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6327

주한미군의 존재론적 위기

주한미군의 존재론적 위기   냉전이 시작된 이래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대규모 군사기지에 이상할 정도로 집착해왔다.수만명의 대군이 주둔하는 미국령 괌, 필리핀의 수비크만 해군기지와 클라크 공군기지, 일본의 요코스카 해군기지와 오키나와 공군기지, 한국의 평택 지상군기지와 군산의 공군기지 등은 냉전 시대 건설된 대규모 군사 거점이다.필리핀 미군 기지는 1990년대에 폐쇄되었지만, 나머지 기지들은 냉전 이후에도 미국의 힘의 상징으로 굳건하게 자리를 지켜왔다. 이 기지들은 동아시아에서 대규모 전면전을 감당하기 위해 사전에 배치된 물자와 장비와 인력을 뜻하는 거대한 ‘강철 산’(iron mountain)으로 불리었다. 그러나 중·장거리 미사일이 보편화한 21세기에 이야기는 달라진다. 중국의 둥펑 계열의 미사일은 이 ..

시사, 상식 2025.04.04

‘한국판 러스트 벨트’ 위험

‘한국판 러스트 벨트’ 위험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의 공장’이었다.하지만 1970년대를 지나며 기업들이 중국 등 인건비가 싼 나라로 공장을 옮기기 시작했고, 제조업 부문의 일자리는 점차 사라졌다. ‘러스트 벨트’는 한때 제조업으로 번성했으나, 산업이 쇠퇴하면서 경기 침체와 인구 감소로 공동화된 지역을 가리킨다. 오하이오·미시간·펜실베이니아·인디애나주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부통령 제이디 밴스는, 오하이오주 미들타운이라는 러스트 벨트의 노동자 가정에서 자라며 겪은 일을 쓴 책 ‘힐빌리의 노래’로 명성을 얻으면서, 정치인으로서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러스트 벨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기반이기도 하다. 제조업 쇠락을 방치하던 미국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제조업 재활성화 ..

시사, 상식 2025.04.03

산산이 조각날 ‘법의 권위’

산산이 조각날 ‘법의 권위’   출발 시각이 지났는데 기차는 떠날 생각을 않고 안개만 더욱 짙어지는 느낌이다.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고가 늦어지면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이 법조계와 정치권을 떠돈다. 서울의 어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열흘 전쯤 문형배 권한대행이 평의를 종결하고 결론을 내자고 했는데, 어느 보수 재판관이 그렇게 하면 직을 사퇴하겠다고 강하게 반발했다는 얘기가 교수들 사이에 돈다”고 말했다.헌법을 전공한 변호사는 “탄핵 인용을 주장하는 ㄱ 재판관에 맞서, ㄴ 재판관이 논리 싸움을 위해 기각 결정문을 쓰고 있다는 얘기를 동료 변호사가 하더라. 이런 믿기 힘든 얘기가 법조인들 사이에 떠돈다는 사실 자체가 심각한 일”이라고 말했다.  헌재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순 없..

시사, 상식 2025.04.01

‘윤석열 내란’으로 드러난 네 가지 착각

‘윤석열 내란’으로 드러난 네 가지 착각   ‘윤석열 내란 사태’ 이후 대한민국 헌법은 세번 무너졌다.처음엔 대통령에 의해, 다음엔 대통령 권한대행‘들’에 의해, 세번째는 헌법재판소에 의해. 헌법재판소는 한덕수 권한대행의 헌법 위반에 면죄부를 주었고, 윤석열 대통령의 헌법 파괴에 대해서는 선고를 미룸으로써 반헌법세력에 용기를 주고 헌정질서 문란을 방조하고 있다.헌법은 축구 경기장의 터치라인 같은 것인데, 선수들이 터치라인 밖으로 공을 몰고 나가 플레이를 이어가는데도, 심판이 휘슬 불기를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헌법이 없는 상태가 다섯달째 지속되고 있다.  내란 사태의 장기화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가치와 통념이 착각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한다. 첫째, 헌법재판관들은 헌법만 생각할 거라는 착각이..

시사, 상식 2025.03.31

헌재는 ‘망국적 헌정 위기’ 직시해야

헌재는 ‘망국적 헌정 위기’ 직시해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하염없이 미뤄지면서, 국민의 불안과 분노가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위헌·위법적 비상계엄으로 헌정을 파괴한 대통령이 넉달 가까이 국가원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 자체가, 또 다른 헌법질서의 파괴다.윤 대통령 파면 선고를 미루는 헌법재판관들도 이제 내란 사태 연장의 공범이라는 비판도 무리가 아니다. 헌재의 선고 지연이 다른 이유로는 설명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면서, 일부 헌법재판관이 고의로 시간을 끌고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심지어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의 임기 종료일인 4월18일까지도 헌재가 결론을 내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고개를 들고 있다.있을 수 없는 일이다. 두명의 재판관이 퇴임하면, 헌재는 6인..

시사, 상식 2025.03.31

“이게 쿠데타란 걸 인정하지 않으면, 쿠데타는 성공한다”

“이게 쿠데타란 걸 인정하지 않으면, 쿠데타는 성공한다”   역사에 등장한 미친 권력자 중에, 로마의 칼리굴라 황제는 아마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비정상이었다.말(horse)을 집정관으로 임명하려 했다.그 칼리굴라가 요즘 미국에서 심심찮게 회자하고 있다.로마제국 최고의 스타 율리우스 카이사르도 소환되고 있다. 공화당의 재선 하원의원 안나 폴리나 루나가 지난 1월 튀는 법안을 냈다.미국 역대 대통령 중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4명의 대통령 얼굴을 암벽에 조각해 놓은 국가기념물이 사우스다코타주 러시모어산에 있다.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에이브러햄 링컨이 그들이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의 얼굴도 조각해 넣자는 아이디어다. 2월에는 같은 당의 4선 하원의원 클라우디아 테니가 트럼프..

시사, 상식 2025.03.28

이제 미국 이후의 세계를 준비해야 한다

이제 미국 이후의 세계를 준비해야 한다  최근에 나는 일주일 남짓 미국을 여행했다. 몇군데에서 발표와 학술회의가 있어, 서안부터 중서부를 거쳐서 동부의 뉴욕까지 횡단하며, 가는 곳마다 고등교육 종사자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주민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미국 여행은 이제 불안하다고 나를 말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굳이 간 이유는 간단했다.나는, 지금 세계의 지정학·지경학을 급변시키는 미국의 ‘트럼프주의’란 무엇인지, 미국 현지에서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이해하고 싶었다. 인터넷으로 확인이 불가능한 현지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었던 것이다.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애당초 목표했던 바를 성취할 수 있었다. 여행의 끝에 나는 트럼프주의의 함의와 맥락을 어느 정도 이해한 것 같다. 현지인들에게 트럼프주의란 ..

시사, 상식 2025.03.26

대학살의 재현을 거부하며

대학살의 재현을 거부하며   영현백과 종이관  "군은 계엄 몇 달 전, 시신을 임시 보관하는 영현백을 대량으로 사들이고, 종이로 만든 관 구매도 문의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앵커가 긴장한 표정으로 뉴스를 전달하고 있었다. ‘영현백’과 ‘종이로 만든 관’이란 단어는 일상생활에서 거의 쓰지 않는다. 사전을 검색한 후에야 영현백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 물건인지 정확하게 알게 됐다. 이 두 개의 단어를 써야만 하는 상황이란, 누군가의 죽음을 전제할 수밖에 없다. 뉴스를 보는 동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 뉴스는 명확하게 우리에게 두 가지 사실을 알려 준다. 12·3 계엄령 발표 이전, 이미 실제로 군이 시신을 임시로 보관할 영현백을 대량 구매한 것이다. 또 한 가지는 군이 종이관을 구매하기 위해, 업체에..

시사, 상식 2025.03.25

국민연금 개혁이 궁금하다

국민연금 개혁이 궁금하다 2년여 전 '민들레' 통해 던진 7개 질문의 새 버전국민연금 개혁은 윤석열 파면 만큼이나 중요한 과제이번 여야 합의 개정안은 50점 보다 나은 60점짜리100점짜리 아니라고 거부권 요구는 어리석은 행동사각지대, 적립금 고갈, 충분한 보장 등 문제 여전소득재분배도 국민연금 아닌 국가 과제로 접근해야공무원·군인·사학 등 특수직역연금과 통합 필요   3월 20일 국회가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민주당과 국힘당 원내대표가 합의했는데도 재석 의원 277명 가운데 84명이 반대 또는 기권했다. 정책노선이 아주 다른 진보당과 개혁신당 의원들이 공히 반대표를 던진 것이 눈에 띈다. 누구는 최상목에게 거부권 발동을 요구했고 누구는 그런 행태를 비판했다.누가 옳은지 살피려면 개정 내용을 보아..

시사, 상식 2025.03.25

미국의 패배

미국의 패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면서, 전세계를 상대로 ‘관세 전쟁’을 시작한 것은, 실제로 중국·러시아에 “굴욕적인 패배”를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파격적이다 못해 놀랄 만한 주장을 내놓은 이는, 1976년 저서 ‘최후의 추락’에서 영아사망률 등 장기 통계를 활용해, 15년 뒤 소련의 몰락을 예견해냈던 프랑스 인류학자 에마뉘엘 토드다. 그가 지난해 1월 펴낸 저서 ‘서구의 몰락’(La Défaite de l'Occident)엔, 미국 패권을 당연히 여기며 살아온 한국인들이 깜짝 놀랄 만한 주장이 가득 담겨 있다. 현상적으로 볼 때 ‘미국의 패배’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이다.2022년 2월 말 전쟁이 시작되자,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일사..

시사, 상식 2025.03.25

소득재분배 OECD 꼴찌 수준, 여야 감세 경쟁 중단해야

소득재분배 OECD 꼴찌 수준, 여야 감세 경쟁 중단해야   우리나라의 세금·복지제도를 통한 소득재분배 기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 수준인 것으로 분석됐다.소득재분배는 현대 선진국가에 주어진 기본적인 책무 중 하나다.여야 정치권은 최근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감세 정책을 중단하고, 정부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강화할 수 있는 정책 개발에 힘써야 한다. 오이시디 자료를 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세전·세후 지니계수 개선율(이하 개선율)은 18.2%로, 통계가 발표된 31개 오이시디 회원국 중 28위를 기록했다. 31개국 평균은 31.9%였다. 지니계수(0~1)는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로,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함을,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함을 나타낸다.개선율은 세금..

시사, 상식 2025.03.25

트럼프의 공화당, 윤석열의 국민의힘

트럼프의 공화당, 윤석열의 국민의힘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늦어지고 있지만, 곧 인용 판결이 날 것을 의심치 않는다.탄핵이 인용되더라도 ‘12·3 내란’ 이후 우리 민주정이 가야 할 길에 겨우 한고비를 넘는 것일 뿐이다.우리는 내란이 남긴 여러 후과와 오랜 기간 대면하며 살아가야 한다. 내란은 헌법과 법치에 대한 우리 정치공동체의 합의된 신뢰에 균열을 냈고, 적법 절차에 따라 작동할 것이라고 믿었던 검찰·경찰·군대·정보기관 등 국가기관에 대한 각종 의혹을 쌓아놓았으며, 선거 결과에 대한 승복이나 정치 갈등의 비폭력 해결 원칙 등 민주정의 기본원리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가장 심각한 후과는, 이번 사태 이후 헌법과 민주정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변모해버린 ‘국민의힘’이라는 정당과 그 지..

시사, 상식 2025.03.20

트럼프 압박 나설라…불안한 ‘LMO 재배 청정국’

트럼프 압박 나설라…불안한 ‘LMO 재배 청정국’    세계인이 즐겨 먹는 토마토는 저온에 취약하다.밤새 지표 온도가 뚝 떨어져 서리가 내릴 때는 말할 것도 없고, 기온이 10~12도 밑으로만 내려가도 냉해가 나타나 농민들을 불안하게 한다. 1990년대 초 미국의 생명공학 회사 ‘디엔에이 플랜트 테크놀로지’는, 토마토의 내한성을 높일 방법을 유전자 조작에서 찾았다. 차가운 북극 바다에 사는 가자미에게서, 조직이 얼지 않게 하는 단백질 유전자를 분리해 토마토에 결합시킨 것이다. ‘물고기 토마토’로 불린 이 작물은, 실험실을 벗어나지도 못한 상태로 유전자변형생물체(Living Modified Organisms, LMO)에 대한 거부감을 담은 신조어 ‘프랑켄푸드’의 상징이 됐다. 이후 몬샌토, 신젠타 등의 거..

시사, 상식 2025.03.20

트럼프는 제2의 닉슨 독트린을 만들 수 있나?

트럼프는 제2의 닉슨 독트린을 만들 수 있나?  전후 미국의 대내외 정책을 전환시킨 대표적인 대통령은 리처드 닉슨이다.그는 대외정책에서는 ‘닉슨 독트린’과 미-중 연대, 소련과의 데탕트, 경제에서는 ‘닉슨 쇼크’라 불린 달러-금 태환 정지 선언과 변동환율 체제로 이행 등을 감행했다.그 결과는 대외정책에서 주적이던 소련 붕괴의 단초를 만들었고, 경제정책에서는 지속 불가능해 보이던 미국의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고, 추락하던 달러 가치도 유지할 수 있게 해줬다.  닉슨은 취임한 지 6개월 뒤인 1969년 7월25일 국외 순방 중에, 미국의 태평양 전진기지인 괌에 들러서 “핵무기를 가진 열강의 위협을 제외한 군사방위 문제인 한에는, 아시아 국가 자신들이 책임을 도맡아 대처”하라고 발표했다. 아시아 방위는 아시아..

시사, 상식 2025.03.20

핵무장론 멈추고 ‘민감국가’ 4월 발효 저지 집중해야

핵무장론 멈추고 ‘민감국가’ 4월 발효 저지 집중해야   미국 에너지부가 지난 1월 초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것은, 정보 유출을 뜻하는 “보안 관련 문제” 탓이라는 지난 17일 밤 외교부 설명 뒤, 이번 사태와 ‘핵무장론’을 연결짓는 것은 가짜뉴스라는 식의 국민의힘 쪽 인사들의 주장이 이어진다. 다음달 15일부터 민감국가 지정이 효력을 발휘하면, 첨단기술 분야에서 미국과 교류할 때 건건이 신원 확인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현실화된다.관계당국이 시급히 미국을 설득해, 4월 민감국가 발효를 막을 수 있도록, 정치권도 국익에 득이 되지 않는 핵무장론 관련 언동을 삼가야 한다. 19일 이정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받은 ‘한·미 과학기술·정보통신 분야 협력 현황 및 계획’ 자료를 보면, ..

시사, 상식 2025.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