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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경쟁 속 양자택일? 한국도 판을 바꿀 무기가 있다

道雨 2025. 6. 12. 15:02

미중 경쟁 속 양자택일? 한국도 판을 바꿀 무기가 있다

 

 

중국의 40년 대계, 희토류 전략의 교훈

 

 

지난 10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랭커스터 하우스에서 미국과 중국은 지난달 체결한 제네바 관세 합의를 다시 궤도에 올리는 '프레임워크'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희토류와 자석 수출 허가를 신속히 처리하기로 했고, 미국은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와 제트엔진 기술에 대한 수출 제한을 완화하기로 했다.

표면적으로는 무역 갈등의 휴전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이번 런던 합의는 일회성 협상이 아니다. 첨단기술과 자원, 산업 구조의 지각변동이 시작됐다는 신호다. 미중 갈등은 이제 관세 전쟁을 넘어 기술 패권 경쟁, 단순한 무역 마찰에서 공급망 주도권 다툼으로 전선을 넓히고 있다. 희토류와 반도체가 협상 테이블에 오른 것 자체가 그 변화를 보여준다.


우리에게 이 변화는 위기이자 기회다. 반도체 생산에서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동시에 희토류는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는 양측의 이해관계에 깊이 연결되어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에 보유한 공장은 어떤 영향을 받을까?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에 필요한 희토류는 앞으로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까?

단기적으로는 희토류 공급 불안이 다소 완화되고,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도 일부 회복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냉정히 직시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우리의 핵심 산업을 협상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현실 말이다. 오늘의 합의는 내일의 압박 수단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반도체 강국이지만 희토류 수입국이다. 이 비대칭 구조를 그냥 받아들일 것인가? 답은 분명하다. 우리도 우리만의 비대칭 전략 자산을 확보해야 한다. 기술과 자원을 전략 무기로 전환해야 할 때다. 이제는 남이 짠 판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판 자체를 바꾸는 전략이 필요하다.

중국의 희토류 40년 대계

이번 런던 합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지난 5월 체결된 제네바 합의부터 짚어야 한다. 당시 양국은 100%를 웃돌던 추가 관세를 90일간 10% 수준으로 낮추기로 했다. 하지만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서로를 비난했다. 미국은 중국이 희토류 수출 허가를 의도적으로 지연시킨다고 했고, 중국은 미국이 새로운 기술 수출 제한을 추가했다고 반박했다.

이번 런던 프레임워크는 이런 상호 불신을 완화하기 위한 시도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제네바 합의에 살을 붙였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큰 틀만 있을 뿐 구체적인 수량, 품목, 일정은 모두 미정이다. 양국 정상의 최종 승인을 기다린다는 점도 불확실성을 더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거래의 비대칭성이다.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채굴의 70%, 정제의 90%를 장악하고 있다. 특히 디스프로슘, 테르븀 같은 중희토류는 전기차, 국방 무기에 필수적인 소재이자 사실상 중국의 독점 품목이다.

반면 미국이 내놓은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와 제트엔진 기술은 일본이나 유럽 등에서도 일부 대체가 가능하다. 당분간은 물론, 가까운 미래에도 중국의 희토류 독점을 대체할 방법은 없다.

미국의 압도적 경제력과 군사력도 희토류 앞에서는 무력하다. F-35 전투기, 테슬라 전기차, 아이폰 모두 중국산 희토류 없이는 생산할 수 없다. 칼자루는 중국이 쥐고 있는 셈이다.

2010년 10월 31일 중국 장쑤성 롄윈강 항에서 작업자들이 희토류 원소를 포함한 토양을 운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결과가 우연일까? 아니다. 철저히 계산된 전략의 산물이다. 중국의 희토류 정책은 비대칭 전략의 전형이다. 1992년 덩샤오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고 선언했다. 이후 중국은 이 자원을 전략 산업으로 키워냈다.

먼저 저가 공세로 세계 시장을 잠식했다. 1980년대부터 환경 규제를 무시한 채 값싼 희토류를 대량 수출하며 경쟁자들을 하나둘 밀어냈다. 1992년 덩샤오핑의 희토류 전략산업 천명 이후 저가 물량 공세를 더 공격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2002년 미국의 마운틴패스 광산이 문을 닫았고, 일본과 프랑스의 정제 시설도 가동을 멈췄다.

이후 중국은 채굴에서 정제, 자석 제조까지 전 공정을 수직 통합하며 완결된 산업 생태계를 구축했다. 특히 정제는 중국이 독점하다시피 한다. 다른 나라에서 채굴된 희토류 원석도 결국 중국으로 가서 정제돼야 한다. 원석은 누구나 캘 수 있지만, 쓸 수 있게 만드는 기술은 중국만 갖고 있다.

마침내 중국은 이 자산을 무기화했다. 2010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 당시 일본에 대한 수출을 전면 중단했고, 희토류 가격은 7배 급등했다. 토요타는 생산 차질을 겪었다. 2019년 미중 무역전쟁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희토류 공장을 직접 시찰하며 '언제든 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 메시지는 명확했다. "우리가 멈추면, 당신들의 첨단산업도 멈춘다."

이것이 바로 비대칭 전략의 본질이다. 모두가 가질 수 없는 것을 나만 가짐으로써 판을 바꾸는 것. 군사력도, 경제 규모도 아닌 전략적 자원 하나로 상대의 숨통을 조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중국의 전략을 지켜보면서도 여전히 '대칭적 대응'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반도체 동맹을 요구하면 곧바로 동참하고, 중국이 경제 보복을 하면 즉각 맞대응하는 방식이다.

이런 일대일 대응으로는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미국의 자본력도, 중국의 시장 규모도 우리가 따라잡을 수 없다. 그렇다면 해답은 무엇인가. 양쪽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생존 전략이다.

K-초격차 40년 전략 필요

반도체, 배터리, 조선, 그리고 K-콘텐츠. 이들을 단순한 수출 품목이 아니라, 국가 전략 자산으로 활용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특히 고대역폭 메모리(HBM)는 인공지능 시대의 '희토류'라 불릴 만큼 핵심이다. 엔비디아의 최신 인공지능(AI) 칩은 삼성과 SK하이닉스가 공급하는 HBM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 기술 우위를 전략적 핵심 통제 수단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중국이 수출 허가제를 도입할 때도 우리는 '고객이 왕'이라는 생각에 머물러 있었다.

배터리도 마찬가지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가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30%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전고체 배터리는 우리가 쥔 몇 안 되는 치명적 우위다. 하지만 원료인 리튬과 코발트는 여전히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이를 탈피하려면 자원 부국과의 직접 협력 강화와 재활용 기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라는 두 축이 병행되어야 한다.

조선업의 경우, 한국 조선 3사는 세계 액화천연가스(LNG)선의 80% 이상을 건조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조선 기술을 넘어 에너지 안보의 핵심 자산이다. 이제는 LNG선 조선업을 에너지 전환의 인프라 산업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중국이 희토류 채굴에서 정제, 가공, 수출까지 모든 과정을 하나로 묶어내 전략무기화했듯, 우리도 흩어진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지금은 반도체, 배터리, 소재가 각자 뛰고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세계 최고 기술도 따로 놀면 그저 부품일 뿐이다.

'한국형 초격차 40년 계획'이 절실한 이유다. 중국이 40년 전 희토류의 미래를 내다봤듯, 우리도 2065년, 대한민국 건국 120주년을 설계해야 한다. 단기 실적에 매달리는 근시안으로는 불가능하다. 전략 기술과 산업을 묶어 통합 관리하고, 공급망 안정부터 표준 선도까지 국가적 전략으로 승화시켜, 개별 우수성이 아닌 시스템의 힘으로 싸워야 한다.

이제는 선택이 아닌 설계의 시간

미중 간 고위급 무역회담 이틀째인 10일(현지시간) 협상장인 영국 런던 랭커스터 하우스 앞에서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다.연합뉴스


미중간 전략 경쟁이 심화될수록, 우리 사회는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하루빨리 선택해야 한다는 일종의 '선택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안보가 위태롭고, 중국과의 관계가 나빠지면 경제가 타격받는다는 식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다. 이는 '양자택일의 함정'이라는 집단적 인지 편향에 빠져, 제3의 길은 없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말 조선은 청과 일본, 러시아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했지만 결국 식민지가 됐다. 하지만 21세기의 대한민국은 다르다. 우리는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고, 핵심 기술을 보유한 산업 강국이다. 반도체 없이는 인공지능 시대가 올 수 없고, 배터리 없이는 전기차 전환이 불가능하다. 이것이 우리의 무기다. 중국이 희토류로 미국을 흔든 것처럼, 우리도 세계를 흔들 수 있다.

중요한 건 발상의 전환이다.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편에 설 것인가가 아니라, 모두가 우리를 필요로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더 이상 주저할 이유도 시간도 없다. 이제 판을 바꿀 시간이다. 그리고 그 게임의 규칙을 우리가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