)를 부과하기 시작한 지 9시간 반쯤 지난 9일(현지시각) 오전 9시37분이었다.
그는 자신이 내린 결단에 자신이 있었는지, 4분 뒤엔 “지금이 바로 (미국의 주식·채권을) 사들일 때”라는 추가 글을 올렸다.
그로부터 4시간이 지나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은 말 그대로 ‘굴욕적’인 후퇴를 선택하게 된다.
정오께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3인 회동을 한 뒤, 오후 2시18분께 10%의 보편 관세는 즉시 시행하되 “상호 관세는 90일 유예하기로 했다”(중국은 제외)는 취지의 글을 썼다.
트럼프는 “사람들이 왈왈 짖어대고(yippy) 조금 겁을 먹었다(a little bit afraid)”고 말했다.
미국인들이 왈왈 짖고, 겁을 먹은 것은, 상호 관세의 영향으로 세계 최고 ‘안전 자산’으로 여겨지던 미 국채 가격이 ‘급락’(금리 급등)했기 때문이다.
불과 1주일 전까지만 해도 3.9%였던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관세 부과 이후 무려 4.5%까지 뛰어올랐다.
미 국채 금리가 급등하면, 정부의 이자 부담과 미국 은행들이 들고 있는 국채의 평가손이 폭증하게 된다. 그 결과는 “미국에 심각한 금융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는 것이다.
오만한 트럼프마저 깔끔하게 무릎을 꿇으며, 미국의 ‘급소’가 전세계에 노출됐다.
앞으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미국과 퇴로 없는 ‘관세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의 동향이다.
중국의 미 국채 보유액은 올 1월 현재 7608억달러, 홍콩 것까지 합치면 무려 1조167억달러에 이른다. 일본(1조793억달러)에 이은 세계 2위다.
미국과 1995년 자동차 관세 문제로 치열한 협상을 벌였던 하시모토 류타로 전 총리는, 2년 뒤 미국 컬럼비아대 연설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우리는 몇번이고 미국 국채를 팔고 싶은 충동에 빠진 적이 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30년 전 하시모토가 했던 생각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못 할 리 없다.
일본은 동맹인 미국을 상대로 차마 그런 선택을 할 순 없었지만, 중국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
중국이 결단하면, 미국은 이를 중국판 ‘진주만 공습’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 국채 매각은 미국의 역린이자, 중국엔 개전의 각오 없이 넘어선 안 될 진정한 루비콘이다.
길윤형 논설위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