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

안동, 의성답사기 (김현숙)

道雨 2007. 6. 18.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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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의성 답사후에

                                                                                    -  김   현   숙  -



 연휴를 이용해 ‘답사 여행의 길잡이-경북 북부-(한국문화유산답사회 엮음)’의 안내를 받으며 1박2일간의 안동·의성 지역 답사여행을 떠났다.

 안동과 의성은 신라의 중앙에서 비켜서 있는 험한 지리적 여건으로 경주 중심부에서 만들어지고 행해지는 모든 문화·사회 현상들이 조금 늦게 도달하고 또한 늦게까지 머물렀던 곳이며, 조선중기 이후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양반고을로 알려져 있는 지역이다.

  IMF의 여파와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 때문인지 갈 때는 길이 막히지 않았으나 돌아오는 길에는 중앙고속도로에서부터 막혀서 집에 돌아왔을 때는 새벽 2시가 넘었다.


       전탑과 석탑(신세동 7층전탑, 동부동 5층전탑, 조탑동 5층전탑,

                        탑리 5층석탑, 빙산사터 5층석탑)

 안동은 다른 고장과는 달리 전탑이 많이 세워져서 전탑의 고장으로 불린다. 전탑이 많이 세워진 이유를 안동의 지질구조가 좋은 화강석을 산출하지 못하기 때문에 흙으로 벽돌을 빚어 쌓은 전탑이 자리를 잡았을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탑은 목탑에서 석탑으로 이행되거나 전탑에서 석탑으로 변화되고 있는데, 석탑의 모범으로 석가탑과 정림사지 5층석탑을 꼽는다. 경상권에서는 불국사의 석가탑을 모방하여 제작되고, 충청·전라도 지방은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을 모방하여 탑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사실은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문화가 확산되고 저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답사 여행의 길잡이 9권 참고 )

 한편 의성 탑리의 5층석탑은 목탑과 전탑의 두 형식이 결합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후 신라 석탑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3층석탑으로 이행해 나가기 이전의 초기단계 석탑으로 추정되고 있고, 빙산사터 5층석탑은 탑리의 5층석탑을 꼭 빼닮은 모방작이다.

 무정형의 덩치 큰 돌이 쪼아져서 부처님의 가르침의 의미를 담은 탑으로 변하고 조형된 탑에는 현생과 내세의 안녕을 빌었다. 정성과 바램이 모아진 탑에는 역사와 문화도 흔적을 같이 하며 천년의 세월을 살고 있다.


       하회마을의 충효당

 하회마을 안에 있는 충효당은 서애 유성룡의 종가로, 집안 뒷편에는 풍산 유씨 유물 전시관(영모각)이 건립되어 있다. 서애 유성룡은 조선 선조때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는데 공훈을 세우고 치열한 당쟁과 정치조직 속에서도 나라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바에 우선 순위를 두셨던 분이다. 학문의 뜻을 높은 곳에 두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후손들의 사랑을 받는 조상이 되셨을 것이다. 충효당 안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는 학자로서 커다란 모범을 후손들에게 보여 주시는 것 같다.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그 당시 학문이 현실적인 정치·경제·군사전략으로 두루 적용되는 실용 학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느꼈고 지금 우리의 학문의 지향점에 대해 시야가 조금은 확대되는 느낌이 들고 학문의 쓰임에 대해 유연해질 필요성을 느낀다.

 한편 이집안의 종가 며느리가 쓴 ‘名家의 內訓’이라는 책도 판매하고 있는데, 현재를 살고 있는 부인과 어머니들 그리고 미래의 부인과 어머니들은 모두 읽어보시길 권한다. 


        하회마을 삼신당의 느티나무

 하회 마을의 중앙에는 수령 600년된 느티나무가 육중한 세월의 두께를 몸에 두르고 의연히 서 있다. 한 그루의 나무가 심어져 600년이라는 수명으로 장수하기에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맞아야 한다. 나무의 뿌리가 깊고 넓게 뻗어 나가 자랄 토양과 빨아들일 물이 있어야 하고 더하여 나무가 사람의 손에 꺾여지지 않는 행운이 필요하다. 폭풍과 재해가 비껴가고 거듭되는 사계절동안에 나무는 덩치가 굵어지고 우람해져 갈 것이다. 나무가 고난과 고통을 몸으로 견뎌내고 더욱 견고해지자 사람들은 세월의 인고를 이겨낸 나무에게 경의를 보내고 나무의 견디는 힘과 나무가 누렸던 행운을 얻고자 나무에게 기원하고 존경을 바치게 된 것일 것이다.

 마을사람 들에게 ‘신의 나무’로 추앙받는 나무.

 나무 자체의 쓰임새로는 비록 적을지라도 사람들의 정신속에 신으로 자리잡는 나무, 이런 의미에서 삼신당의 느티나무는 쓰임새를 뛰어넘는 거목으로 사람들의 마음에서 자리하고 있다. 


       제비원의 돌부처

 제비원의 마애석불은 고려때 제작된 석불로 거대한 바위에 선각으로 몸체를 새기고 머리는 다른  돌로 조각해 얹어 놓은 보물 115호인 미륵불이며, 안동 시내의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는 안동지역을 대표하는 얼굴이다. 안동 지역의 특산품인 안동소주의 이름도 제비원 소주이다.

 돌을 이용한 불심의 표명은 탑과 부도, 불상 등으로 제작되고 오랜 세월동안 살아남아 우리나라 보물·국보들의 대표적인 소재가 되었다. 목탑에서 시작하여 전탑·석탑으로 또한 돌부처로 소재가 다양하게 이행되어 왔고 그 소재에 표현된 선의 양식에서, 표현 방식속에 탑과 부처가 제작되었을 당시 시대상황을 가늠하게 한다. 돌부처에 바쳐졌을 사람들의 소원과 소망은 긴 세월의 희노애락을 변함없이 견디어온 돌의 단단함에 삶의 고단함을 의지하고 싶었을 것이고 마음의 바램을 유감했을 것이다. 이런 조상의 삶의 숨결이 무정한 돌덩이에 부처님의 모습을 새기고 현생과 내세의 안녕을 염원하는 생명을 불어넣었다.


       병산서원앞 모래사장에서

 어두워질 무렵에야 도착한 병산서원 앞 모래밭에서 저녁밥을 지었다. 식사 후 아이들이 즉석에서 모닥불을 피우자고 한다. 나뭇가지와 신문지, 태울수 있는 종이 종류를 주워모아 작은 모닥불을 피웠다. 아이들은 아주 즐거워하며 사그러지는 불을 살려내고자 부지런히 주워 모은다. 모닥불을 피우면서 사람의 능력에 관한 인식이 새로워졌다. 자신이 이루어내고자 하는 일은 적극적으로 염원하고 행동할 때 이루어진다는 것을 이이들을 보면서 실제적인 예를 보는 느낌이다. 삶의 곳곳에서 이런 적극적인 태도를 생활화한다면 우리의 인생이 훨씬 풍요로워 질 것이다.



 안동·의성지역의 답사여행은 역사의 한끝을 잡고 바라보는 느낌으로 현실 속의 역사를 읽을 수 있는, 감긴 눈이 조금씩 떠지는 기쁨이었다. 작은 것을 보고도 크게 느낀다는 말의 뜻을 알것도 같은 답사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