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협상’ 시한부 정권이 할 일은 속도조절
‘관세 협상’ 시한부 정권이 할 일은 속도조절
트럼프 ‘관세 태풍’이 한반도에도 불어닥치고 있다.
보편관세 10%, 상호관세 25%, 여기에 더해 자동차, 철강 등 품목별 관세까지 들고나왔다. 구매력을 무기화한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관세가 바로 일자리요, 국가안보인 동시에 세수인 셈이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고압적이고 파격적인 거래주의는 미국과의 협상을 더 예측 불허로 만든다.
지난 4월8일 트럼프 대통령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간의 28분간 전화 통화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러나 통화 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트럼프의 메시지는 불길한 예감을 준다.
관세 문제를 한국의 대미 흑자, 조선 부문 협력, 미국 액화천연가스(LNG) 구매, 알래스카 가스 파이프라인 사업 합작 투자, 그리고 미국의 군사 보호 비용 등과 연계하여 신속하게 ‘일괄 타결’(one-stop shopping)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의 고위 협상대표단이 워싱턴에 오는 중이라는 사족까지 달았다.
이에 부응하듯 우리 정부는 최상목 부총리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이번주 방미 계획을 발표했다. 신속한 파견 결정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협상 속도와 내용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현 정부는 ‘궐위 기간’의 한시 정권이다. 과욕 부리지 말고, 곧 들어설 차기 정부에 협상의 상당 부분을 넘기는 게 바람직하다.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한덕수 대행 체제와 속전속결로 ‘딜’의 마무리를 희망하겠지만, 이러한 합의를 새 정부가 이행하지 못할 시 한-미 관계는 더 큰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러한 한국의 내부 사정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일본 등 다른 국가들이 협상하는 것을 보고 차분히 대응해도 늦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의 ‘원스톱 쇼핑’ 제안도 신중히 살펴봐야 한다. 우리에게는 일괄 타결 방식보다는 부문별 분리대응(de-packaged)이 유용해 보인다.
우선 관세 문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틀에서 상식과 순리대로 풀어나가야 한다. 미국이 요구하는 비관세 장벽 철폐 요구는 전향적으로 수용하자. 하지만 미 관세의 부당함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따져야 한다.
지난 한해 우리가 662억달러의 대미 상품수지 흑자를 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서비스 부문에서 우리의 대미 적자는 107억달러에 이르고,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게다가 최근 대한항공은 보잉사와 327억달러의 구매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특히 2023년 기준 한국은 대미 최대 투자국이다.
트럼프 2.0에 들어와서도 현대자동차 그룹이 200억달러 이상을, 그리고 엘지그룹과 에스케이하이닉스도 각각 200억달러와 38억7천만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기로 했다.
한국 내 자본과 기술, 그리고 일자리의 공동화 현상을 우려하는 사회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강력히 부각해야 한다. 여기에 조선 분야 협력과 엘엔지 구매 카드를 활용하면, 관세 협상에 대한 합리적 타결이 어느 정도 가능하리라 본다.
그러나 440억달러 이상 소요되는 알래스카 가스 개발사업은 면밀한 검토가 요구된다. 알래스카주 정부가 2010년 알래스카 가스개발공사(AGDC)를 설립하고 지금까지 거의 5억달러 가까운 예산을 이 사업에 투입했는데도 진전이 없다. 채산성, 시공상 애로점, 그리고 환경 규제 등 다양한 문제가 산적해 있다.
방위비 분담 건도 별개의 의제로 다루어져야 한다. 지난해 10월 한-미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SMA) 협상에서, 우리 정부는 2026년부터 매년 1조5192억원(약 11억달러)을 부담하기로 미국 쪽과 합의했다. 이는 2025년 대비 8%가 증액된 수치다. 아무리 정권이 바뀌었다 해도 동맹 간 합의를 정당한 사유 없이 일년도 안 되어 파기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의 매년 14조5천억원(100억달러) 분담 요구는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를 위해선 양국 간 특별협정 개정은 물론 국회의 승인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요구하는 방위비 분담금 전액을 수용하여 관세 문제도 해결하고 한-미 동맹을 공고히 하자는 일부의 주장은 다분히 비현실적이다.
‘지난 50년간 갈취당한 것을 복원해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기조로 봐, 미국의 압박은 이번 관세 협상으로 끝나지 않고, 환율, 국채, 국가안보 등 여러 분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를 염두에 두고 대미 협상에 임해야 한다. 잔여 임기 40여일의 시한부 정권이 무리수를 두어서는 안 되며 상황이 어려울수록 정도를 걸어야 한다. 최악의 사태에도 대비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 전체가 하나가 되어 응원해줄 것이다.
문정인 | 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