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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3500년 전부터 여성 상징한 외래유물-子安貝형 토제품

道雨 2007. 10. 13. 18:21

3500년 전부터 여성 상징한 외래유물

子安貝형 토제품

 

 

흔히 남자 성기는 고추로, 여자 성기는 조개에 빗댄다.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임진왜란 전후이니, 남성의 상징으로 된 것도 그 이후일 것이다. 조개의 상징화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부산대박물관은 1972년 12월~1973년 1월, 신석기 후기 유적(3500여년 전)인 부산 금곡동 율리패총(貝塚·조개무지)을 발굴했다. 여기서 흙으로 구운 ‘이상하게’ 생긴 토제품이 나왔다.

발굴단은 1980년에 펴낸 조사 보고서에서 “길이 4.1㎝, 폭 2.7㎝, 높이 2.6㎝로 외형상 확실히 여성의 성기를 모방한 특이한 토제품”이라고 썼다. 발굴단은 그러나 이 유물의 용도는 언급하지 않았다. 구멍이 뚫려 있어 목걸이처럼 걸 수 있다고 한 뒤, ‘자안패(子安貝)형 토제품’이라고 적었다.

사실 자안패는 일본말이다. 여성의 성기처럼 생긴 조개를 일컫는다.

일본에서는 근대 이후 임신한 여인들이 이 조개를 지니고 있으면 순산(順産=子安)을 한다는 속신(俗信)이 있어서 주로 여자들이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의 고대 유적에서 자안패가 나온 경우는 많지 않다. 조몽시대(우리로 치면 신석기시대) 추전현(秋田縣) 삼승예(三升刈)유적 등 일부 유적에서만 출토됐을 뿐이다

 

▲ 경남 사천시 늑도에서 발굴된 2000여년 전 자안패(子安貝). 여성 성기를 닮은 이 조개는 어린아이 무덤에서출토됐다. 죽은 아이의 부활을 꿈꾸며 넣은 것으로 발굴단은 해석했다. /경남고고학연구소 제공

 

 우리나라에서도 자안패는 출토 예가 많지 않다. 최종규 경남고고학연구소장은 “이 조개는 자생(自生) 북방한계선이 대만이나 오키나와 등 아열대 바다이며, 우리나라에서 나지 않는다. 따라서 고대에는 무척 비싼 ‘외래 유물’이었다”고 했다. 부산 율리패총말고는 경남 사천시 늑도유적(2000여년 전)에서 3점, 충남 공주 금학동 백제 고분(서기 6세기)에서 1점 정도 나왔다. 늑도에서 출토된 것 중 2점은 어린아이를 묻은 옹관에서 나왔다.

학계는 자안패를 ‘여성’과 연관시킨다. 최 소장은 “제 명에 가지 못한 아이가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라도 재생(再生)하거나 소생하기를 바랐기에 비싼 외제 물건이지만 여성 성기를 닮은 자안패를 넣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임학종 국립김해박물관장은 “목걸이처럼 쓸 수 있는 부산 율리패총 것은 다산을 바라며 차고 다녔으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조개와 여성을 연관시킨 것이 최소한 3500년은 된다는 뜻이다.

한·일과는 달리 중국에서는 자안패가 신석기시대 이후부터 자주 등장한다. 특히 3000년 이상 된 상(商=은나라), 주(周) 이후 한(漢)나라 때까지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중국은 그러나 자안패라는 용어 대신 보패(寶貝)라는 말을 쓴다. 상·주 시대의 금석문(돌이나 금속 등에 새긴 글씨)에 “보패를 10줄 하사했다”는 식의 글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는, 여성의 상징이라기보다는 부나 권력을 의미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자안패는 제리코(성경에는 ‘여리고’로 등장)에서도 약 8000~9000년 전 것이 발굴된 바 있다. 사람 해골 눈구멍에 자안패 껍데기의 톱니처럼 생긴 부분(패치·貝齒)이 밖에서 보이도록 넣었다. 여성의 성기를 닮은 조개를 넣어 다시 태어나기를 바란 것인지, 보석처럼 값비싼 조개를 장식용으로 넣은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산드로 보티첼리의 15세기 후반 대작 ‘비너스의 탄생’(비너스가 조개를 타고 바다에서 탄생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에서도 드러나듯이, 여성 성기를 닮은 조개와 생명의 탄생을 연관시키는 것은 고대 이래로 일반적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 <조선일보/신현준기자 2007.7.15>
    출처 : 토함산 솔이파리
    글쓴이 : 솔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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