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적 민주주의와 유튜브 규제
방어적 민주주의와 유튜브 규제
* 신남성연대 대표 배인규씨가 지난 2월27일 서울시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 촉구 시국선언’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이들이 들고 있던 손팻말을 빼앗아 뜯어 먹고 있다. 신남성연대 유튜브 갈무리
‘방어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있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세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단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민주주의는 자유와 다원주의를 표방하는데, 이런 속성 탓에 내재적 취약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주장의 핵심 논거다.
다원주의를 강조하다 보면 ‘민주주의의 적’마저 용인하게 되고, 결국 그들이 힘을 키워 민주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헌법을 가졌던 바이마르공화국이 히틀러의 나치에 의해 전복된 경험이 있는 독일에서 이런 주장이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리나라 헌법에 해당하는 독일 기본법은, 방어적 민주주의의 수단으로 ‘기본권 실효제도’를 두고 있다. 민주주의를 공격할 목적으로 기본권을 악용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 기본권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제도다.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서신의 자유 등이 ‘실효’의 대상이다.
‘자유의 적’에게는 자유를 주지 않겠다는 헌법적 선언이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파괴할 자유까지 허용할 수는 없다는 독일 사회의 합의이기도 하다.
독일이 표현의 자유 훼손 논란에도 2017년 ‘소셜네트워크에서의 법 집행 개선을 위한 법률’(네트워크집행법)을 제정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네트워크집행법은, 난민 혐오 발언과 증오 범죄가 급증하고 극우 세력이 확산하자, 연방정부 차원에서 대응책으로 마련한 법안이다.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불법 콘텐츠에 대한 삭제 및 차단 의무를 부과한 것이 뼈대다.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최대 500만유로의 과태료를 물린다.
네트워크집행법은 유럽연합(EU)의 디지털서비스법 제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2023년 시행된 이 법은, 플랫폼 업체들에 허위 정보와 불법 콘텐츠, 혐오 표현 등에 대한 차단과 투명성 확보 의무를 부과한다. 법을 위반하면 전세계 연 매출액의 6%까지 과징금을 물릴 수 있다. 법의 취지와 구조가 네트워크집행법과 유사하다.
6개월 전, 한국에선 ‘반국가세력의 위협’이라는 망상과 부정선거 음모론에 휩싸인 대통령이, 군대를 동원해 헌정질서를 유린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는 입만 열면 자유를 부르짖었지만, 그가 선포한 비상계엄 포고령에는 시민의 자유를 말살하려는 ‘광기의 언어’가 넘쳐났다.
내란을 지시한 입으로 감히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뇌까렸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짓밟으려 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망상적 세계관의 ‘배후’가 드러났다. 허위·조작 정보와 음모론, 혐오 표현의 저수지 유튜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2·3 내란 사태를 겪으면서 대다수 양식 있는 시민들이 유튜브의 폐해, 그리고 극우 유튜버의 실체를 뼈저리게 깨달았다는 점이다.
극우 유튜버들은 거리를 섬뜩한 혐오와 저주의 언어로 물들이고, 폭력을 서슴지 않았으며, 그 목불인견의 현장을 생중계해 돈을 벌었다. ‘혐오 장사꾼’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그들은 뻔뻔하게도 ‘표현의 자유’를 입에 올린다. 그러나 일삼아 혐오를 퍼뜨리고 폭력을 선동하는 자들에게 주어질 표현의 자유는 없다. ‘빨갱이는 죽여도 돼!’ 따위의 말을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용인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지난 2월 극우 세력이 이화여대에 난입해 온갖 여성 혐오적 발언을 내뱉고 폭력을 행사하자, 학생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이렇게 외쳤다.
“당신들이 지지하지도 않는 자유를 당신들에게 보장해달라고 말하지 말라.”
민주주의가 끝장날 뻔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시민의 힘으로 극복한 지금, ‘방어적 민주주의’를 다시 떠올린다.
민주주의의 적들이 우리가 힘겹게 쌓아 올린 민주주의를 파괴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90년 전 히틀러에게 괴벨스의 라디오가 있었다면, 지금 한국의 극단주의자들에게는 유튜브가 있다. 극우 유튜버들은 이번 내란 사태를 통해 엄청난 정치적 효능감과 함께 경제적 이득까지 누렸다. 그러는 사이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은 깊어졌고, 공론장은 황폐화됐다.
민주주의를 지키려면 때로는 ‘불관용’도 필요하다.
‘방송’ 또는 ‘언론’을 참칭하며 ‘혐오 비즈니스’를 일삼고, 음모론과 조작 정보를 퍼뜨리는 일부 유튜버들은 민주주의의 적일 뿐이다.
다행히 대선을 전후해 언론단체들 사이에서도 유튜브를 비롯한 소셜미디어플랫폼의 사회적 책임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뉴미디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규제체계를 세워야 한다.
전통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중시해온 유럽 국가들이 왜 플랫폼 규제에 나섰는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이종규 저널리즘책무실장 jk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