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음악 관련

'오빠 생각'과 '고향의 봄' : 노래에 깃든 사연

道雨 2023. 2. 20. 14:13

오빠생각 노래와 사연

 

 

음악 : ​오빠생각(최순애 작시, 박태준 작곡)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때

우리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 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 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이 시를 모르는 사람 있을까?
거의 국민가요 수준에 이른 이 시를 노래한 가수만 해도 여럿입니다.

그러나 이 시가 12살 소녀에 의해 씌어졌다는 사실을 알고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합니다.

최순애(1914~1998),
 
1925년 11월, 12살의 소녀 최순애는 [오빠생각]으로 당시 방정환이 내던 잡지 [어린이]의 동시란에 입선자가 됩니다.
 
 
그 다음 해에 4월 14세 소년 이원수(1911~1981) 역시 [고향의 봄]으로 이 코너의 주인공이 됩니다.

 
시를 보고 크게 감동을 받은 열두살의 소녀 최순애가 선생님께 편지 띄우기 시작한 것이, 
마산 소년 이원수와 수원 소녀 최순애는 펜팔친구가 됐고,
서로 얼굴도 모르면서 결혼약속까지 했답니다.

 
펜팔한지 7년 후 수원역에서 만나기로 하였는데, 7년 후에 이원수 선생님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원수는 독서회를 통해 불온한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일경에 구속돼 1년간 감옥에 있었던 것입니다.

 
최순애의 집에서는 이런 예비 사위가 못마땅해 다른 혼처를 알아보고 권해 보았건만,
최순애는 완강히 거부를 하다, ​1년 후에 이원수가 풀려나고 최순애의 집으로 달려오면서...
1936년6월에 결혼식을 치르고,  슬하에 3남 3녀를 두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최순애 · 이원수


요즘 세대에는 믿기지 않을 순애보입니다.
​[오빠 생각]과 [고향의 봄]의 만남이라고 할까요.
 
 
 
* '오빠생각' 노래가 만들어지기까지...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위에" 로 시작되는 이은상의 시(동무생각)에 곡조를 붙이는 등..

유명한 작곡가 고 박태준 (1900~1986) 선생님은, 최순애를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다만 그녀가 훗날 이원수의 아내가 되었다는 소식만을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고 합니다.

 
최순애 선생님이 살아생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작 동기를 밝혔는데, 노래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는 중요한 부분이라 올려볼께요^^

 

 

그 당시 나에게는 오빠 한 분이 계셨다.
딸만 다섯에 아들 하나뿐인 우리 집에서 오빠는 참으로 귀한 존재였다.

오빠는 동경으로 유학갔다가, 관동대지진 직후 일어난 조선인 학살 사태를 피해 가까스로 돌아 왔다.

그날 이후 일본 순사들이 늘 요시찰 인물로 보고 따라 다녔다.
오빠는 고향인 수원에서 소년 운동을 하다가,
서울로 옮겨 방정환 선생 밑에서 소년운동과 독립운동에 열심이었다.
 
집에는 한달에 한 번 정도밖에 오질 않았다.
오빠가 집에 올때면 늘 선물을 사 왔는데,
한번은 " 다음에 올 땐 우리 순애 고운 댕기 사줄께 " 라고 말하고 서울로 떠났다.

오빠는 뜸북새, 뻐꾹새 등 여름새가 울 때 떠나서,
기러기와 귀뚜라미가 우는 가을이 와도 돌아오지 않는다

서울 간 오빠는 소식조차 없었다.
과수원 집 딸인 그녀는 오빠를 과수원 밭둑에서 서울 하늘을 보며 그리며 울다가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쓴 노래가 바로 오빠 생각입니다.
 
 
 
 

[출처] 오빠생각작성자 문정 좋은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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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수『고향의 봄』 / 최순애 『오빠생각』

 

 

 고향의 봄

 

(이원수 작시 / 홍난파 작곡)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파란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 노래는 시인 이원수(1911-1981) 선생의 동시 ‘고향의 봄’에 홍난파 선생이 곡을 붙인 노래입니다.

 

이원수 선생이 경남 마산에서 살던 14~5세 때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마산에서 소년회 활동을 하던 이원수는, 어린이 운동의 선구자인 소파  방정환 선생을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소파 선생이 발행하던 잡지 어린이에 원고를 보냈는데, 그 중 ‘고향의 봄’이 1926년 4월호에 입선되어 실리면서 그의 이름을

 처음 알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원수 선생이 1911년생이니까 잡지에 실릴 때의 나이는 15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고향의 봄’에 처음 곡을 붙인 이는 초등학교 교사였던 동요작곡가 이일래 선생이었다고 합니다.

‘산토끼’의 작사 작곡가로 잘 알려진 이일래 선생의 ‘고향의 봄’은 당시 마산 등 일부에서만 불려 지다가, 1929년에 홍난파선생이 곡을 붙인 후부터 지금의 노래가 전국적으로  널리 불려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 최순애 선생

 

 

 

 

이원수 선생의 부인은 동요 ‘오빠생각’의 작사자인 최순애(1914-1998) 선생입니다.

이 역시 최순애 선생이 11살 어린 소녀 시절에 쓴 동시라고 합니다. 

소파 선생의 어린이 잡지에 ‘오빠생각’이 실린 것은, ‘고향의 봄’ 보다 다섯 달 먼저인 1925년 11월이었다고 합니다.

‘오빠생각’도 홍난파가 ‘고향의 봄’과 같은 해인 1929년에 곡을 붙였지만, 그 후 박태준(1900~1986)씨가 곡을 붙여 지금의 ‘오빠생각’이 탄생되었다고 합니다.

‘고향의 봄’이 발표된 후로 소년 이원수는 어린이 잡지에 계속 작품을 보내어 자주 발표가 되었고, 일간 신문에도 부지런히 발표를 했다고 합니다.

소년 이원수는 동요쓰기를 좋아하는 전국 각지방의 친구들과 사귀어 편지 왕래가 잦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편지를 주고 받던 낯 모르는 친구들 가운데에, 자신보다 먼저 ‘오빠생각’이란 시를 어린이 잡지에 실었던 최순애란

여학생이 있었다고 합니다.

마산 소년 이원수와 수원 소녀 최순애는 펜팔친구가 되었고,  서로 얼굴도 모르면서 결혼약속까지 했답니다.

펜팔한지 7년 후에 수원역에서 만나기로 하였는데, 7년 후에 이원수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원수는 독서회를 통해 불온한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일경에 구속되어, 1년간 감옥에 있었던 것입니다.

최순애의 집에서는 이런 예비사위가 못마땅해 다른 혼처를 알아보고 권해 보았건만, 최순애는 완강히 거부를 하다, 

1년후에 이원수가 풀려나 최순애의 집으로 달려 오면서........

 곧바로 결혼식을 치르고, 슬하에 3남 3녀를 두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