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2

추사 김정희

추사 김정희 - 추사(秋史)인가? 완당(阮堂)인가? # 100개가 넘는 호의 주인공 김정희는 정확한 숫자를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호를 사용했다.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 적게는 100여 개에서부터 많게는 500여 개나 된다. 그를 대표하는 호는 추사(秋史)와 완당(阮堂)이다. 일반적으로 김정희 하면 ‘추사’, ‘추사체(秋史體)’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유홍준 교수는 김정희의 평전을 출간할 때, 제목을 ‘완당평전’이라고 붙였다. 김정희의 삶과 학문의 궤적을 추적해보면, 그를 대표하는 호는 ‘추사’가 아니라 ‘완당’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 추사(秋史) : 고증학(考證學)과 금석학(金石學)과 역사학(歷史學)의 독보적 권위자 오늘날 김정희를 대표하는 호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추사(秋史)’..

카테고리 없음 2021.03.22

김노경 사건(윤상도 옥사 사건)

김노경 사건(윤상도 옥사 사건) ​[개요] 윤상도는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나서 과거에 급제하여, 종6품 부사과(副司果)에 승진했다. 1830년 윤상도와 윤한모 부자는, 효명세자의 무능과 정2품 호조판서 박종훈, 종2품 어영대장 유상량, 종2품 유수를 역임한 신위 등, 탐관오리를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윤상도와 윤한모 부자는 군신을 이간질하고, 반란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전라도 추자도로 유배됐고, 1840년 김홍근의 상소(윤상도 옥사 재조사)로 유배지에서 다시 의금부로 압송되어, 국문을 받고는 아들 윤한모와 함께 능지처참 되었다. 김노경은 1830년 윤상도의 배후조종자로, 전라도 고금도로 유배되었다가, 1834년 순조의 배려로 해배됐다. 1837년(헌종 3)에 사망했다. 1840년 김홍근의 상소(윤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