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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이재명식 ‘재생에너지-원전 믹스’가 답이다

道雨 2025. 5. 30. 11:31

지금은 이재명식 ‘재생에너지-원전 믹스’가 답이다

 

 

 

대선후보들의 TV토론에서 원전을 둘러싸고 공방이 벌어졌다.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내란 청산을 통한 민주주의 회복, 민생경제 회복이 꼽히지만, 에너지 정책의 정상화 역시 시급하다. 그 중심에는 재생에너지와 원전 정책이 있다.

직전 정부들은 원전을 놓고 ‘탈원전’과 ‘원전올인’ 사이에서 롤러코스터를 탔다. 이념과 진영 논리를 앞세운 정치논리에 빠져 현실성과 합리성을 소홀히 했다.

그 사이 기업에 필수인 재생에너지의 성장동력이 약화했다.

 

삼성전자·현대차 등 기업들은 2050년까지 사용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국제 캠페인인 아르이(RE)100에 가입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부족으로 국내 이행률은 10% 중반대에 불과하다.

이렇다 보니 신규공장을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해외에 짓고 있다. 에너지 정책의 실패가 낳은 참사다.

 

6·3 대선은 에너지 정책을 정상화하는데 어느 후보가 더 적합한지 유권자들이 판단할 기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재생에너지를 늘리고, 기존 원전과 수명연장이 가능한 원전은 계속 쓰는 ‘에너지 믹스’ 정책을 제시했다.

반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원전 비중을 현재의 두배인 60%로 늘리는 정책을 내놨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도 원전 확대에 동조한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는 2040년까지 원전 철폐를 주장했다.

이재명 후보가 원전확대와 탈원전 양쪽으로부터 협공당하는 모양새다.

 

 

최근 에너지 정책과 관련해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사건이 잇달아 일어났다.

 

먼저 대만이 지난 17일 40년 수명이 다한 마지막 원전 마안산 2호기의 가동을 중단했다. 2016년 탈원전 정책을 처음 공식화한 후 9년 만에 탈원전을 완료한 것이다.

23일에는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전력수요 급증을 이유로 원전 확대를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향후 25년 동안 원전 설비용량을 현재의 4배인 400GW로 늘리는 내용이다.

1979년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이후 사실상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해온 미국이 급선회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전세계 에너지 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에너지 공급 불안과 가격 급등, 인공지능(AI) 혁명이 겹치면서, 독일·대만처럼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면서 탈원전을 계속 고수하는 흐름과, 일부 유럽국가나 미국처럼 재생에너지 확대와 원전 활용을 병행하는 흐름으로 갈렸다.

 

우리는 우리 상황과 조건에 맞는 에너지정책을 찾아야 한다.

 

한국과 유사점이 많은 대만은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두나라 모두 인접국과 전력망 연결이 안되는, 고립된 ‘에너지의 섬’이다. 독자적인 전력시스템 관리가 중요하다.

또 전력소비가 많은 정보기술(IT)이 주력산업이어서, 안정적 전력공급이 긴요하다.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티에스엠씨(TSMC)가 사용한 전력량은, 2023년 기준 대만 전체 전력 소비량의 9%에 달한다. 한국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회사가 5~6%를 차지한다.

산업 경쟁력을 위해 전기를 값싸게 공급해 온 것도 비슷하다. 200조원이 넘는 한전 부채는 그 결과물이다. 대만전력공사의 부채도 120조원을 넘는다.

 

원전은 값싸고 안정적인 전력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데 유리하다.

대만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원전 비중이 50%를 넘었다. 하지만 민진당 주도로 과감하게 탈원전으로 선회했다. 1987년 난초섬 핵폐기물 처분장 비밀 건설 발각,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영향이 컸다.

대신 대만은 재생에너지 선도국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해상풍력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비율을 올해까지 20%로 확대하고, 2050년에는 최대 60%까지 높일 계획이다. 이는 한국처럼 수출 중심 경제구조를 가진 대만의 전략적 선택이기도 하다.

 

탄소 배출이 많은 제품에 관세 등 불이익을 주는 선진국의 ‘탄소 무역장벽’이 갈수록 노골화하면서, RE100 이행을 위한 재생에너지 확보가 더욱 중요해졌다.

TSMC는 RE100 달성 목표시한을 2050년에서 2040년으로 앞당겼다. 대만 정부의 적극적인 재생에너지 정책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도 대만처럼 탈원전이 대안일까?

에너지 정책은 경제성과 안정성 모두 중요하다. AI, 데이터센터 등의 전력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는데, 전체 전력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원전을 갑자기 없애는 것은 부담이 크다.

 

선진국은 이미 재생에너지의 균등화발전단가(LCOE)가 원전보다 싸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재생에너지 단가가 원전의 5~6배에 달한다. 전기요금 정상화(인상)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탈원전으로 인한 요금 인상 압박은 큰 제약이다.

원전을 대체할 재생에너지의 확대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2030년 신재생에너지 목표인 21.7%의 달성도 쉽지 않은 형편이다.

 

 

그럼 원전 확대론이 해답일까?

김문수 후보가 주장한 원전 비중 60%는 프랑스를 제외하면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현재도 전세계 평균 원전 비중 10%의 3배다. 윤석열 정부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설정한 2030년 원전 비중(31.8%)과도 상충한다.

또 원전을 주력 에너지를 삼는 것은, 재생에너지를 주력으로 하는 일반 선진국의 정책과 어긋난다.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지난해 10.6%로,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턱없이 낮다.

사업의 존속이 RE100 이행에 달린 기업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도 김 후보는 “RE100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억지를 부린다. 그의 ‘친기업’ 구호가 진심인지 의심스럽다.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와 경직성 전원인 원전이 동시에 늘어나면, 전력시스템의 안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도 전력수요가 줄어드는 주말마다 원전 발전량을 줄이고 있다.

스페인 사태에서 보듯이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하면 전국이 일순간에 마비될 수 있다. 현 상태에서 원전 추가 확대는 ‘에너지 자살행위’가 될 수 있다. 

 

 

김문수 후보는 지난 26일 내놓은 대선공약집에서, 갑자기 원전 비중 목표를 35%로 낮췄다. 스스로 ‘원전 60%’는 무리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재 건설 중이거나 건설을 준비 중인 원전만 4기에 달한다. 원전비중이 더욱 높아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더욱이 윤석열 정부는 3기의 대형 원전 신설 계획까지 세웠다.

 

지금은 탈원전이나, 원전확대 모두 위험부담이 크다. 앞으로 에너지 기술의 발달에 따라,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경제성과 안정성이 개선되면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다.

중장기 에너지 정책은 이런 미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조정해 가야 한다.

당장은 기존 원전을 안전하게 관리하면서,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데 힘을 쏟는 게 순리다.

재생에너지를 주력으로 하면서, 원전을 보조로 하는 이재명식 에너지 믹스가 최선은 아닐지 모르지만, 정답이다.

 

 

 

 

곽정수|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