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2

남북관계 30년 : 이제훈의 1991~2021

이제훈의 1991~2021 연재리스트 1992년 대선, 그리고 남북회담 ‘훈령 조작’ 사건 남북기본합의서, 김일성이 만세 부른 까닭은? 남북교류협력법의 탄생, 분단사의 분수령 평양축전의 임수경과 박철언, 그리고 국가보안법 ‘분단의 벽’ 부수려 한 문익환, 윤동주·장준하의 벗 금강산관광, 어느 실향민의 수구초심 ‘김정일의 죽음’, 관계 회복 기회를 걷어찬 한국 김일성의 죽음, ‘근친증오’의 폭발 푸에블로호 사건, 북미관계 ‘이상한 공식’의 기원 벼랑 끝에서 열린 공존의 문 8월의 한-중 수교, 동북아를 근본 재편하다 벼랑에서 추는 춤, 공갈과 협상의 앙상블 북, 90일 시한의 ‘핵폭탄’을 던지다 ‘북-일 관계정상화’ 미국은 왜 두 차례나 틀어막았나 “한반도에 미군 있어야” 김정일 ‘파격 제안’ 걷어찬 미국..

시사, 상식 2022.01.18

남북한 당국의 적대관계 해소 노력

남북한 당국의 적대관계 해소 노력 - 네 번의 기회 남북한 당국이 적대관계를 해소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한국전쟁 이후 네 번이나 기회를 만들었다. 아직 확고한 결실을 맺지는 못했지만 기회는 또 생길 것이다. 첫 번째 기회는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이었다. 1970년대 초 미국은 ‘데탕트 정책’을 채택해,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국가들과 평화 공존하는 길을 탐색했다. 남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이 비슷해진 시기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평양에 보냈고, 김일성 주석은 박성철 제2부수상을 서울에 보냈다. 공동성명에는 이후락 정보부장과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 조직지도부장이 대리 서명했다. 1972년 7월 4일 남북 당국이 전격 발표한 성명의 핵심은, 자주·평화적 방법으로 통일을 ..

시사, 상식 2021.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