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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만들어 낸 우리 한지(韓紙)

道雨 2010. 6. 25. 16:23

 

 

 

       자연이 만들어 낸 우리 한지(韓紙)

 



 
자연 속 한지

원래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한지 위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 속에서 살며 지내다가 결국은 한지에 싸여 어머니 품속 같은 포근한 정을 받으며 다시 자연의 흙으로 돌아간다.

한지 위에서 태어나는 것은 한지 장판지 위에서 태어남을 말함이며, 그 속에서 산다는 것은 한지 벽지(韓紙壁紙)와 문창호지(門窓戶紙)에 싸여 생활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을 만진다는 것은 한지 위에 쓰여 지고 인쇄된 서책을 가까이하는 생활을 말하는 것이고, 그것에 싸여 간다는 것은 죽음을 맞이하여 염습(殮襲)할 때 한지에 싸여 다시금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과연 세계 어느 민족이 우리 민족처럼 방바닥에 장판지라는 노란 종이 카펫carpet을 깔고, 불까지 때가며 한지로 옷을 입고 살아 본 적이 있었을까?

비바람 몰아치는 황야에 유둔지(油芚紙)로 군용 천막을 만들고, 전시(戰時)에는 갑의지(甲衣紙)로 화살을 막는 한지 갑옷을 만들어 입었다. 종이요강, 종이 신, 종이 우의, 종이 옷장, 종이 책장, 종이로 만든 촛대, 종이 수통을 만들어 사용하였고, 집안에 사소한 방문이나 창호 손잡이 근처에도 부분 손상을 막거나 운치를 더하기 위해 단풍잎, 댓잎 등을 넣고 그 위에 창호지를 덧발라 생활 속 모든 곳에서 한지를 사용하였다.

우리민족처럼 모든 생활용품을 한지로 만들어 쓴 민족은 인류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닥나무 껍질은 섬유화해 대발로 물속에서 건져 햇빛을 이용해 말리면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한지가 된다.

전통 한지의 색은 그 자체가 자연이며 자연의 기본색이다. 이런 순수한 바탕색을 우리는 소색(素色)이라 부른다. 소색은 흰색이 아니라 자연에서 만들어진 순수한 바탕색이며 물체마다 지니고 있는 아무것도 가공되지 않은 자연의 색을 말하는 것이다.

한지를 만들 때 아무런 오염이나 인체에 해로운 물질을 첨가하지 않고 자연의 힘만을 이용하여 황갈색의 닥나무를 하얀 소색 한지로 만들어 낸다.

한지의 소색은 자연 자체의 산물이며 햇빛, 물, 바람, 불, 시간이라는 자연의 힘이 만들어낸 또 다른 자연의 색인 것이다.

한지의 모든 것은 자연 속에서 자연을 이용하여 만들어져 다시 자연 속으로 돌아간다.


한지 제작 과정  

옛날에는 전통 한지를 백지(百紙)라고도 하였다. 한지를 만들 때, ‘닥나무를 베고, 찌고, 삶고, 말리고, 벗기고, 삶고, 두들기고, 고르게 섞고, 뜨고…’ 마무리 하는데 까지 백 번이라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지가 만들어진다고 하여 백지(百紙)라고 한 것이다.

 

우리 전통한지 제작의 시작은 추수가 끝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1월에서 2월까지 닥나무를 베는 작업부터 시작 된다.

닥나무는 1년생 햇닥을 사용하는데, 햇닥은 섬유가 여리고 부드러워 종이뜨기에 좋기 때문이다.

닥나무 베는 작업이 끝나면 닥나무에서 종이의 원료가 되는 껍질을 벗기기 위해 닥솥에 닥나무를 채우고 증기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밀폐한 후 불을 지펴 끓이는 닥무지라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훈증과 열기가 가득한 닥솥에서 푹 쪄낸 닥나무는 껍질을 벗겨낸다. 벗겨낸 닥나무 껍질은 흑피 또는 피닥 이라고 하는데, 피닥을 다시 찬물에 담가 불린 후 닥칼을 이용해 겉껍질을 벗겨 백피를 만든다.

이렇게 얻은 백피를 햇볕에 널어 잘 말리면 전통한지의 기본 원료가 된다.

 

백피를 섬유로 만들기 위해서는 잿물에 삶아야 한다. 잿물은 짚, 메밀대, 콩대 등을 태운 재에 80도 정도의 따뜻한 물을 내려서 만든다.

이때 잿물은 변색을 일으키고 내구성을 떨어뜨리는 껍질 속의 불순물을 제거 해준다. 잿물에 네다섯 시간을 삶으면 백피보다 순수한 상태의 원료가 된다.

그 다음 잿물을 씻어내고 물속에서 햇볕을 쪼이는 과정을 거쳐 껍질에 있는 티를 골라내는 작업을 한다. 티가 적을수록 종이의 품질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백피가 곤죽이 될 때까지 두드려 짧은 섬유질로 만드는 고해 작업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이 끝나면 비로소 종이를 뜰 수 있는 원료가 완성된다.

그 다음 고해과정을 마친 닥 원료를 물에 넣고 힘차게 저어 섬유가 골고루 퍼지게 한 후, 황촉규 뿌리를 치대어 얻어낸 끈끈한 점액 닥풀을 첨가한다.

닥풀은 물이 흐르는 속도를 조절해 종이두께에 영향을 준다.

 



이렇게 초지통에 닥섬유와 닥풀을 푼 후, 종이 뜨는 작업이 시작된다. 종이 뜨는 작업은 뜨는 방법에 따라 나뉘는데, 공중에 매단 줄 하나에 의지해 발을 앞뒤 좌우로 흔들어 종이를 뜨는 것을 발틀이 하나밖에 없다고 해서 외발뜨기, 두 개의 틀 사이에 발을 넣고 종이를 뜬다고 해서 쌍발뜨기라고 부른다.

이렇게 뜬 종이가 쌓이게 되면 지승판 위에 바탕지를 깔고, 그 위에 나무판을 얹어 무거운 돌을 올려놓거나 압착용 지렛대로 눌러 하룻밤 물기를 뺀 후 건조에 들어간다.

과거에는 흙벽이나 나무판에 붙이고 햇볕에 말리는 방법뿐이었으나, 근래에는 스테인리스 판을 가열해 종이를 건조시키기도 한다.

 

건조된 종이는 두드리는 도침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도침은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종이 표면 가공기술로 한지의 표면을 다듬는 마무리 작업이다.  

보통 종이를 수십 장씩 포개놓고 홍두깨나 디딜방아 모양으로 생긴 도침기로 여러 번 두들기는데, 도침 처리를 하면 종이의 치밀성과 표면의 평활성이 향상되어 품질이 좋은 한지가 만들어진다.

우리 선조가 세계 최고 목판 인쇄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 쓴 종이 표면 가공기술이 바로 도침인데, 도침을 하면 종이 품위가 향상되며 성질도 변화시킬 수가 있다.


 


한지의 우수성

첫째, 우리나라의 장판지, 창호지 등 저피(楮皮)를 원료로 하여 만들어진 한지는 모두 강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래서 우수한 보존성을 지니고 있다.

종이는 인간의 보존 욕구가 만들어낸 대표 산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종이의 뛰어난 보존성을 잘 표현해준 말이 “지(紙) 천 년, 견(絹) 오백”이다.

둘째, 한지는 일찍이 부드럽고 자연스러우며 질긴 성질 덕분에 다양한 미술 재료로 사용되어왔다.

동양의 미술 재료는 서양의 미술 재료와는 달리 모두 친수성(親水性)을 가지고 있다. 특히 전통 한지는 물을 빨아들일 때 옆으로 번지기보다는 밑으로 잘 스며드는 특성이 있다.

또한 기름과도 잘 어울려져 기름을 사용한 종이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장판지이다. 장판지는 기름을 쓰되 식물성 수지 성분 기름을 사용하여 물은 투과시키지 않고 공기만을 투과시키는 장점이 있다.

셋째, 동양 고유의 품격을 지닌다는 것이다. 규격화된 서양 종이에 비해 우아한 아름다움을 갖는 한지는 크기를 갖되 일정한 크기를 갖지 않고 각 장마다 같으면서도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넷째, 한지는 섬유 사이에 적당한 공간을 가지고 있다. 창문에 바른 창호지는 외부 공간과 내부 공간을 잇는 틈을 유지함으로써 계절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해 방 안 습도를 자동으로 조절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현재가 있을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과거의 우수한 문화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전통 문화와 역사, 자연은 소중한 것이다. 자신들의 문화가 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것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야만 스스로 성장 할 수 있는 바탕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모든 문화는 만드는 사람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쓰는 즐기는 사람의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우리가 좀 더 우리 것을 사랑하고 관심을 가지며 써야만 우수한 한지 문화가 후대에까지 남아 새로운 한지 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 | 이승철 동덕여자대학교 회화과 조교수